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엄마'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출산 후 모든 게 정신없고 황망해서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거리던 시절이 있었고, 4개월 뒤 바로 복직해서는 회사와 집안일을 병행하느라 또 정신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밖에서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지만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은 바로 엄마로서의 시간이다.
그 시간 하나하나를 생각해 본다면 역시나 정신없는 시간들이다. 아침에 서둘러 등원 후 돌아오면 또 바쁘게 청소, 장보기, 요리하기. 하원 후 아이와 산책, 놀이터 가기, 주말이 되면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을 가고, 백화점을 가고, 여행을 가고... 내 손과 머리가 쉴 새 없이 할 일을 찾아 움직였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모든 생활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오롯이 엄마로 살기'를 해봤던 너무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들이다.
아이가 잠든 침대로 살그머니 들어가 보드라운 아이 손을 잡아보면 행복함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찾아온다. 아이의 존재가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서 이 아이 없이 어찌 살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무섭고 두려운 마음. 그래서 빨리 커서 엄마 말도 안 듣고 좀 미워지는 나이가 되면 내 맘이 좀 편해질까?라는 생각도 든다. 비슷한 두려운 마음이 어렸을 적 엄마에게 들 곤 했다. 나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났는데 엄마 딸로 태어나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이 굉장히 컸다. 잠자리에 들면 그 마음이 너무 커져 혼자 훌쩍거리기도 하고, 우리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게 된 꿈을 꾸기도 했다. 너무 사랑해서 두려운 마음. 엄마와 아이 사이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내 시간이 엄마의 시간으로만 채워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외로움이 분명히 있다. 그들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벌이는 소소한 시위 중 한 가지가 바로 이 글쓰기이다. 이 때는 엄마가 아니라 '나'로 돌아와서 예전의 나의 흔적들을 더듬어 가며 글을 쓴다. 주제가 아이일 때가 많지만... 그리고 휴직을 하며 북클럽도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강제적으로 책을 읽고, 다른 엄마들과 만나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책의 주제와 관련 없이 기승전 아이 얘기로 흘러가는 위험성이 높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언제 애 키우고 집안일하며 라파엘 전파의 '오필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때도 주제는 결국 아이의 미술 교육으로 흘러갔다...).
집안에만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 때가 있다. 괜히 창 밖을 바라보면 눈물이 나고, 남편이 원망스럽고, 아이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고 느껴진다. 밖에 나가서 누구라도 만나고, 하다못해 장이라도 보면 나아지는 것을 굳이 집안에 들어앉아 땅을 파고 앉아 있다. 올 해에는 이런 우울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 감정에서 빠져나와 내 할 일을 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다.
내년에는 '오롯이 엄마'에서 '워킹맘'으로 돌아가야 한다. 분명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고, 마음이 어지럽고 다 놓아버리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 사이사이 즐거움과 기쁨 행복함이 섞여 있어 견뎌내는 힘을 얻을 것이다. 한 가지 바라건대, 좀 더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