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나는 외도는 곧 이혼이라고 믿었다.
배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 자신도, 그럴 이유도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믿음을 꺾은 채 이 결혼 안에 남아 있다.
아이를 위해서. 단지 그 이유 하나로.
남편은 오래전부터 나와의 대화를 피했고,
내가 힘들어 울부짖을 때조차 그의 눈빛엔 죄책감이 아닌 피곤함이 먼저 서려 있었다.
지난 5월 14일,
그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다.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그렇게 사라지는 동안, 나는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결심이 선 뒤, 모든 일을 친정엄마에게 털어놨다.
미안하고, 죄스럽고, 속상했지만, 엄마는 내 아픔에 함께 울어줬다.
그게 그날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간신히 남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는 가정을 지키겠다며 약속했다.
각서도 쓰겠다고 했다.
나는 5월 21일, 그에게 약속했던 각서를 써달라고 말했다.
그저,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법적인 보호가 필요해서 이기도 했고, 내 감정을 겨우 붙잡아두기 위해서도 그랬다.
그 약속 하나라도 있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마저 거부했다.
“그거 상간 소송에 쓰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내 진심은 의심받았고, 그는
“소송 끝나면 써줄게.” 라며 말을 돌렸다.
나는 그 앞에서 울며 다시 한번 부탁했다.
“부탁이야. 약속 하나만 해줘.
다시는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그러자 그는 마지못해 말했다.
“이번 달 안에는 써줄게.”
하지만 말뿐이었다.
또 말도 없이 집을 나갔고, 전화는 꺼져 있었으며,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말일이 되어 다시 각서를 요구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약속한 적 없어. 내가 쓰고 싶을 때, 더 알아보고 쓸 거야.”
그 각서엔 단지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외도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조차도 거부하는 그의 태도는 내가 알던 사랑하는 내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17년의 세월 동안 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내가 바보구나.
가정을 지키겠다는 말도,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모두 말뿐이었다.
나는 외도를 한 사람도 아닌데, 왜 마치 내가 죄인처럼 이 결혼을 망친 사람처럼 비난받고 외면당해야 할까.
왜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나를 의심하고, 탓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걸까.
매일 스스로에게 계속 묻게 된다.
‘내가 이 결혼을 붙들고 있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일까?’
‘아니면, 내 지난날들이 무너지는 게 두려워서일까?’
상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는 정상적인 책임감을 가진 배우자가 아닙니다.
비정상적인 사람에게 정상적으로 대응하려 하면
감정의 소모만 커질 뿐이에요.”
그의 태도와 상관없이 내 중심을 지켜야 한다.
요즘 나는 매일 정신의학과, 산부인과, 내과 약들을 하루치 약봉지처럼 털어 넣으며 살아가고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요즘, 지금도 나는 스스로를 일으키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곧 남편은 자진하여 지방으로 발령을 받고 떠난다.
우리의 별거가 시작된다.
나는 그날을 이렇게 저장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