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소풍으로 갔던 롯데월드, 처음으로 부모님 없이 친구들과 손 잡고 갔던 에버랜드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였다. 배를 타고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빨려가듯 들어가면눈을 뗄 수 없었던 신밧드의 모험. 꼭대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묘미에 찬물을 가득 끼얹었던 후룸라이드. 내려앉은 심장이 몇 번이고 또 내려앉았던 바이킹. 명불허전 그 이름도 무시무시했던 자이로드롭.
그 시절의 나는 무서운 놀이기구를 즐겼다. 안전장치에 나를 맡긴 채 두려움에 나를 내던지고 나면 팔다리는 제어가 되지 않아 후들거렸을지언정 조금 더 살만한 기분이 되었다. 그 당시 그토록 스릴을 즐겼던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내 마음을 잘 고정시켜두었던 따끔하고 작은 핀 같은 것을 뽑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그 후에도 스노보드의 스릴을 사랑했지만 한 번 무릎을 다쳤고 지금도 비가 오면 한쪽 무릎이 쑤신다. 무릎이 쑤실 때마다 가끔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찾은 놀이공원에서도 문득.
예전엔 그 하루가, 놀이공원이, 내 인생 전부라도 되는 양 놀이기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 문 닫는 시간까지 꽉꽉 채워 한시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었다. 오늘이 끝인 것처럼 이런 날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시간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루 종일 걸어서 부르튼 다리는 아픔을 몰랐다.
앉을 곳만 눈에 보이는 지금, 내 인생에도 그런 시간들이 존재했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분명 있었다. 하루가 곧 영원 같았던 젊은 날의 시간들.
놀이공원 안의 커플들을 바라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놀이공원 씬의 제시와 셀린느가 떠오르기도했다. 그들에게도 오늘 하루는 영원과도같았을까?
"우와~ 저거봐!"
자이로드롭과 비슷한 놀이기구를 가리키며 아이가 소리친다.
"엄마 저거 타봤어?"
"그럼 예전엔 타봤지~ 근데 지금은 절대 못타. 아이고 보는 것만 해도 무섭다."
나이 먹는다는 게 무언지, 그렇게 좋아했던 무서운 놀이기구도 지금은 돈 주고 타라 해도 못 탄다. 그때도 지금도 놀이기구를 탈 수 있고 없고의 정확한 차이나 이유는 알지 못한다. 더 이상 허울뿐인 자유를 갈망하지 않게 된 건지 아니면 그냥 간이 작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전부는 될 수 없고, 잊히지 않는 인생의 일부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가 나는 쪽 하늘을 바라보니 형형색색의화려한 불꽃놀이가 어느새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둘째 아이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귀를 막았다. 작은 손 위에 내 손을 덧대어 귀를 막아주었다. 중국에서는 불꽃놀이 소리도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불꽃이 터질 때마다 눈에 환하게 불이 켜지며 심장도 같이 쿵쿵댔다. 몇 번이고 마음을 두드려대는 울림에 순간이 영원인 듯 나를 맡겨 본다. 지난날 어딘가 멍들었을 마음도, 눈물도 모두 모두 까만 밤하늘에 터트려 버리리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저 불꽃처럼.
우리는 환한 불꽃과 함께 우리의 얼굴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사진을 통해 본 우리들 눈에는 순간을 영원처럼 담은 반짝임이 들어 있었다.
차로 돌아가는 길, 졸려하는 둘째를 업었다. 그걸 보고 첫째도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졸랐다. 우리는 아이 하나씩을 업고는 서로에게 내리라고 하지만 둘 다 고집을 부려 그대로 업고 걷기로 했다.
"아니 그런데 중국 놀이공원 하고 한국 놀이공원 하고 뭔가 달라. 시설 차이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그 흥분이 말이야. 오늘 놀고 죽자 하는 거 있잖아. 싸이 노래에서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거 그런 거."
(끄덕끄덕) "맞아, 여기선 정말 그런 느낌이 없지."
"그리고 좀 생뚱맞은 얘기지만, 이렇게 애들 업고 가도 별로 힘든지 모르겠는 건 우리가 이 한 몸 던져 놀아봤기 때문 아닐까?"
"엥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순간의 감정보다 오래도록 남을 기억이나 마음 같은게 더 중요해진달까?"
"순간을 영원처럼 느껴볼 수 있다면 말이야,
오늘 이 하루의 기억 또한 오래도록 소중하게 영원처럼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
아이를 업은 채로 횡설수설이다.
입을 다물고 생각해본다.
'아이 둘이 함께 작은 기차를 타며 신나 하는 모습을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게, 그게 뭐라고 그렇게 기쁘고 행복한지, 그 순간을 담고 싶어 아이들을 배경으로 우리가 함께 찍었던 셀카를, 어둠 속에 던져버린 마음의 찌꺼기 대신 우리 눈동자 속에서 환하게 빛났던 불꽃을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