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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Sep 20. 2018

이탈리아인의 ‘커피 부심’에는 이유가 있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미국의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가 이달 초 이탈리아에 상륙했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에 지점을 두고 있는 걸 생각해 보면 무슨 호들갑인가도 싶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의 김치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한 상황과 같달까.


이탈리아 사람들 눈에 비친 스타벅스는 이탈리아 문화를 카피한 일종의 ‘짝퉁’이다. 실제로 스타벅스의 창업자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 커피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 스타벅스가 과연 커피 종주국으로 자부심 높은 이탈리아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스타벅스 밀라노점 내부 모습(ⓒStarbucks)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다. 커피를 음료로 마시기 시작한 곳이 이탈리아도 아닌데 어째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 부심’을 갖게 된 걸까.


이탈리아의 커피를 이야기하기 전에 커피가 어떻게 유럽으로 건너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료가 됐는지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커피의 발견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어떤 열매를 먹은 염소가 잠들지 않고 날뛰는 것을 본 성직자들이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음료로 만들었다는 것부터, 잠을 많이 자는 병에 걸린 선지자 무함마드를 위해 천사가 커피를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위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주목할 건 커피가 잠을 쫓고 정신을 명료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는 음료로 인식됐다는 점이다.



각성 효과가 있는 커피의 가치를 맨 처음 발견한 건 아랍인들이었다. 그들은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커피를 인근 예멘에 옮겨 심으면서 본격적인 상업재배를 시작했다.


교역과 전쟁을 통해 아랍의 커피 문화를 접하게 된 유럽의 상류층은 이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음료에 금방 빠져들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커피가 유럽으로 들어오는 입구 역할을 한 만큼 커피를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정작 카페 문화를 선도한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17세기 무렵 유럽 곳곳에 카페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1683년 베네치아에 처음 생긴 카페는 아랍풍으로 꾸며진 일종의 외국문화 체험 공간이었다. 1702년 파리에 문을 연 프로코프 카페는 유럽식으로 꾸며진 최초의 카페였다.


아랍인들이 그러했듯 유럽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정신이 맑아진 상태, 때로는 고양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즐겼다. 학자들은 카페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을 넘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여론이 모이는 공론장 역할을 했고 이때부터 근대정신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커피는 커피가루를 물에 넣고 끓이는 아랍식으로 제공됐다. 모래알 같은 찌꺼기가 남는 아랍식 추출 방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티백을 이용하는 등의 시도도 이뤄졌고 맛에 대한 개선 노력도 끊이지 않았다. 


1884년 열린 이탈리아 토리노 박람회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등장하면서 전 세계 커피 산업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고압으로 추출한 커피 맛도 혁신적이었지만 인기를 끈 비결은 한 시간에 300잔, 단 몇 분이면 십 수 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다는 점이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성공에 힘입어 20세기 초 이탈리아는 전 세계 커피 산업을 주도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개량을 거듭해 불티나게 팔렸고, 가정에서도 쉽게 커피를 추출하는 커피포트가 출시되면서 안팎에서 커피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막대한 양의 원두를 수입해 가공·판매할 뿐 아니라 커피를 완성시키는 머신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면서 커피에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각인시켰다.



빠르게 추출되는 에스프레소는 특히 1950년대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일터에 나가는 이탈리아인들은 에스프레소를 한 잔 들이키며 하루를 시작했다. 대체로 진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곁들였다. 카페인의 각성효과와 더불어 설탕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었다. 그들에게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연료였던 셈이다.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다양한 방식의 커피 음료가 탄생했는데 우유를 섞은 카페라테, 우유 거품을 이용한 카푸치노와 마키아토 등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인에게 커피에 우유가 아닌 다른 것을 섞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에스프레소에 물을 가득 타 묽게 만든 다는 건 이탈리아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 무더운 여름날 갓 뽑아낸 에스프레소를 얼음물에 타 마시는 나를 보고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탈리아 친구의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대부분 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의 기질만큼이나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빠르게 사라진다. 밀라노의 스타벅스 매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카페가 아닌, 마치 커피를 테마로 한 놀이공원처럼 꾸며놓았다. 커피 자체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일종의 문화 체험 공간인 셈이다.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상륙은 어쩌면 커피가 삶의 일부인 이탈리아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유명 커피 메이커들도 스타벅스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하지만 대중은 언제나 변덕스럽고 새로운 걸 원하는 법. 커피 종주국에 발을 들인 스타벅스 밀라노점이 이탈리아인들에게 미국식 커피 문화를 선사하는 흥미로운 장소가 될지, 아니면 그저 관광객의 순례지로 전락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는 서울신문에서 격주 목요일 연재되는 음식과 요리 그리고 여행에 관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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