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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Oct 14. 2018

음식의 '혁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본 식품 무역전시회>를 다녀오고 <SIAL PARIS >를 기대하다



우리는 언제 이 세상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낄까.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아파트와 쇼핑몰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장면을 바라볼 때? 반 세기 넘도록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두 나라의 정상이 극적인 포옹을 했을 때? 아니면 휴대폰에 얼굴만 갖다 대도 저절로 잠금이 해지될 때?


'문명과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한 가지는 안다. 진보든 퇴보든 어쨌거나 우리는 변화의 물결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이다.


질문의 범위를 조금 좁혀보자. 우리가 먹는 음식은 진보하고 있을까? 100년 전 구한말의 음식보다 지금의 음식이 진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역시도 무수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질은 어떨지 몰라도 그때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손쉽게 구하고 먹게 됐다는 건 분명하다. 하루 종일 고아야 맛볼 수 있는 사골국물을 봉지를 뜯는 몇 초의 수고만 하면 먹을 수 있고,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리기만 하면 갓 지은 것만 같은 쌀밥을 맛볼 수 있다.


이런 수고 없이도 스마트폰에 손가락 몇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 완성된 음식을 내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시대다. 음식 자체가 변하기도 하고 음식을 둘러싼 환경도 변한다.


변화는 혁신에서 시작된다. 필요에 의해서 혁신이 이뤄지기도 하고 어떤 혁신은 새로운 필요를 낳기도 한다. 우리가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대부분은 과거의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라면, 햇반, 레토르트 식품 등 음식가공 혁신에서부터 배달 배송 서비스 등 물류 혁신 등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혁신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일 일본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2018 일본 식품 무역전시회>를 찾은 건 가까운 일본에서 식품에 있어 어떤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와 농림수산성이 주관한 이번 전시는 일본 제품의 수출 활성화가 목적이지 '혁신'이 주 테마는 아니었다. 수출을 지향하는 만큼 그래도 특색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방문한 터였다. 참가한 800여 업체의 부스를 둘러보고 나니 일본의 생산-가공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엿볼 수 있었다.



뻔한 식재료를 어떻게 참신한 아이템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 고민은 ‘어떻게 제품을 차별화시킬까’에서 시작한다. 음식에 있어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발상을 가능케 하는 건 상상력이다. 뻔한 생각으로는 뻔한 제품밖에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전시회에 나온 제품 중 90% 이상이 그런 제품이었다. 다양한 맛과 색을 입힌 유부초밥, 원형으로 만든 초밥, 스낵으로 만든 전복, 말린 과일 등 특별한 재미도 감동도 느껴지지 않는 제품이 상당수였다.



고루한 제품들 속에서 맨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건 게장으로 만든 '반냐 카우다'였다. 북부 이탈리아 전통 음식 중 하나인 반냐 카우다는 엔초비와 마늘, 올리브유로 만든 일종의 디핑소스다. 여기에 야채를 찍어 먹기도 하는데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운 요리사나 현지에서 맛본 사람 정도만 아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요리다.   

 


엔초비의 강한 감칠맛 대신 부드럽고 깊은 감칠맛을 가진 게장을 활용한다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이런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떻게 나온 걸까 궁금했다 엔초비 대신 다른 재료를 사용해 반냐 카우다를 만든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왜냐면 반냐 카우다란 요리는 엔초비가 반드시 들어가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게장으로 반냐 카우다를 만든 순간 반냐 카우다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게장 반냐 카우다는 그것이 정말로 중요할까란 물음을 던진다. 풍미가 강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디핑소스. 그것이 반냐 카우다라는 음식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다. 국적과 음식의 범주를 다양하게 넘나 들 수 있는 건 결국 상상력의 힘이다.


물론 반냐 카우다라는 음식을 만들어도 소비자들이 이해해줄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음식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란 만무한 일이다. 게장 반냐 카우다는 우리나라에 비해 좀 더 심화된 이탈리아 요리가 선보이는 일본이기에 가능한 제품일지도 모른다.



두부 제조가공업체 사가미야 사의 ‘Beyond Tofu’는 이번 전시에서 혁신의 하이라이트였다.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뻔한 식재료 두부를 완벽히 치즈 화한 제품이다. 이것은 단지 ‘두부를 치즈로 만들었네, 재미있네’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두부 하면 떠오르는 기존의 요리가 아닌 다른 차원의 영역의 요리에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체다나 고다치즈 정도의 질감으로 만든 반경성 두부는 이탈리아 요리에 빠지지 않고 쓰는 파르미지아노나 그라노파다노 치즈를 대체할 수 있다. 부드러운 크림 같은 텍스쳐의 마스카포네 두부는 두부 티라미수라는 디저트로. 모차렐라 형태의 두부는 두부 피자로 활용할 수 있다. 응용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한 레시피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요리사의 창의력를 자극하는 제품이다.


사가미야의 비욘드 토푸는 이번 전시 부스 중 가장 팬시 하게 꾸며졌다. 포장 디자인 감각도 단연 돋보인다. 두부 치즈를 치즈 대용으로 활용하거나 구매하는 소비자층은 누구일까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채식 시장에서 맛도 좋고 흥미로운 식물성 치즈의 등장은 큰 의미가 있을 전망이다.



이 밖에 흥미를 끈 제품으로는 씹는 질감을 완전히 변화시킨 곤약, 와사비와 포르치니, 생강 등 갖가지 풍미를 진하게 입힌 오일, 녹차로 만든 사이다, 토마토의 감칠맛과 상큼함을 극대화시킨 토마토 비네거, 서양요리에 쓰기 좋게 만든 우메보시 파우더 등이 있었다. 기존의 제품을 변주시켜 다양한 쓸모를 만들어냈거나 기존에 없던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했다는 점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예로 든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혁신적인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역 전시회다보니 혁신적인 제품보다는 잘 팔릴 수 있는 제품 위주로 출품된 탓도 있었으리라.


혁신에 대한 갈증은 오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SIAL PARIS>를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혁신이 주요 테마인 SIAL PARIS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식품박람회다. 109개국 7200여 개 업체가 참가한다.



단지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푸드 트렌드와 지속 가능한 생산과 윤리적 소비를 위한 대안식품의 현주소,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주목할 만한 푸드 스타트업, 푸드서비스와 농업 분야에서 이뤄지는 혁신 등을 한 자리에서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올해의 혁신상을 받은 15개 제품 중 한국 제품이 포함됐다는 게 눈에 띈다. 농업회사법인 미와미의 김치 잼이다. 어떻게 맵고 짠 김치를 달달한 잼으로 만들 수 있는지 한국인의 입장에선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외국인 심사위원단은 발효 식품을 디저트로 만들었다는 지점에서 흥미를 느낀 듯하다.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은 혁신의 씨앗이다. 이렇게 자라난 혁신은 우리 삶을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오는 SIAL PARIS 2018에 참가해 앞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보고 올 참이다. 다가올 혁신의 현장이 꽤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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