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그랬니?
학창 시절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도 편하다. 조심성 없게 무슨 말이든 해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중학교 친구 2명과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은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그 친구들과는 갑자기 전화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친구들 몇 명과 잘 지내고 있을 거다.
나는 학창 시절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사람을 사귀는 게 힘들다. 상대와 어떤 대화를 할지 모르겠다. 웬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약간 경직된 분위기에 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모임에 가입하고 가끔 사람들을 만난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온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조금 어색하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편안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나에겐 힘들다. 나는 솔직하게 뭐든 털어놓는 편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마음속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지는 못한다. 그래서 내가 사귀고 싶은 사람과 친해지는 게 어렵다.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 사람 관계였다. 동료, 후배, 상사와의 관계에서 업무적인 부분 외에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몰랐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한마디라도 건네려고 애썼다. 아줌마가 되어 동네 엄마들과 친분을 쌓는 것도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어떻게 다가갈지 몰랐다.
고3 때 내 짝꿍은 전교 1등이었다. 역시 그 친구는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학교에는 서울대 합격 현수막도 붙었다. 옆자리에서 그 친구가 공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특히 그 아이의 수학 노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배운 내용을 필기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놓은 연습장이었다. 연습장이지만 누가 봐도 깔끔하게 문제를 풀어놓았다. 마치 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속으로 놀랐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정리를 잘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전교 1등 친구가 옆에 있는 게 처음에 부담되었다. 늘 공부만 하고 수다도 떨지 않을 줄 알았다. 내 예상과 달리 그 친구는 나를 편하게 대했다. 물론 다른 친구들과도 편하게 지냈다. 그런데 나는 속 얘기를 털어놓고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친구관계는 맺지 못했다. 왠지 나는 그 아이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울대에 합격한 그 친구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은 닿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난다. 분명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거다. 열등감을 갖거나 그 친구를 부러워한 건 아니다. 다만 꼭 친구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왜 나는 용기를 내서 사귀려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친구 앞에서 왜 그리 쫄았을까? 나도 학창 시절 그다지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내가 전교 1등과 친해지는 것이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가 좋아서 사귄 게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아이니까 친해지려고 한 거라고 다른 친구들이 생각할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의 상상일 뿐이었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쭈뼛거린 내 자신이 부끄럽다. 다신 그러지 말자. 니 마음만 순수하다면 괜찮은거다.
나는 이제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렀다. 고3 때 그 친구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친해지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정말 좋은 아이였는데.
○ ○ 야 보고 싶다. 잘 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