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뭐든 다 할게.”
남편의 입에서 처음 들었던 이 말이, 그때는 너무 간절하게 들렸다. 진심 같았고, 나를 잃는 것이 두렵다는 듯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모든 말들은 마치 누가 짜놓은 각본처럼 너무나도 전형적이었다.
남편은 처음 외도를 들켰을 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미쳤었어. 정말 미안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래도 이 사람은 나와 아이를 버리지는 않을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회복이 아니라 ‘발각에 대한 공포’였다.
그는 핸드폰 번호를 바로 바꾸기로 하고, 신용카드도 모두 내게 건네주었다.
“번호도 바꾸고 핸드폰도 바꿀게.”
나는 이 말에 너무도 쉽게 안심했고, 내 마음속 불신의 씨앗은 미처 뿌리도 내리기 전에 덮어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진심의 반성이 아니라, '갈등 종결'을 위한 급한 임시방편이었다는 걸.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는 너무 쉽게 변했다.
“언제까지 이 얘기할 거야?”
“핸드폰 번호는 나중에 바꿀 거야."
이젠 피해자인 내가, 그의 눈엔 귀찮은 사람으로 보였을까.
이전엔 사과하던 사람이, 이제는 싸움의 원인을 내가 만든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아 뜯으며 내게 주었던 신용카드를 다시 뺏어갔다.
그리고 결국 이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나더러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묻더라?”
그는 마치 내가 그동안 본인을 괴롭히며 살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며 신혼 때 있었던 일을 말했다.
임신 중 차에서 립스틱을 발견했던 날.
나는 울며 그에게 립스틱에 대해 물었고, 그는 그 립스틱이 시아버지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새빨간 명품립스틱을 말이다.
추궁 끝에 나 몰래 여직원과 카풀을 해왔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 나는 한번 무너졌던 것 같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나를 붙잡았다.
지금 나를 붙잡아 주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 일은 그의 사과와 함께 쉬이 묻혀버렸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우연히 한 여직원이 남편을 애칭으로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걔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 그 애의 자유야."
라는 망언을 남겼다.
아마 이때 그만뒀어야 했나 보다.
회상을 하다 보니 단호하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정말 바보 같다.
그는 이 일들을 이야기하며 마치 내가 '의부증'인양 나를 말로써 할퀴고 쥐어뜯었다.
그의 외도 사실보다 더 아팠다.
이 사람은 지금, 내가 그를 잘못 믿은 사실조차 내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 지인들에게 우리가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피해자였고, 나는 그저 의심 많고 집착하는 사람이었겠지.
이쯤에서 얼마 전, 정신과 상담 중에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아내에게 잘못을 만들어 자기 합리화를 하려 해도 결국 남편이 스스로 본인이 그런 사람이란 걸 증명해 냈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남편은 불륜의 정석을 밟았다.
그리고 그 정석의 끝에서, 나를 무너뜨리고, 침묵하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이 시간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에게서 희망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또다시 슬픔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