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난 깨닫지 못했을까?

인생의 터닝포인트

by 양경은


글쓰기 모임에서 제시된 이번 주제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터닝 포인트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뜻하겠지! 전환점을 줄 만한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일주일 내내 생각해보았지만 답을 구할 수 없었다. 지나온 시간들은 남들과 별다를 것 없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남편과 함께 나란히 걸어갔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가을이면 수컷 은행나무를 보면서 갈 수 있다. 노랗게 물든 나무를 멀리 바라보며 걷다 보면 맑은 가을 하늘도 함께 보게 된다. 자연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느려진다. 느려진 걸음 탓인지 대화를 나누면 상대방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평소에 나누지 못하는 쑥스러운 질문도 할 수 있게 된다. 남편에게 인생의 빛나는 순간을 물어보았다. 난 터닝 포인트는 내 인생을 빛나게 밝혀준 순간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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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이제까지 살면서 인생의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어?”

“당신이랑 결혼 한 거지. 애들 낳고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대답이 뭐 그래? 나 좋으라고 하는 말 같은데.”


나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남편은 결혼 이후 기억나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말한다. 남들과 다를 것 없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나도 머릿속에서 생각해본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왜 난 그걸 몰랐지?


빛나는 순간이 바로 떠오르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만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내 일상이 소중하고 빛나는 순간이 연속이었다.


남편과 만나 결혼생활을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한 남자와 20년을 살고 있다. 서로 좋아서 결혼했지만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게 대견할 때가 있다. 시댁과의 갈등으로 신혼 초에 매일 싸웠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잦은 술자리로 인해 남편과 말다툼을 자주 하곤 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로 이겨보려고 했다.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부부싸움이 해결된 적은 없다. 서로 침묵의 시간을 하루 이틀 보내다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같이 사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갈등이나 행복의 순간보다는 특별하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다.


첫 딸을 낳았을 때 남편과 똑같이 생긴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던 장면.

남편 사업 초기에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내 퇴직금으로 3년을 버티며 지내온 시간들.

남편이 오랫동안 정성을 들인 프로젝트를 성공해서 재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

전셋집을 옮길 때마다 대출을 받지 않고도 우리 상황에 맞춰서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

지난달에 내가 만든 나박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식구들이 좋아해 줄 때.

식사 준비를 할 때면 요리 솜씨 좋은 남편이 와서 맛있는 고기 요리를 뚝딱 만들어낼 때.

둘째 딸아이가 중학교 부회장 선거 때문에 고민하고 실행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공부하고 놀기 좋아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가족들이 옆에 있다는 것.



평범한 순간들이 쌓여서 내 삶은 밝게 빛난다. 항상 나를 비추기 때문에 내가 알지 못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지나온 삶에서 슬프고 소중하고 기쁜 순간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내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시간을 갖게 해 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이 순간이 내 삶을 빛나게 해주는 듯하다.

내 삶을 유지하는 것은 평범한 내 일상이다. 좀 더 특별한 순간들은 그저 약간의 양념일 뿐이다. 일상은 빛나는 순간의 연속임을 깨달은 순간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다.


행복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 행복한 순간이 온다.
견디다 보니 빛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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