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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Jun 27. 2019

북한 음식, 그 쓸쓸함에 대하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한식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타입은 아니다. 애써 멀리까지 왔는데 기왕이면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가자는 주의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몇 차례 쓰디쓴 경험을 통해 어차피 외국에서 먹는 한식의 맛이란 그리 기대할 만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외국에서 한식을 파는 식당 자체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할까. 과연 한국의 맛을 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을까, 아니면 가능한 한 현지의 식문화를 존중한 현지화된 맛을 내는 데 방점을 두었을까.

 


북한 음식과 관련한 취재를 위해 탈북 요리사들을 차례로 만났다. 남한에서 요리를 하게 된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지만 공통점은 ‘제대로 된 북한의 맛’을 지키고 알리고 싶다는 사명감이었다. 문득 해외의 한식당 사례가 떠오르면서 궁금해졌다. 지금의 북한 사람이 남한에 내려와 북한 식당에 가 음식을 맛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게 바로 고향의 맛이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까, 아니면 ‘이건 이북의 맛이 아니야’ 하고 화를 낼까.


캄보디아 시엠립의 <평양랭면관>의 냉면(좌)과 서울 서초 <설눈>의 냉면(우)

음식에 있어 종종 오해하는 게 있다. 어떤 음식의 맛에 진짜 또는 원형이 있다는 착각이다. 그것은 마치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다. 모두가 평양냉면의 참맛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개념적인 것일 뿐 각자가 먹어 보았던 맛의 기억에서 비롯되는 개별적인 경험일 뿐이다. 평양냉면의 이데아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는 건 어떤 형태의 의자가 진정한 의자이냐를 따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서초동 ‘설눈’의 평양냉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평양냉면과는 달리 양념장이 딸려 나온다. 평양냉면 하면 심심한 육수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었던가. 탈북한 지 4년째 되는 사장님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는 옥류관 말고도 유명한 냉면집이 많다고 한다. 


옥류관이 대중식당이라고 한다면 청류관이나 고려호텔의 냉면은 달러를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고급 냉면집에 속한다. 요즘 평양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즐기게 되면서 평양냉면도 양념이 된 게 인기라고 하니 설눈의 냉면은 북한에서 유행하는 최신 스타일인 셈.


조리법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레시피가 성문화된 법이 아닌 이상 먹는 이의 입맛, 그리고 요리사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따라 변주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설눈의 냉면이 지금 북한의 맛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평양냉면은 과거 평양냉면의 맛에 서울 사람들의 입맛이 반영돼 있다.



 속초 함흥냉면 원조집으로 알려진 ‘함흥냉면옥’의 2세도 본인이 어릴 적 맛본 아버지의 함흥냉면의 맛과 지금의 맛은 다르다고 한다. 그것은 의도된 차이다. 맛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길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변하는 재료와 기술의 문제도 있다. 전통을 이어 가면서도 변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맛을 개선시켜 나가야 망하지 않기에 혁신은 2세들의 숙명이다. 


요리사에게 ‘당신이 만드는 음식이 현지의 맛이냐 아니면 현지화된 맛이냐’ 따지듯 물을 수 있지만 요리라고 하는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굳이 변증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양 극단의 길 중 하나를 취하지 않고 제3의 길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태백에서 전통된장을 만드는 허진 명인이 그러한 경우다. 탈북한 그는 북한에서 먹던 된장 맛을 재현하고 싶어 가능한 한 북한의 방식으로 된장을 만들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기후와 재료, 거기에 따른 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는 남한에서 된장 만드는 방식을 연구한 끝에 북한의 방법과 남한의 방법 중 장점을 취해 본인만의 전통된장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은 온전한 북한 된장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남한 된장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되레 남북이 통일되었다고 한다면 그때 만들어질 수 있는 된장 제조법이 미리 세상에 나온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맛보고 있는 북한 음식은 실제로 북한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그 맛이 아닐 수 있다. 남한에서 장사를 하려면 남한 사람 입맛에 맞춰 조리법을 현지화해야 살아남는다는 건 탈북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개별 음식의 맛을 걷어내고 남은 자리엔 공통적인 식문화와 음식의 문법이 남는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건 아마도 맛보다는 한식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래서 다음 해외 출장 땐 그동안 피해 왔던 한식당에 들러 보려 한다. 한식이 어떤 모습으로 이역만리에 피어 있을지.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는 서울신문에서 격주 목요일 연재되는 음식과 요리 그리고 여행에 관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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