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X싱가포르 프로젝트
어디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스스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과는 달리 외부에서 음식물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지금도 수백만 직장인들은 ‘점심에 뭐 먹지’를 고민해야 하며,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은 ‘오늘은 가족들에게 무엇을 먹일까’를 고민한다.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가능한 예산 범위 내에서 이른바 ‘가성비’ 좋은 음식을 찾아 나서기 위해 식당을 검색하는 수고를 들인다.
돈이 많다고 이 고민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재벌 회장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메뉴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건 무척 피곤한 일이다. 아, 끝나지 않을 저주와도 같은 지긋지긋한 먹을 고민이여.
당장 직장이나 집 근처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 할 때도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판국인데 하물며 낯선 여행지라면 그 피곤함이 오죽할까. 기껏 좋은 구경을 해놓고 먹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행의 기분을 망치기 일쑤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여행에 나서기 전에 ‘00 나라 맛집’을 검색하며 먹어야 할 것과 가봐야 하는 식당의 리스트를 뽑아 놓는다. 영혼을 쉬게 하려고 큰 맘먹고 선택한 여행이 스트레스로 변하는 순간이다.
적어도 싱가포르에서는 이 고민거리가 반으로 줄어든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까란 고민 중 장소에 대한 부분은 한시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호커 센터(Hawker Center) 덕분이다. 두 세평 남짓한 작은 가게들이 수십 여개가 모인 호커 센터는 일종의 푸드코트다. 포장마차, 야시장으로도 불리는 호커 센터에서는 싱가포르 전통음식과 함께 중국, 태국, 인도 등 다양한 국적의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2017년 현재 싱가포르 내에는 60여 개의 호커 센터가 있다. 도심과 주택가, 지하철역 인근엔 어김없이 호커 센터가 눈에 띈다. 싱가포르에서는 노상, 도로 위에서 간이로 자리를 펴고 물건이나 음식을 파는 노점상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래도 노점상들이 있을 법도 한데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것은 호커 센터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연관이 있다.
과거 1960년대까지만 해도 길거리를 가득 메운 노점은 싱가포르에서도 흔한 풍경이었다. 생계를 위해 길 위에 나앉은 가난한 서민들이 대다수였다. 노점상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어 싼 값에 팔았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시민들은 노점상에서 산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정부로서는 노점상이 큰 골칫거리였다. 주변의 상인들은 손님을 빼앗기니 불만이었고 대부분 허가 없이 하는 영업인지라 세금을 징수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또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음식도 문제였다. 식중독으로 사람이 죽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1960년대 들어 노점상들을 정리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시작됐다. 길 위에서 하는 상행위를 금지하고 노점상들을 한 곳으로 모아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호커 센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호커 센터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정부의 철저한 위생관리로 시민들은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상인 입장에서는 보다 안정적으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도시 미화와 함께 세수를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렸다. 싱가포르의 성공적인 노점 정비 정책의 영향으로 말레이시아나 홍콩 등 다른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들도 벤치마킹해 호커센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호커 센터는 벽으로 둘러 쌓여있지 않은 노천 구조가 일반적이다. 더운 지방이라 실내보다는 벽이 뚫려있는 게 더 쾌적하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 인근의 맥스웰 푸드센터 Maxwell Food Center나 마리나 베이 인근의 라우 파 삿 Lau Pa Sat:Telok Ayer Market, 해변가의 글루톤베이 Glutton's Bay는 대표적인 노천 호커센터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에어컨 바람이 부는 시원한 실내에서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면서 점차 많은 호커 센터들이 현대화된 실내 푸드코트의 형태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어디서 먹어야 할지 고민이 사라졌다면 이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할 차례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많은 탓에 호커 대부분은 중국음식을 판매한다. 수고스럽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말레이 음식과 중국과 말레이계의 혼혈 문화인 페라나칸 푸드 Peranakan food도 호커 센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외국인도 음식을 고르기 쉽게 음식 사진을 비치해 놓았다는 점이다. 맛은 어딜 가나 비슷하니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원래는 노점이었지만 미슐랭 원스타를 받아 큰 가게를 낸 식당의 닭요리와 흔하게 볼 수 있는 호커 노점의 닭요리의 맛은 사실 그렇게 차이 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미어터지는 사람들 때문에 맛을 느끼긴커녕 불쾌감만 더해지기 쉽다. 레스토랑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칠리크랩도 반값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호커센터다. 싱가포르 관광에 최적화돼 있는 트래블라인 앱을 이용하면 근처에 있는 호커센터를 찾는 것도 간편하다.
호커 센터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위가 소처럼 네 개가 아니라는 것이 그저 한스러울 따름이다.
<호커 센터를 순례하기 전에 참고 할 만한 사이트들>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았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