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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Dec 21. 2017

경북 영주 무쇠달 마을에서 찾은 여행의 목적

여행, 그리고 짧은 생각들



여행, 괜스레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단어다. 길가에 수더분하게 피어난 꽃이나 이파리에 촉촉하게 맺힌 이슬, 나지막이 내리쬐는 햇살 같이 사소한 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할 수 있는 것도 여행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잠들어 있던 감각이 열리는 기분,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느끼기 힘든 이 설렘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규정한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절경을 감상하고 산해진미를 먹는 것, 비일상의 경험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이지만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생각들을 얻어가고 그 생각들을 통해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목적임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경북 영주의 숨은 보석, 무쇠달 마을


서울에서 경북 영주 시내로 가는 초입에 위치한 무쇠달 마을은 여행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소위 ‘관광지의 3대 조건’이라는 것이 있다. 압도적인 풍광과 역사적인 유적, 그리고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소백산 자락 시작점에 위치한 무쇠달 마을은 세간의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별히 내세울만한 거리는 많지 않다. 곧 있으면 사라질 작고 소박한 간이역과 50호 남짓한 가옥이 전부다. 무엇이 이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것일까. 



공간 디자인에서 채움과 비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비워진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채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여백의 미다. 비어 있지만 오히려 감상자 각자의 상상력으로 빈 공간이 채워진다. 무쇠달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백 투성이지만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여력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흔한 편의시설 하나 없지만 여백을 채워주는 건 이 곳이 갖고 있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다. 



무쇠달 마을 이름의 유래와 희방사


‘무쇠달’하면 쇠로 만든 달이 연상되지만 사실 다리와 연관이 있다. 오래전 이 마을에는 무쇠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무쇠다리, 즉 무쇠달 마을로 불렸다. 지금은 수철리 무쇠달마을이라 불리지만 수철리의 옛 지명도 ‘수철교(水鐵僑)리’였다. 무쇠다리가 놓인 배경을 차근차근 따라올라 가다 보면 인근의 사찰 ‘희방사’와 연관된 설화와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백산 인근 산속 동굴에서 홀로 도를 닦던 두운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비녀가 목에 걸린 호랑이를 구해줬는데, 호랑이는 은혜를 갚으려고 한 처녀를 물어다 주었다. 스님은 호랑이를 크게 꾸짖었고 알고 보니 물려온 처녀는 경주 호족의 외동딸이었다. 스님은 먼 길을 걸어 처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호족은 감사의 의미로 스님이 수행하던 곳에 암자를 지어 주고 편히 왕래할 수 있도록 무쇠로 된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경주 호족이 딸이 돌아온 것을 기쁘게 여겨 ‘기쁠 희(喜)’에 두운 스님의 참선 방을 상징하는 방(方) 자를 쓴 것이 지금의 희방사다.   



원래는 지금의 희방사역 밑으로 개천이 흘렀고 그 자리에 무쇠다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앙선 철도부설을 위해 하천의 물줄기를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는데 무쇠달 마을 왼편 굴다리를 지나면  무쇠다리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무쇠다리를 재현해놓은 작은 돌다리를 찾아볼 수 있다. 무쇠다리라고 하면 크고 튼튼한 철교가 상상되지만 설화 속 무쇠다리는 작은 다리였다고 한다. 당시의 기준으로 오늘날과 같은 철교를 만들기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무쇠가 1300여 년을 무사히 버티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해볼 따름이다. 


희방사역과 캐러반 열차펜션


희방사역에서 희방사까지 소백산 자락으로 1.5Km가량 조성돼있는 탐방로는 소백산을 오르고자 하는 등반객들에게 인기 있는 산행 코스다. 보통 등반객이 오가는 곳이라면 각종 편의시설과 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기 마련이지만 그동안 마을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만큼 마을을 산책하기 쾌적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길이 얽히고설킨 골목길을 거닐고 있노라면 반듯하고 깨끗하게 조성된 관광지에서는 느끼기 힘든 포근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희방사역은 소백산역으로도 불린다. 1942년 4월 처음로 문을 연 이래 70년이 넘게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곳이다. 한때는 한해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타고 내렸던 기차역이었지만 지금은 하루에 네 번 기차가 정차하고 한 명의 역무원이 근무하고 있는 작은 간이역으로 남았다. 중앙선 복선화로 인한 폐역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작은 간이역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쓸쓸한 정취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마을에는 희방사역이 북적거릴 무렵 만들어진 철도청 관사 옛터도 남아있다. 



희방사역 기찻길 옆으로 나란히 놓인 열차펜션은 꽤 재미있는 곳이다. 이곳에 굳이 숙박용 카라반을 놓은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하룻밤을 묵어보고 나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투박한 겉모양과는 달리 내부는 포근하다. 해가 진 후 카라반 침대에 누웠다. 창가 너머로 달빛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철길 때문일까. 문득 유럽과 인도에서 경험했던 야간열차가 떠올랐다. 가끔 들리는 기차 소리는 자고 일어나면 미지의 어디론가로 데려다 놓을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준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철길과 그 너머로 펼쳐진 소백산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다.



죽령옛길에 얽힌 이야기


희방사역에서 무쇠달마을을 보고 섰을 때 왼편으로 난 길이 있다. 바로 죽령옛길이다. 지금은 산책으로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정비가 돼 있지만 과거엔 “아흔아홉 굽이에 내리막 30리 오르막 30리”라고 할 만큼 산세가 험한 길이었다. 하지만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최단 경로인 탓에 사람들은 힘들어도 이 험한 고개를 넘었다. 주로 과거길에 오르는 선비들, 한양과 지방을 오가는 관리들, 봇짐을 멘 보부상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에 이들을 노린 산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설화는 ‘다자구 할머니’ 이야기다.



인근 관아에서는 죽령길에 신출귀몰하게 출몰하는 산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산세가 험한 탓에 근거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산적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관아에 찾아왔다. 할머니는 산적을 소탕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것처럼 산적들에게 접근해서 그 들이 모두 잠들면 ‘다자구야’, 깨어있을 때는 ‘들자구야’ 라고 외쳐 신호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산적 무리 속으로 들어간 할머니에게 곧 기회가 찾아왔다. 산적 우두머리의 생일날, 산적 무리들 이 대낮부터 모두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숲 속에 매복한 채 할머니의 신호만 기다리던 관군들은 ‘다자구야’ 소리가 들려오자 곧장 산적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죽령길의 산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할머니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다자구 할머니’가 죽령산신이 되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었으리라 믿었다고 한다. 




무쇠달 마을과 영주


여백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무쇠달 마을은 산책하기도 묵어 가기에도 매력적인 곳이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과거의 흔적, 도시에서 잃어버린 향수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드는 캐러반에서의 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소백산 자락의 상쾌한 산 공기를 마시며 고요한 마을을 산책하다 보면 그동안 잠자고 있던 생각의 아지랑이가 소록소록 피어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 지루하면 어떨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마을에서 20-30분 거리에 있다. 



무쇠달 마을에서 찾은 심신의 안정과 여유로 생각과 마음을 살찌웠다면 이제 배를 채울 차례다. 차를 달려 영주 시내에 가보자. 사과, 인삼과 더불어 영주를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가 바로 한우다. 강원도에 횡성이 있다면 경북에는 영주가 있다. 소백산의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산야초를 먹고 자란 영주의 한우는 육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영주시 번영로 일대에는 한우를 취급하는 식당들이 밀집해 있는 한우 골목이 조성돼있다. 



영주 한우 식당에선 흔히 먹는 등심이 아니라 갈빗살과 안창살만을 취급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영주 한우로 육수를 내고 메밀을 직접 뽑아 냉면을 내는 <서부 냉면>도 가볼 만한 식당 중 하나다. 이북식 냉면뿐 아니라 한우 불고기로도 이름난 곳이다. 이외에도 직접 반죽해 뽑은 수타면으로 만든 옛날 짜장면으로 유명한 <일월 식당>, 맑고 담백한 흰 감자탕을 자랑하는 <명동 감자탕>의 도 영주시내를 찾았다면 반드시 들려봐야 할 식당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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