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X싱가포르 프로젝트
저마다 여행을 추억하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는 노트에 빼곡히 여행을 기록한다. 여행을 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만난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쓰는 건 꽤 고전적인 방법이다. 뜨겁게 느낀 감정을 여과없이 기록한 일기는 언제 읽어도 현장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여행을 추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사진을 찍는다. 눈으로 본 순간을 이미지로 박제하는 것이다. 어렴풋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데 사진은 강력한 도구다. 이보다 동영상이 더 낫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미지와 음향, 그리고 생동감을 담은 동영상이 훨씬 직접적으로 기억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동영상은 영상을 재생할 플레이어가 없다면 그저 0과 1로 구성된 데이터일 뿐이다. 편집해야 하는 수고도 만만찮다. 아무리 동영상의 시대라고 하지만 물리적인 형상을 가질 수 있는 사진이 주는 가치는 비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추억할만한 기념품을 사모으기도 한다. 기념품은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매개체다. 여행을 가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잡동사니에 불과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
여행을 추억하는 나만의 방법은 현지의 요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가급적 현지의 식재료를 공수해서 요리를 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나라 음식이 어떻게 맛있었느냐를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현지식 요리를 만들어 함께 먹는 것이 빠르다. 때론 글보다, 사진보다, 기념품보다 더 강렬하게 추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타인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얻는 기쁨도 함께 누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래서 어딜 가든 반드시 현지 시장이나 마트를 꼭 들린다. 한 나라의 식문화를 한눈에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시장이나 마트는 두 번 이상 방문한다. 처음은 이 나라에는 어떤 음식들이 있고 무엇을 먹나 밑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음식을 먹어 본다. 그런 다음 보통 출국 당일이나 전날 시장이나 마트를 들려 먹은 음식과 식재료를 매칭 시켜본다.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재료를 사는 식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식재료가 구매 1순위다.
주의할 것은 국내에 들어올 때 유제품과 과일, 육류는 반입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밀봉 포장된 제품은 가능하지만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다. 세관에서 압수돼 소각되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외국에서 식재료를 사 오기 전 반드시 반입금지 규정을 꼼꼼히 읽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이번 싱가포르 여행에서도 마트 방문은 빠지지 않았다. 고른 식재료들은 바쿠테 Bak Kut Teh 스파이스를 비롯해 태국식 톰얌 Tom Yam 페이스트, 칠리 크랩 소스, 각종 커리 파우더와 오탁 오탁 소스 등 주로 액상소스나 파우더 형태의 가공품이다. 들고 가기도, 요리하기도 간편하고 반입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수년간 일했던 친구를 초대해 싱가포르식 갈비탕인 '바쿠테'를 만들었다. 조리법은 굉장히 간단하다. 손질된 돼지 등갈비를 한번 삶은 후 물에 바쿠테 스파이스가 들어있는 티백과 함께 넣고 한 시간 정도 끓이면 완성이다.
싱가포르에서 바쿠테가 맛있기로 유명한 ‘송 파 바쿠테 Song Fa Bak Kut Teh’보다야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친구는 바쿠테 한 그릇을 맛보며 오래전 싱가포르에서 살았던 추억을 떠올렸고, 나는 힘들게 찾아가 맛있게 먹었던 송 파 바쿠테의 맛을 다시 떠올리며 그때 받은 감동과 기분을 다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싱가포르 여행은 끝났지만 가끔 그때의 향기와 맛이 그리울 때면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볼 생각이다.
여행을 오감으로 추억하는 나의 방식이다.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았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