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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Jul 24. 2020

흔한 옥수수? 알고 보면 비밀투성이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올 초여름 초당 옥수수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한동안 들썩였다. 3~4년 전쯤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봄 도다리, 가을 전어처럼 초여름엔 초당 옥수수가 공식이 된 듯한 분위기다. 생으로 먹는 옥수수라는 데 놀라고, 설탕즙 같은 짜릿한 단맛이 톡톡 터지는 데 또 한 번 놀란다. 


한편에선 익숙지 않은 강한 단맛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지만 이제 초당 옥수수는 누구나 한 번은 맛보고 싶어 하는 농산물계의 아이돌로 자리잡은 듯하다.


초당 옥수수의 이름만 들으면 초당 두부처럼 지역 특산 옥수수라 생각하기 쉽다. 초당은 ‘매우 달다’는 한자어로 단옥수수보다 당도가 더 높다고 붙은 이름이다. 미국에서도 단옥수수, 스위트콘보다 당도가 강한 옥수수를 슈퍼 스위트콘으로 부른다.



사람들에게 옥수수는 별 대수롭지 않은 간식거리지만 식물학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옥수수는 참으로 기이한 식물이다. 일단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번식을 인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옥수수 낟알 하나하나가 씨앗인데 질기고 두꺼운 외피에 쌓여 있다. 다른 식물 열매는 땅에 떨어지면 어떻게든 씨를 뿌려 싹을 틔운다. 그런데 옥수수는 사람이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씨앗들이 그 안에서 일거에 몰살당하기 쉽다.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두터운 외피는 오직 인간의 손길만 허락한다는 의지인 셈이다. 


옥수수와 흡사한 식물이 자연에 없고 옥수수의 원산지나 유래에 관해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는 점도 미스터리다. 식물학자들은 옥수수가 멕시코 지역에서 7000년 전부터 재배해 온 것으로 추정한다. 옥수수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테오신테’라는 식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옥수수의 외모와는 크게 다르다. 흡사 빈약한 수수 이삭처럼 생겼다. 남미 원주민들이 옥수수를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개량시켰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옥수수는 익을 수록 맛이 없다. 대부분의 채소나 과일이 무르익을수록 당도가 높아지고 물러지는 것과는 반대다. 옥수수는 노화할수록 수분이 점점 줄어 쭈글쭈글해지고 달콤한 당분이 텁텁한 녹말로 바뀐다. 그래서 옥수수는 덜 익을 수록 달콤하다. 


달콤한 옥수수도 수확한 지 20분 정도가 지나면 서서히 당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미국엔 이런 속담도 있다고 한다. “옥수수 밭에 나갈 때는 얼마든지 어슬렁거려도 되지만 집으로 돌아갈 땐 죽기 살기로 달리는 편이 낫다.” 수확한 후 가능한 한 빨리 먹어야 맛있는 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에서 1950년대 개발된 슈퍼 스위트콘은 돌연변이 유전자로 인해 당분이 녹말로 바뀌는 전환 과정이 늦어진 종자다. 빨리 늙지 않는 옥수수인 셈이다. 옥수수의 장점들은 대부분 자연적 돌연변이의 결과물이라 열성인자다. 바람을 통해 수분하는 풍매 식물인 탓에 슈퍼 스위트콘을 심었다 해도 주변에 다른 종의 옥수수가 있으면 쉽게 유전자가 뒤섞인다. 최대한 다양한 특성의 후손을 만들어 종족 보존의 확률을 높이려는 옥수수만의 생존법이지만 한 종을 유지하며 키우기에는 까다로운 특성이다.


이탈리아식 옥수수 죽인 폴렌타를 재해석한 요리


스위트콘 종자는 1970년대 국내에 들어왔지만 찰옥수수에 밀려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쫄깃하고 찰진 맛을 더 선호한 것도 이유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달큼한 갓 딴 옥수수를 접하지 못했기에 수요가 생기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다. 스위트콘 종자는 일본에서 다시 한번 개량되어 한국으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초당 옥수수는 외래품종과 국내 개량품종이 혼재해 판매된다.


옥수수에 대한 비밀이 하나 더 있다. 옥수수는 대개 알맹이만 먹고 버려지지만 옥수숫대 속에 달콤한 즙이 들어 있다는 사실. 남미의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이용해 두 가지 술을 만들었다. 하나는 알맹이를 보리처럼 이용한 옥수수 맥주, 그리고 옥수숫대의 즙을 짠 옥수숫대술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초기 정착민들은 이 옥수숫대술을 증류시켜 오늘날 버번위스키의 원형을 만들어 마셨다.


이 때문에 일부 고고학자들은 옥수수가 애초부터 알맹이가 목적이 아니라 사탕수수처럼 즙을 짜내기 위해 재배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 맞아!’ 하고 이마를 탁 쳤다면 분명 알맹이를 다 발라먹고 아쉬운 마음에 남은 옥수숫대를 쪽쪽 빨아먹었던 유년 시절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에 눈치 없이 끼는 알맹이보다 옥수숫대를 빨아먹는 쪽이 더 달콤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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