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옥동식屋同食'에서 발견한 좋은 한 끼의 의미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했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김 훈 <칼의 노래> 中
끼니를 먹는다는 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주어진 숙명이다. 어쩌면 ‘산다’는 건 ‘먹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 리라.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몇 끼를 먹을 수 있을까. 인간의 수명을 대략 65세로 잡고 세 끼를 꼬박 챙겨 먹기란 쉽지 않으니 하루 적어도 두 끼를 먹는다고 해보자. 우리에게 주어진 끼니는 최소 4만 7천450끼다.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살아온 동안 먹은 끼니를 제외하고 나면 남은 끼니는 그렇게 많지도 않다.
얼마 남지 않은 끼니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끼니를 선택하는 것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집에서 정성 들여 만든 밥상을 먹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끼니는 밖에서 해결하는 요즘이다.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끼니를 허겁지겁 때우려는 수요가 있으니 음식도 그에 맞게 만들어진다.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만드는 슬로푸드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패스트푸드들이 선호된다. 만드는 이와 먹는 이 모두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무언가 중요한 게 빠진 것만 같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요리가 아닌 조립을, 끼니를 먹는 사람들은 일을 하기 위한 연료를 채우는 듯한 모습이다. 음식을 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허전하다.
이런 현실인지라 한 끼를 먹더라도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를 소망한다. 단지 맛있기만 한 음식보다 정성이 깃든 음식 말이다. 매번 정성과 진심을 기대하며 음식값을 지불하며 먹지만 만족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소위 ‘가성비 음식’을 찾는 것이 요즘이다. 진심도 감동도 느낄 수 없다면 양이라도 채우고 혀라도 즐겁자는 것이다.
요리사들이라고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현실적인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상처받다보니 정성과 진심을 음식으로 전달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됐다. 단지 직업이 아니라 요리를 사랑해서 요리사가 된 이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교동 ‘옥동식屋同食’의 옥동식 셰프도 그랬다. 그는 늦은 나이에 요리를 시작해 호텔 총괄 셰프로 일을 했던 베테랑 셰프다. 그런 그가 돼지 곰탕이라는 메뉴로 작은 식당을 냈다. 화려한 경력을 뒤로한 이유는 요리에 대한 신념을 시험하는 일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며 건강까지 악화됐던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요리까지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태어난 공간이 그의 이름을 딴 '옥동식'이다.
옥 셰프는 "끼니를 먹는 것도 일인데 한 끼라도 제대로 만든 음식을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식당을 열었다"라고 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꿈꾸는 이상이다. 상호에도 '같은 음식을 먹는 집', '음식을 함께 먹는 집'등의 뜻이 담겼다. 옥 셰프에게 식당이란 단지 잘 차려진 음식만 먹고 가는 곳이 아닌, 같은 밥을 먹는다는 유대감과 행복감을 선사해주는 공간인 것이다.
그가 선보이는 메뉴는 돼지 곰탕과 수육이다. 호텔에 있던 당시 버크셔 K란 이름의 흑돼지 개량 품종을 테스트하면서 종종 탕을 끓여본 것이 옥동식 돼지 곰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육향과 맛이 뛰어난 버크셔 K를 고아 만든 곰탕과 수육, 그리고 토렴 한 쌀밥이 담긴 돼지 곰탕 한 그릇의 맛은 이미 음식 꽤나 먹는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다.
하루 100그릇을 한정해 파는 탓에 오후 2시면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다. 돼지 곰탕의 맛과 곁들여 나오는 김치의 맛은 일품이지만 옥동식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끄는 건 단지 맛 때문만은 아니다. 정성을 들인 한 끼란 어떤 것인지, 손님을 위해 행복한 마음으로 요리를 하는 요리사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기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예쁘게 잘 담아낸 곰탕 한 그릇 같지만 정성을 엿볼 수 있는 디테일이 숨어있다. 얇게 썰어낸 돼지수육은 일본의 한 라멘집에서 얇게 썬 챠슈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4시간 동안 고압에서 삶아 그렇잖아도 부드러운 수육이 입안에 넣으면 스르르 녹는다. 토렴도 빼놓을 수 없다. 국물에 밥이 들어 있으면 쉽게 퍼지는 데 이를 막기 위해 뜨거운 국물을 밥에 여러 번 부어 전분기를 씻어주는 것을 두고 토렴이라 한다. 토렴용 국물도 따로 쓰고 자주 갈아주는 정성도 잊지 않는다. 쌀은 쌀알이 크고 찰지지 않은 ‘신동진’ 쌀을 쓴다. 토렴을 하고 난 뒤에는 새 육수를 부어 맑은 국물을 손님에게 낸다.
이렇게 나온 돼지 곰탕은 묵직한 놋그릇에 담긴다. 뜨겁지 않고 먹기 좋은 온도로 나온 곰탕이 빠르게 식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에 수만 원을 호가하는 거창 유기 놋그릇을 쓴다. 한 그릇을 비울 때까지 그릇은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 셰프의 의도대로 0.8%의 염도를 정확하게 지킨 국물의 간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의도한 맛의 최적의 상태로 손님에게 내는 것. 요리하는 사람의 고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정성이 담긴 곰탕 한 그릇을 만드는 옥 셰프의 모습에서는 어떤 불편한 고민도 스트레스도 없어 보였다. 옥동식을 열고 난 후 그간 괴롭히던 만성두통도 사라지고 매일매일이 즐겁다는 그의 말과 표정에서 요리사로서의 순수한 열정을 읽었다. “내 손을 떠나면 음식 맛도 변한다”며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홀로 분주히 움직이는 옥 셰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곰탕으로 따뜻해진 속도 가슴도 따뜻해진다.
테이블 한 구석에서 조용히 음식을 먹고는 ‘정말 잘 먹었고 감사하다’며 고개 숙이며 인사를 하고 간 손님의 한 마디에 말 못 할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다는 옥 셰프.
좋은 한 끼란 이렇게 먹는 이와 만드는 이 모두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