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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Nov 20. 2021

무덤덤한 부부의 삶을 이어나가기

부부는 서로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

함께 사는 건 이렇게 흘리면 받고 받아 고이게 하는 두 그릇
<내일이 와준다면 그건 축복이지!>  -이철수-


부부생활은 갖은 희로애락과 함께 한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고 감정대립이 극에 다다르는 날도 있다.허나 아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완전한 공감자가 있다는 든든함도 존재한다. 미울 적도 많지만 혼자 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한순간의 연속이다. 첫출발이야 좋은 감정에서 시작했지만 과정은 헤아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된다. 하강할 때의 기분을 이겨낼 수 없다면 이혼이라는 절차를 밟을 것이다.  상승의 삶은 기대할 수 없지만 언제 가는 하강곡선의 끝이 있으리라는 조금의 확신이 있으면 그냥 살아간다.


며칠 전 딸아이의 수능이 끝났다. 최종 결과는 나오질 않았지만 기적 같은 결과는 바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가 치열하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해왔기에 혹시나 수능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 봤다. 그러나 아이가 가채점을 해보고 혼자 조용히 앉아서 울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남편과 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아이가 열심히 하면 당연히 좋은 결실이 오리라 확신하면서 버텼다. 한편으로는 내 아이의 한계가 이런 건가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더 기대지 말아야겠구나' 라며 체념까지 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나눌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답답한 마음을 어찌 못하고 남편과 커피를 한잔 했다. 카페에서 아이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기도 하고 차선책으로 무엇을 마련해볼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답답했던 감정도 평온해진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았다기보다는 그저 지금의 힘들고 괴로운 심정이 아무 일 아닌 듯 희석이 된다.


남편 그릇과 내 그릇에 서로 부어주고 담아내면서 기쁨과 슬픔이 희석되어 다른 농도의 감정으로 변한다. 그러니 또다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남편과 내가 남들보다 부부애가 좋은 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이이다. 얼굴 맞대고 뜨거운 감정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같이 있어도 할 말이 많지도 않고 조금은 심심한 사이다. 다만 같이 공통 고민이 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그 누구보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노력한다는 거다.


꼴 보기 싫어서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 적이 수도 없이 많다. 아마 그런 감정이 오래 계속된다면 나도 뭔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힘든 시간이 반복되지만 지속시간이 내가 견딜만했나 보다. 그러니 이렇게 함께 살고 있는 거겠지.


요즘은 뜨거운 남녀 간의 사랑이나 알콩달콩 부부애가 좋은 모습 등을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부럽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의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 속에서 살았다. 하나 이제는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감정처럼 느껴진다. 20년 이상 살아온 지금은 부부의 삶이란 어떤 것이다라는 확실한 선을 그을 수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모습은 한 때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처럼 여겨진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이 무덤덤한이야말로 인생이 아닌가?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으로 사는것! 그게 인생.
<내일이 와준다면 그건 축복이지!>  -이철수-


심심하고 재미없는 시간이 많고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환희는 느끼기 힘들다.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지만 그 안에서 존재의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로 힘들 때 상처 주지 않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 강하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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