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하루 시간을 바삐 보낸다. 감사하게도 남들보다 좀 건강해서 바삐 지내도 끄떡없다. 물론 40대 이후부터는 몸 변화를 급격히 느끼곤 한다. 예를 들면 하루에 2가지 이상 스케줄을 하면 집에 돌아와 털썩 누워버린다. 그렇게 30분은 누워 있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바삐 지내는 시간들은 별다를 건 없다. 주로 취미 활동이나 뭔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시간도 포함된다. 틈틈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런데 살림살이는 조금 소홀한 편이다. 청소는 찝찝하면 어쩌다 청소기를 돌린다. 손걸레질은 한 번도 해보질 않았다. 마대에 다이소에서 사 온 청소포나 물청소 티슈를 끼워서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게 다이다. 식사는 매끼 정성을 들여 만들지도 않는다. 가끔 밑반찬을 몽땅 만들어서 며칠을 먹는다. 정갈한 식탁을 차려내는 것도 자신 없다. 이런 나여서 뭉근하게 만들어내는 음식은 잘하지 못한다. 또한 준비가 오래 걸리는 반찬도 잘하질 않는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남들이 보면 대단할 것 없는 것이지만 이런 변화들이 내가 나이 먹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행동들이다. 우리나라 음식에 빠질 수 없는 대표 양념인 마늘이다. 마트에 가면 까놓은 마늘이 저렴하게 팔고 있다. 한쪽에 빨간 망에 들어간 통마늘을 보면 전혀 눈길이 가질 않았다.
저걸 언제 까서 먹고 있어? 깐 마늘이랑 안 깐 마늘이랑 뭐가 달라? 음식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거 아냐?
가끔 망에 들어있는 통마늘을 산 적이 있다. 그렇지만 몇 알 마늘을 까서 먹다가 나머지는 까놓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놔서 수분이 다 날아가서 빠짝 말라버린 마늘을 죄다 버린 적이 있다.
'내가 무슨 살림을 한다고 통마늘을 샀나 싶었다.'
그 뒤로 절대 통마늘을 사지 않았다. 한데 몇 해부터 통마늘을 가끔 사 먹는다. 거실에 큰 그릇을 두 개 놓고 질펀하게 앉아서 마늘을 몽땅 까놓는다. 일부는 다 빻아서 냉동해 놓고 몇 알은 냉장실에 잘 밀폐해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게 마트에서 미리 까놓은 마늘보다 통마늘을 까서 먹는 게 훨씬 신선하고 음식 맛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리 잡고 마늘을 한참을 까면 시간이 생각만큼 오래 걸리 질 않았다. 그전에는 이런 준비과정들이 시간이 아깝다고 여기기만 했다. 좋은 재료가 어때야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작년 추석에 선물로 받은 멸치가 한 박스 있다. 난 멸치는 국멸치 큰 것이나 볶음용 잔멸치만 주로 산다. 그런데 선물로 받은 멸치는 잔멸치과 국멸치의 중간 크기다. 바로 멸치 내장을 제거해서 먹어야 하는 것이다. 멸치 내장 빼는 작업이 왜 그리 하기 싫을까. 귀찮아서 까질 않고 견과류와 함께 멸치 볶음을 해보았다. 양념은 맛있게 배었지만 먹을 때마다 멸치 똥이 입안에 걸리는 느낌이 뭔가 찝찝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실에 스테인리스 그릇과 커다란 종이를 깔고 멸치를 깠다. 넷플렉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천천히 멸치 통을 제거했다. 드라만 한편 보는 동안 지퍼백 가득 담아 놓은 멸치를 모두 해결했다. 그리고 멸치 볶음을 다시 했다. 훨씬 깔끔한 맛과 비주얼이 탄생했다. 예전에 엄마도 이렇게 늘 만드셨는데 그 당시에는 수고로움을 전혀 알아차리질 못했다.
지난달에는 무김치를 담고 양념이 좀 남아있었다. 뭐 할까 하다가 갓김치에 도전했다. 처음 만들어보는 갓김치이다. 양념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갓을 한단만 사 왔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서 갓김치를 완성했다. 시간이 지나 발효가 진행되면서 점차 김치가 맛있어졌다. 여수에서 먹었던 돌산갓김치보다 내가 만든 갓김치가 훨씬 맛있었다. 남편과 사무실에서 집에서 싸온 두세 가지 김치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파김치, 갓김치, 동치미김치와 생선 한 마리를 탁자에 펼쳐 놓고 함께 식사를 했다. 가지런히 반찬통에 놓인 갓김치를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갓김치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를 못 했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갓김치는 쓴맛이 나기는 하는데 왜 지금은 갓김치가 맛있을까?”
“이제는 갓김치보다 우리 인생이 더 써서 그런가?”
“혹은 우리 인생처럼 쓴 갓김치를 먹으면서 위로받고 싶은 걸까?”
50대가 되어가면서 사람들의 삶과 생각, 취향 등이 변한다. 내게도 그런 변화들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거부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에게 다가오는 변화가 내적으로 외적으로 건강한 실체를 지니면 좋겠다. 또한 그런 변화를 통해 나와 내 가족 모두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