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박완서-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론과 실기 수업을 모두 마치고 자격시험까지 모두 끝냈다. 지금은 실습을 연이어하고 있다. 한 달 반 정도 기간 동안 이어지는 교육과 시험일정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시간을 어찌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실습만 남아있다. 당장 요양보호사 일을 하려는 목적은 없이 그저 남들이 하길래 따라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해본 거다.
실습기간은 10일간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르신들이 계속 집이나 요양시설에 가서 돌봐드리는 일을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쉽게 실습할 대상자나 시설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영상 시청으로 요양 실습을 대체한다. 영상 내용은 주로 노년의 삶에 대해 보여준다. 노년에 가장 두려운 병인 치매에 대해 다양한 영상을 접했다. 치매에 걸려서 내가 누구인지 내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기본적인 인간의 의식주에 해당하는 생활패턴을 정상적으로 이어나가기 힘들게 된다. 가족이 돌봐주거나 전문 요양시설에서 내 몸을 맡기며 살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과거로 돌아가 몸집만 커다란 아이로 변해버린 거다. 또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영상을 보게 되면 내 노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면 늙은 호박처럼 피부도 늘어지고 혈색은 누레진다. 어디 하나 이쁜 구석을 찾기 힘들다. 몸의 기능까지 점차 약해지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어떻게 늙어야 좋을 걸까? 혹은 노년에 뭘 하면서 지내지? 건강하게 나이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사람과 달리 늙은 호박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산모가 부기를 뻴때 호박즙은 주로 사용한다. 건강관리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건방지게 늙은 호박을 못생겼다고 탓하려면 인간은 나이 먹어서 호박만큼 쓸모 있어야 한다. 그럼 난 어떻게 살면 조금이라도 쓸모 있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며칠 전 TV에서 김형석 연세대 철학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김 교수님은 100세가 넘었는데 지금도 한창 활동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계신다. 교수님께서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게 대해서 말씀하셨다.
1. 독서하기
2. 취미 활동하기
3. 일하기
여러 가지 말씀하신 것 같은데 위에 3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60세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교수님은 95살이 넘어서야 늙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60세 이후는 한창 활동하는 나이인 것이다. 독서를 통해서 세상을 계속 배우고 다른 삶은 엿보아야 한다. 취미활동이나 일도 할 수 있는 한 계속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
치매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어르신들이 교류했던 기회가 박탈당하면서 병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고독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가. 가족과 왕래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서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찾아오는 게 전부인 노인분은 힘든 시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노년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아니 내 노년을 내 노후를 계획해본다.
공부는 쉬지 않고 하기
쓸모 있는 거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내 머리를 계속 가동하고 싶은 거다. 공부 수단은 독서가 대표적이다. 책 읽기는 가장 쉽고 편하게 세상을 알아갈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를 깨닫고 변화하길 바란다.
외국어 공부 계속 하기
영어공부는 계속하고 있다. 원서 읽기를 요즘 하는데 회화 공부도 시간을 할애해서 하려고 한다. 외국문화를 자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어를 정복해야 한다. 외국어를 습득함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은 훨씬 넓어질 거다.
몸과 머리를 움직여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지속하기
돈을 벌기 위한 일보다는 작은 돈을 받더라도 일을 시작할 거다. 월급의 크기로 만족을 찾기보다는 나 자신이 쓸모가 있는 곳을 찾는 거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다면 과감히 뛰어들어보자. 내가 가진 미천한 능력이 타인의 삶을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으면 기꺼이 내 시간과 육체의 수고로움을 투자하자. 단 내가 헌신한 상황에서 타인과 내가 함께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내 마음이 공허하면 금방 지칠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는 내가 50살이 되면 뭔가 이루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거라 상상했다. 그보다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있다. 남들이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 즉 이미 뭔가를 새롭게 꿈을 꾸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생각의 틀 안에 갇혀있지 말자. 오늘도 내일도 모두 감사한 시간이고 하루인 거다. 쉼과 애씀이 공존하는 하루하루를 가꿔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