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도 익숙한 너와 나의 글쓰기

by 도원

6살 아이의 손.

아직 오동통하지만 제법 길쭉해진 손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ㅇㅇ이는 똥 쌌어요.
ㅎㅎ이는 똥 안 쌌어요.



제 이름 석 자, 엄마 아빠 이름, 좋아하는 동물들을 쓰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키득거리며 문장을 완성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눈에 보이는 글자들로 남겨지고, 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에도 그림 같기도 한 그 글자들은 거실 한 구석에서 고스란히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말로 했으면 하룻밤 사이 날아가버릴 어제의 이야기들과 웃음소리가 선명하고 굵은 글씨와 함께 눈 앞에 아른거린다. 너와 꼭 닮은 글씨를 보며, 한 문장이 두 문장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네가 어른이 되어 쓰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마음에 담고 담았다가 넘쳐흐르는걸 어찌하지 못해

하얀 종이에라도 담아야 하는 그런 날이, 너에게도 올까?




엄마인 나도 맨 처음 글씨를 써 내려가던 순간이 있었겠지.

내가 어릴 적 처음으로 적어 내려 간 글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필명으로도 쓰고 있는 나의 어릴 적 이름 ‘도원’이라는 이름을 적었을 수도,

너처럼 ‘똥’이라는 글씨를 적고 키득거렸을 수도.

누구나 그렇게 시작했을 어린 시절의 글쓰기는 참말로 사랑스럽고 투명하다.


그렇게도 투명하고 한없이 가벼웠던 글들은

조금씩 나이를 먹고, 아픔을 담으며 점점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랬었다. 아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 혹은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혼자 써 내려갔었던 글들이 있었다.

그런 글들이, 그 시간들이 나를 치유하고 성장하게 해 준 것은 분명하지만,

엄마는 너의 글이 설사 아픔을 담는 일이 있더라도, 투명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투명해서 누군가는 꼭 볼 수 있는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


To.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글쓰기인지,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쓴 나의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게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그리고, 가서 닿을 곳이 없는 글은 하얀 종이 가득 써 내려가는 글자 수만큼이나 외롭다는 사실을..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린 시절 몸에 밴 습관처럼 익숙한 것이지만 누군가 읽어줄 사람이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아직 많이 낯설다. 익숙하지만 낯설기에 설레고 반갑다.


글을 쓰는 건 바쁜 일상 속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잠깐의 여유일 수 있다. 하지만 여느 여유 시간과는 다르게 그 느슨함 속에 더할 나위 없는 팽팽함이 만들어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은 느슨함 그 자체이지만, 누군가 읽어줄 사람이 있는 글은 팽팽함을 잃지 않는다. 바쁜 일상 속 to do list가 가득한 작은 세상에서 온전히 나만의 것에 집중하여 만들어내는 커다란 세상과 같다.


나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못하는 사람이라 여기고 살아왔는데, 엄마로 살아가다 보면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만, 때론 동시에 여러 가지를 버텨야만 할 때가 많다. 그런 와중 글을 쓸 때는 그 어떤 때 보다도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 뇌가 풀가동한다. 많은 리스트들은 온데간데없고 아무것도 없는 마음이 되어 글을 써 내려가게 된다. 너무 많은 것들이 눈 앞에 놓여 있을 때,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 아무것도 없는 그 마음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나의 귀여운 아들, 너의 첫 글쓰기를 응원하며

인생의 무게가 더할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질 때 조차도 투명한 글을 써 내려가기로

엄마는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