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위한 오징어들의 반란
쿠알라룸푸르의 AC호텔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푸트라자야에 위치한 Moxy 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 주요 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이동 시간이 길었고, 비교적 공항에서 가까운 푸트라자야로 이동하여 랜드마크인 핑크 모스크를 방문하고도 싶었다.
게다가 운 좋게 본보이 메리어트의 타깃 프로모션을 통해 각각 다른 호텔에서 3번 숙박하면 22,500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었는데, 이 포인트는 현금으로 따지면 약 23만 원 상당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가 맞물려 우리는 호텔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Moxy 푸트라자야는 2024년 초에 오픈한 따끈따끈한 신상 호텔이었고, 새로운 호텔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도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Moxy는 W 호텔의 저렴이 버전으로, 젊고 힙한 감성을 강조한 브랜드다. 호텔 내외부에 감각적인 디자인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어 눈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객실에서 창을 내다보면 맞은편에는 르 메르디앙 호텔이 보였고, 바로 옆에는 쇼핑몰이 붙어 있어 편의성도 뛰어났다.
나는 핑크 모스크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남편과 아이는 호텔 수영장에 푹 빠져 종일 수영을 했다.
남편은 "우리가 무슬림도 아닌걸!"이라 말하며 아이와 좋아하는 수영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내 가치관이 또 한 번 흔들렸다.
나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패키지여행처럼 일정에 따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는 다르게 생각했다.
랜드마크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결국 나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핑크 모스크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남편과 아이가 행복하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억지로 랜드마크를 방문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Moxy는 수영장마저 힙했다.
감각적인 분위기와 수분을 가득 품은 뜨거운 공기가 더해져 마치 열대우림 속 현대적인 수영장에 있는 듯한 오묘한 착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는 한창 잠수 연습을 하느라 바닥을 찍고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물속에서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요동치다 힘이 들면 수면 위에 누워 팔다리를 살랑살랑 거리며 쉬곤 했는데,
그 모습이 꼭 두 마리 오징어 같아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호텔 옆 IOI쇼핑몰을 방문했다. IOI쇼핑몰은 우리나라의 대형 쇼핑몰 못지않게 화려하고 깨끗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후 호텔로 돌아왔고, 아이는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체크인할 때 받은 웰컴 드링크 쿠폰을 챙겨 라운지 바로 향했다.
오랜만에 단둘이 칵테일을 마시고 포켓볼도 치면서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긴 했지만, 혹시라도 낯선 곳에서 깨면 무서울까 싶어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그래도 여행 중 뜻밖의 데이트였고, 오랜만에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푸트라자야에서의 1박을 마치고, 다음 날 오전 태국으로 떠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랜드마크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남편과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생각이 점점 유연해지는 과정의 시작점에 서 있는 듯했다.
지난 싱가포르에서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특별한 하루'일 필요는 없다.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며, 다가올 태국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새로운 여정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