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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Jan 11. 2018

伊 양대 치즈, 그라노 파다노와 파르미지아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한 번쯤 이탈리아 요리를 집에서 해 보겠다고 마트를 찾으면 으레 당면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바로 파스타나 리조토에 쓸 치즈를 고르는 일이다. 단단한 경성치즈가 필요한데 대개 선택지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이하 파르미지아노)와 ‘그라노 파다노’ 두 가지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가격도 일, 이천원 차이라 그냥 싼 걸 살까 하다가도 그래도 비싼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두 치즈를 들었다 놨다 해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으리라. 대체 이름도 요상한 이 치즈들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장 보는 이의 마음을 이리도 괴롭히는 것일까.      



유럽에서 치즈 종류가 많기로는 프랑스와 어깨를 견주는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치즈의 왕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다. 이를 영어식으로 줄인 이름이 많이 들어봤을 법한 파르메산 치즈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주 파르마 지역에서 엄격한 규칙에 의해 생산되는 치즈에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진하게 풍기는 복잡 다양한 풍미와 폭발하는 감칠맛이 특징이다. 흔히 피자집에서 볼 수 있는 가루 형태의 미국산 파르메산 치즈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면 그라노 파다노는 무엇인가. 그라나 파다노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광범위하게 생산되는 경질치즈로 파르미지아노와 거의 유사한 제조과정과 특징을 갖고 있다. 일각에선 그라노 파다노가 파르미지아노에 비해 풍미가 떨어지고 비교적 가격이 낮아 품질이 한 단계 낮은 치즈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대단한 오해다. 어디까지나 그 쓰임새와 특성이 다를 뿐 품질의 우열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



치즈는 대부분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칼슘과 인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성분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음식 맛을 돋우는 감칠맛까지 갖고 있어 전통적으로 유럽의 식탁에 치즈는 빠지지 않는 식재료다.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치즈 제조기술이 유럽에 전파된 후 유목생활을 하는 유럽 각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즈가 만들어졌다. 남는 우유를 가공해 만드는 치즈는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하면서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리스·로마시대에 이르러 치즈 제조 기술이 급격히 개선되었고 오늘날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치즈의 형태와 제조법은 중세에 완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라노 파다노와 파르미지아노는 12세기쯤 이탈리아 북부의 수도사들에 의해 탄생했다.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유에 효소를 넣고 56도 정도 온도에서 저어 주면 단백질이 뭉쳐지면서 치즈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이 덩어리들을 원형틀에 넣고 모양을 잡은 후 소금물에 담갔다가 일정한 시간 동안 건조 숙성을 시키면 치즈가 완성된다. 두 치즈의 공통적인 특징은 거친 입자감이다. 그라노 파다노의 그라노는 이탈리아어로 곡물 낱알을 뜻하는데 씹으면 까슬까슬한 단백질 결정이 느껴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치즈에 비해 수분이 거의 없어 단단한 특성 덕분에 오래 저장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풍미 또한 남다른 편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치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사용되는 원유가 다르다. 젖소의 종류에 따라 우유의 맛이 달라지고 같은 종류의 젖소라도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일반 곡물 사료를 먹은 젖소의 원유를 사용하는 그라노 파다노에 비해 파르미지아노의 경우 목초를 먹은 특정 젖소의 원유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지방 함량의 정도다. 그라노 파다노는 원유 위에 뜨는 지방을 걷어낸 상태에서 치즈를 만드는 데 비해 파르미지아노는 탈지유와 원유를 섞어 만들어 지방 함량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장기간 숙성을 통해 풍미가 깊어지는데 미묘한 풍미 차이는 두 치즈의 지방 함량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파르미지아노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 파르마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것과는 달리 그라노 파다노는 이탈리아 북부 대부분의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만들어진다. 생산량은 그라노 파다노가 월등히 많은 편이다. 생산에 걸리는 시간도 차이가 난다. 그라노 파다노의 경우 지방이 적어 최소 9개월이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지만 지방 함량이 많은 파르미지아노의 경우 적어도 12개월은 숙성을 시켜야 판매가 가능하다. 두 치즈의 가격 차이는 이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접할 수 있는 두 치즈는 대부분 최소 숙성기간을 거친 어린 치즈들이다. 오래 숙성된 것에 비해 풍미는 떨어지지만 그만큼 풍미가 섬세해 요리에 사용하기 좋다. 장기 숙성된 그라노 파다노나 파르미지아노는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음식이 된다. 이탈리아에서 강한 술과 함께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 이제 마트로 다시 돌아와 보자. 어떤 치즈를 사야 할까. 사실 정답은 없다. 여유가 된다면 되도록 두 치즈를 사서 먹어 본 후 취향에 맞는 치즈를 찾으라 권하고 싶다. 강판에 갈아서 파스타와 리조토 맛을 완성하는 조미료로 사용해도 좋고 조각내어 와인 안주로 먹어도 좋다. 중요하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두 경질치즈를 칼로 썰지 말고 그냥 큼직하게 손으로 거칠게 잘라서 한 입 먹어 보자. 입자감이 살아 있는 경질치즈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는 서울신문에서 격주 목요일 연재되는 음식과 요리 그리고 여행에 관한 칼럼입니다.




유럽의 치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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