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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Aug 12. 2021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생각하며

그녀를 생각하며, 샤갈

큰 아이가 유치원 졸업을 했다. 9월에 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방학 아닌 방학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둘째가 유치원에 간 사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게 된 아이는 아주 신이 났다. 개인적인 시간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아쉽긴 하지만 나 또한 잠시 일부를 손에서 놓고 한 달간의 방학 또는 휴가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라고 쓰고 며칠 지나서 결국 감기 몸살) 아침저녁으로 훅 느껴지는 싸늘한 공기까지 겹쳐 결국 몸져눕고 말았다. 아기 때는 그래도 낮잠도 몇 번씩 자주었던 덕에 잠깐 눈이라도 붙일 수 있었지만 7살 남자아이와 하루 종일을 같이 보낸다는 건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체력의 고됨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역시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어른스러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졸음이 쏟아져 두 손 두 발 다 들고 엄마 잠깐만 누워서 잘게! 를 외치니 "알았어!"라는 말과 함께 시계를 옆에 가져와 5분 알람을 맞춰놓는 센스에는 골골대다가도 웃음이 터진다. 세상 끝난 듯 셔터 내리고 싶을 때 조차도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이 번지고야 마는 순간은 내 생애 단언컨대 육아의 시간이 유일했다.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음식 해 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는 지금 이 시간들은 생각보다 힘들지만 생각보다 더 소소하게 재미나다. 하루의 끝에선 결국 남겨놓고 싶은 순간들이 넘쳐 버린다. 이러다 나만 봐야 하는 일기 같은 글만 남을 모양이다. 아무래도 아이와 함께 본 그림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야겠다.


<그녀를 생각하며, 샤갈>

샤갈이 아내가 죽고 난 뒤 그린 그림이에요.

그림 속 화가의 머리가 거꾸로예요.

이 그림에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샤갈의 마음과

지나간 추억들이 담겨 있어요.

- 내가 처음 만난 예술가 / 길벗어린이 -


샤갈, 사랑과 꿈을 그린 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명화를 소개하고 그에 따른 퀴즈도 곁들여 있는, 아이들을 위한 명화 책이었다. 꿈, 어릿광대 등 색감이 화려하고 몽환적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재미있게 감상하다 책장을 넘길 때였다. 짙은 검은 바탕색이 몸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녀를 생각하며’

그 그림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슬픔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들이 한 장의 그림에 모두 담겨 있었다. 함께 했던 장소의 이미지는 하늘을 오가는 곡예사가 들고 있다. 그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아무나 쉽게 잡을 수는 없다. 검은 이미지에 얼굴 윤곽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화가는 하나의 눈동자를 빛내며 무표정한 얼굴로 거꾸로 뒤집혀 있다. 그리고 한여름 풍성한 초록에 감싸여 있는 신랑과 신부, 촛대를 들고 날아오는 새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책에 있는 그림 속 이미지의 설명 하나하나에는 번호가 매겨 있었고 답은 있어요, 없어요를 고르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아이가 답을 고르는 사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폐부를 둔탁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숨이 크게 쉬어졌다. 삶과 죽음 사이를 번호로 매겨 놓고 선택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삶과 죽음을 이렇게 한 면에,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건 마음이 사무치도록 아픈 일이다. 우리는 보통 삶과 죽음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으므로. 온통 까만 죽음의 이미지 속에서도 삶은 한가운데 이렇게 생생하게 존재하는데, 죽음이 바짝 곁에 다가와도 우리는 이렇게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일 텐데. 아, 인간은 어째서 죽음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일까. 너무도 당연한 명제에 의문이 일었다. 태어나 죽음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살아있는 동안엔 부모의 죽음을 보고, 세상에 남겨질 자식 앞에서는 먼저 숨을 거둔다. 너와 나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한 인간은 고통을 쥐고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그림에서 가늠해볼 수 있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것 같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신은 진짜 있는 거야?”

“응? 신? (갑자기 신을 물어볼 줄이야. 나는 무늬만 천주교 신자이고 아이는 아직 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 아 제우스 신, 헤라클레스 말하는 거야?” (얼마 전에 읽었던 디즈니 헤라클레스 책이 생각났다.)

“응. 신은 영원히 산다고 나오잖아. 사람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근데 신은 진짜 있는 거야?”

“글쎄,, 그건 아무도 몰라.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음.. 내 생각엔 진짜 있는 거 같아.”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짜 있을 거야.”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언젠가 아이가 더 어렸을 때 엄마는 몇 살까지 살아? 그럼 지금은 몇 살이야? 물어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아마 대충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일 게다. 아이는 곧 까만 배경에서 시선을 거두고 수풀 속에 감싸여 하늘을 나는 신랑 신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고, 촛대를 물고 오는 새에 대한 궁금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만가만 바라보는 눈빛은 그러다가 그림 한가운데 밝은 이미지에 고정되어 반짝였다. 여전히 까맣고 먹먹한 배경은 섬뜩하리만치 시선을 붙잡았지만 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림 한가운데 밝게 자리하고 있는 일상의 추억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시선을 단단히  고정시킨다.


그렇게 나는 어린 너로부터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또 하나의 진리를 깨닫는다.


너와 함께 그림을 들여다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오늘 하루도 언젠가 너와 내 마음속 한가운데 동그란 모양의 밝은 빛으로 자리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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