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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형 인간의 여행이란

퇴사와 육아휴직

by 리안

역병의 시대를 꿋꿋이 견뎌낸 우리는 마침내 한반도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기회만 엿보던 어느 날, 드디어 하늘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저녁 시간이면 무언가에 홀린 듯 매일같이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던 나는, 이미 세계의 모든 나라를 다녀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모름지기 여행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시간, 돈, 그리고 튼튼한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어디로 갈지, 언제 떠날지도 정하지 않았지만, 우선 튼튼한 다리부터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매일 저녁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는 대신, 나는 학교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다.


월 평균 걸음 수


평소 아킬레스 건염을 짝꿍처럼 달고 지내던 나는 이때의 걷기 운동을 통해 비로소 건강한 아킬레스를 가진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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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퇴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주변에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겁도 없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도 나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육아휴직도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그때는 아직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그해, 우리 가족은 하나의 팀이 되어 서로를 이끌어 주었고,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내 아이는 대견하게도 부족한 엄마를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전쟁 같았던 1년이 지나고, 나는 결국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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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회사에 육아휴직 의사를 밝혔다. 그전부터 쉼이 필요해 보였기에 내가 먼저 육아휴직을 권했다. 회사에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우리는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

당시 육아휴직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이라, 육아휴직 기간 동안 월급의 100%를 받을 수 없었고, 상한액이 150만 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마저도 매달 약 30만 원을 적립해 두었다가 복직 후에야 돌려준다고 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어지자 걱정이 앞섰다.


남편은 미리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마도 내가 남편이 할 걱정까지 모두 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남편처럼 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으면 본인이 조기에 복직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육아휴직 기간을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들로 가득 채워보자고 남편이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장기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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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신보다 나와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아껴주는 따뜻한 내 남편.

그런 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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