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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Aug 25. 2021

부부는 결국 남이다.



© jakobowens1, 출처 Unsplash






부부가 남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기에
원활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 그러나 부부가 한 몸, 한마음이어야 하고 절체절명이라고 생각하면 오래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작은 일, 사소한 일에서도 기대의 금이 가서, 실망하고 한숨 쉬게 되지.
딸에게 보내는 굿나이트 키스










이어령 교수님의 첫 번째 책을 접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만 난 이 분의 강연을 보거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교수님에 대해 잘 몰랐다. 이 책은 먼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딸에게 그동안 못 했던 말들을 엮어놓은 내용이다. 그중에서 필사한 부분으로 글을 적어본다.



이번 인용구는 이어령 교수님이 결혼 주례사로 말씀하신 내용이다. 내가 결혼한 지 20년이 돼보니 절절히 공감 가는 말이다. 갓 결혼한 신랑, 신부에게 이 말은 절대로 공감 되질 않을 듯하다. 결혼할 당시는 떨어져 지내면 미칠 듯해서 하지만 막상 같이 살아보면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을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 보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이 원인이 되곤 한다.



남남이 만나서 결혼을 하면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전히 남남이다. 피가 섞이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지금 내 삶을 돌아보면 결혼한 지 20년 이상이 되었고 중, 고등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다. 결혼 첫해는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그러나 점차 세월이 많이 흐르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혼 초기에 상상했던 모습과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남남처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 영역과 시간에서 서로의 삶을 이어가는 듯하다.



주말이 되면 뭔가를 같이 하는 게 귀찮아진다. 마트 갈 때만 남편과 동행하길 바라고 다른 일정에는 나 혼자 다니는 것도 좋다. 밖에서 약속이 있어서 저녁을 해결하고 남편이 들어오면 정말 맘과 몸이 편하다.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을 위한 식사 준비는 늘 부담이 된다.



주위의 주말부부를 보면 아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부러워한다. 우수가 소리처럼 하는 말이지만 다들 진짜 부러워하는 거다. 코로나가 되면서 재택근무가 늘어서 한 공간에 부부가 같이 있을 경우가 많아지면서 힘들어들 한다. 내 결혼생활에 지금 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중년부부들이 으레 느끼게 되는 감정인듯싶다. 주위에서 보면 부부가 각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따로 자는 게 편해서 그런 거다. 나도 이제는 점점 넓은 침대를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데 하루 중 같은 침대가 아니면 살을 부대낄 일도 점점 사라질 듯해서 같은 침대를 쓴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갈 때는 손을 잡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행동이 점차 어색해진다. 하루 중 부부가 소통하는 대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중요하게 서로가 알아야 하고 상의할 일이 아니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 듯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뱉기도 쑥스러울 때가 있다. 점점 진짜 남남이 돼가는 걸까? 그저 돌아갈 집이 같기만 한 것도 같다. 그런데 또 다른 감정이 싹튼다. 남편은 요즘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쓴다. 누구가 이 나이쯤 되면 으레 그러기 마련이다. 건강검진을 받으면 어디 한 군데는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오니깐. 지인과 대화뿐 아니라 남편과 대화도 건강에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예전에는 서로가 무심하게 받아들인 것들도 예민하게 되었다. 몸에 좋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뭔가 실천 거리를 찾는다. 음식과 생활태도를 전반적으로 바꾸고 있다. 나도 절실히 남편 건강을 챙겨주고 싶다. 조금이라도 효과가 좋다고 하면 내 몸이 조금 고생되더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중년 남자에게 기쁨을 줄만한 것들이 많지 않다. 취미라도 꾸준히 하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대부분 가정경제를 돌보느라 본인을 잘 챙기질 못한다.



과거에 부부는 서로 마주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 결혼한 거지만 이제는 옆에 잘 살아주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이미 오래 살아서 상대에 대해 기대할 것과 그렇지 못할 것은 이미 파악이 끝났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다툴 일도 없고 현명하게 피할 줄도 안다.



남이긴 한데 건강하게 나랑 오래 같이 지내길 바라는 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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