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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Sep 24. 2020

틈이 있어도 괜찮아

레고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큰 애는 여느 남자아이답게 레고를 참 좋아한다. 새로운 레고를 사주면 앉은자리에서 뚝딱뚝딱 혼자 설명서 보고 웬만한 건 만들 수 있다. 이렇게 6살 아이라도 비교적 쉽게 조립할 수 있는 레고 장난감이라도 만약 아주 작은 조각 하나라도 잘못 끼우는 날엔, 그다음 쌓아 올린 조합에 균열이 생기고 만다.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부품을 맞는 자리에 끼우지 못하게 되고 이리 해봐도 저리 해봐도 손쓰기 어려워져 결국엔, 쌓아 올린 조각들을 모두 해체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는 정확히, 잘못 끼워 넣은 그 지점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아이는 잘못 끼워버린 레고 조각을 하나하나 떼어낼 때 세상이 떠나가라 통곡했다.


“힘들게 만들었는데 부수어야 하니 속상하지, 그래도 울고만 있으면 저절로 완성되지 않아. 다시 만드는 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야. 잘못 끼운 부분부터 다시 만들면 돼.” 피곤한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말들을 동원해 아이는 결국 울음을 그치고 밤늦은 시간까지 레고를 다시 조립했다.


사실은 그렇게 부수고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다고 하면, 시간이 걸려서라도 원래의 완벽한 모습을 갖출 수 있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사람 사이의 균열은 다시 쌓아 올린다 해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다. 작은 틈이 벌어지고, 그걸 모른 채, 아니 때론 알고도 외면한 채 쌓아 올린 모습은 어딘가 어정쩡하다. 그러고 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다시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는 그저 그런 상태로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의 마음이 레고처럼 단단하지 않고 말랑말랑 한 건 참 다행인 일이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쌓아 올려야 했다면, 틈을 채우는 방법은 없을 테니까. 처음부터 다시 쌓는 수밖에. 우리는 균열을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약간의 노력을 기울여 틈을 메꿔가며 나름의 모양을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낯설고 이질적인 다른 물질이 그 틈을 채우더라도 어느덧 단단하게 융화되어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사이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우리 모두는 틈을 두려워한다.


나만 신경 쓰면 됐던 젊은 날에 비해 (보통은 그것마저도 벅차지만) 살아가며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는다. 영혼의 단짝이라 여겼지만 공통점은 사실 딱 하나였을지도 모를 사람과, 나와 닮았으면서도 내 배에서 나왔으면서도 철저하게 다른 존재임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가족을 이뤄간다. 그러니 여기서 균열이 안 생기면 이상하다. 흔들리고 쪼개지고 심지어는 모서리에 찔려 아파 죽겠는 때도 있다.


서로 원망하며 미워하는 마음이 천천히 쌓인다. 지저분한 것은 모두 양탄자 밑에 감춰지고 용은 양탄자 밑에서 그 부스러기를 먹고 자란다. 질서를 깨고 싶지 않아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모두 어둠 속에서 소곤거린다. 진실한 대화를 위해서는 불편한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원망과 두려움, 외로움과 절망, 질투와 좌절, 증오와 권태를 인정하면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가 더 쉬워진다.
잭 켄트의 ‘용 같은 건 없어’라는 그림책엔 처음엔 작았던 용에 대한 존재를 눈감고 그냥 지나쳐버리자 커다랗고 공격적인 용이 되어 오히려 가족을 위협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 용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니 용의 크기는 다시 작아진다.  
-인생의 12가지 법칙 中-


생각해보면 틈이 있어서 비집고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지.

여전히 때로는 무너지기도 하고 열심히 하나하나 쌓은 조각을 또다시 떼어낼 때 느끼는 것 같은 쓰라림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중간중간 모른 척하지 않고 잘 들여다봐주기만 한다면 무너져 내리지 않고 나름의 모양을 갖춰나갈 수 있다. 주의 깊게 둘러보면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은 모두 그러하다. 잉카제국 시절 돌로 쌓아 올린 석조 건축물은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을 만큼 정교하다. 오직 밧줄과 손만을 이용해 거석을 나르고 쌓아 올렸다고 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건축물 그 안에는 돌을 깨고 다듬었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과 고통이 들어있다.


우리의 삶도 틈을 직면하고 채워 넣고 다듬어가며 우리만의 유일무이한 모습을 만들어간다.  그것이 ‘성장’이라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벌어진 틈과 그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건, 유난 떨 일도, 좌절해야 할 일도 아니다. 틈을 제대로 직면하고 마주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렇게 서로의 틈을 메꿔가며 만들어진 가족의 모습은 각자의 결이 얽히고설켜 그 자체로 단단하고 아름답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나름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갖춰가며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아닐까


틈이 있어도 괜찮다. 우리는 레고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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