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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Nov 29. 2018

프랑스의 통영에서 맛 본 굴의 풍미

<장준우의 푸드오디세이>



파리에서 기차로 세 시간, 거기서 또 자동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캉칼이라는 작은 어촌마을. 당일치기로 왕복 600㎞가 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 건 프랑스 최대의 굴 양식장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지만 ‘브르타뉴 굴의 수도는 캉칼’이라는 말이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프랑스의 통영’이라고 할까.



캉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풍경은 7㎞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굴 양식장이다. 테이블 형태의 골조에 사각형으로 생긴 그물망을 올려놓았다. 우리나라 서해 일부 지역에서도 사용되는 이른바 수평망 양식법이다.


굴 유생이 부착된 줄을 깊은 바다에 매달아 키우는 우리나라 남해안의 수하식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이곳에서는 6개월 정도 자란 굴을 그물망에 넣고 재배한다. 수확할 때는 그물망만 들어 옮겨 트랙터에 실으면 되니 배로 옮기는 것보다는 수월한 방법이다.



양식장이 한눈에 보이는 곳 한켠엔 싱싱한 굴을 파는 노점이 자리잡고 있다. 얼핏 익숙한 풍경이다. 이것에서는 한 다스에 4.5~6유로 정도 되는 가격으로 다양한 크기의 굴을 판매한다. 굴 값이 저렴하기로 소문난 곳에 사는 한국인들조차 눈을 의심케 하는 가격이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굴로 배를 채우자 싶어 내친김에 네다섯 접시를 산 후 근처 아무 데나 걸터앉아 굴을 까먹기 시작했다.


왔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벤치 앞에 하얗게 펼쳐진 건 백사장이 아니라 굴 껍데기 무더기였다. 굴 하나를 손에 들고 후루룩 마신 뒤 껍질을 아무 데나 던져버리는 그 쾌감이란. 전 세계 해안가에는 종종 굴 껍데기 무덤이 발견된다는데 그 이유를 알 법도 했다.


굴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맛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삼총사’를 쓴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는 굴을 두고 “연체동물 가운데 자연의 혜택을 가장 받지 못했다”고 했다. 머리도 눈, 코, 입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오로지 먹고 잠만 자는 이 생물을 기이하게 본 사람은 뒤마뿐이 아니었다.



음식 과학자 해럴드 맥기는 “우리가 먹는 동물 가운데 가장 이상하게 생겼다”고 평했고, ‘걸리버 여행기’를 쓴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굴을 맨 먼저 먹은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도대체 누가 이 이상한 생명체를 먹어 볼 생각을 했을까.


굴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건 고대 그리스 때의 기록이다. 먹고 남은 굴 껍데기를 투표용지로 썼다고 하니 얼마나 그리스인다운가.


굴을 최상의 미식재료로 격상시킨 건 로마인들이었다. 전 세계 온갖 산해진미를 구하는 데 혈안이었던 로마의 귀족들은 프랑스 북부 해안가에서 자란 굴이 유독 맛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마의 세네카와 프랑스의 앙리 4세,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등 당대 내로라하는 식도락가들은 굴에 이상하리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19세기까지도 프랑스 굴은 유럽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었다. 수요가 늘자 영원히 풍부할 것만 같았던 굴의 수확량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이미 굴 양식을 하고 있었던 프랑스였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프랑스산 토종 굴이 멸종되다시피 하자 굴 양식업자들은 포르투갈산 굴을 들여왔다. 프랑스산 굴의 자리를 포르투갈산 굴이 대체한 것이다 한 세기 동안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굴이 아닌 포르투갈산 굴을 먹어 왔다.


유럽산 굴. 태평양 굴과는 다르게 둥글고 납작한 모양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70년대 포르투갈산 굴이 질병에 걸리면서 생산이 급감하자 굴 생산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시아로 눈을 돌린 그들이 찾은 것은 태평양 굴이라 불리는 참굴이다. 참굴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생산되는 종이기도 하다.


태평양 굴은 유럽 굴에 비해 질병에 강하고 맛도 더 좋았다. 다행히 포르투갈산 굴과 태평양 굴은 모양과 맛이 비슷해 자연스럽게 프랑스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즉 캉칼에서 먹었던 굴은 키운 바다만 다를 뿐 남해안 통영에서 먹은 굴과 같은 종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프랑스는 매년 15만t의 굴을 생산한다. 유럽산 굴의 90%에 달하는 물량이다. 이 중에서 98%는 태평양 굴이고 나머지 2%는 껍데기가 둥근 유럽 굴이다. 유럽 굴은 확실히 익숙한 굴 맛과는 달랐다. 태평양 굴이 싱그러운 오이향, 해조류 향이 지배적이라면 유럽 굴은 약한 금속 맛이 묘한 이질감을 준다고 할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기후와 풍토가 식재료에 주는 영향은 크다. 귤과 탱자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자란 같은 식재료의 맛이 궁금하다면 캉칼에 가 볼 이유는 충분하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는 서울신문에서 격주 목요일 연재되는 음식과 요리 그리고 여행에 관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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