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1년은 계단 10개를 한꺼번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
"스타트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마다 스타트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없을 수도 있고, 감당 가능한 수준일 수도 있고, 조금 많을 수도 있고,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혹여 내 Specialty을 찾지 못하고 Generalist가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이 스타트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입사 첫날 스타트업에서 사용하는 툴을 익혔고, 그리고 그다음 날은 진지하게 "그래서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하지?" 고민하곤 했다. 이러한 '물음표'가 많았던 이유는 당시 나의 '직무/포지션'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대표님이 이것저것 다 해보는 3개월이 될 것이라고 하셨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이론과 실무를 각각 50%씩 경험했다. 여기서 '실무'는 교사로서의 소양을 기르며 수업 시연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가르치는 법은 배웠지만 마케팅이나 재무회계처럼 바로 회사에서 투입되어 할 수 있는 것을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취업 준비를 했을 때 조금 더 취업에 쓸모 있는 학과를 공부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아쉬움도 들었었다. 진지하게 '복수전공'을 다시 선택할까 고민도 했다.
스타트업에서 퇴사하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는 "이 스타트업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하고 있었다고?"라고 스스로에게 'pat on the back' 하곤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나의 숨겨진 재능들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면서 직무 4-5개를 동시에 다 경험하고, 나에게 맞는 직무를 찾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경영, 디자인, 재무회계 등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이 적은 편이지만 맨땅에 헤딩하듯이 "스타트업"에서 스스로 다 배워가고 익혀가고, 결국 인수인계 가이드 50장 이상을 만들고 퇴사한 스타트업에서의 초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기에 대학교 전공은 때로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이직을 하면서, 뼈아픈 실패를 겪으면서 나와의 'fit'이 맞는 직무를 찾아간다면, 분기 단위로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회초년생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알 수 있게 된다.
a. 어떤 직무가 나와 맞지 않은지 알게 된다.
b. 어떤 직무가 나의 성격/성향과 부합하는지 알게 된다.
c.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과 무슨 일하고 싶은지 그릴 수 있게 된다.
이 글에서는 먼저 '왜 여기서 일하기로 했는가', 그리고 내가 경험한 4개의 직무 중 첫 번째인 "People" 업무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People (HRM) 영역에서 채용, 인사 관리 및 정부지원사업을 맡았다. 그중 '채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축하드려요! 함께 일하는 것이 참 기대가 됩니다."
2020년 겨울, 면접을 보고 며칠 후 대표님께서 직접 전화로 합격 소식을 전해주셨다.
몇 주간 면접에서 계속 탈락했었는데 최종 합격을 했다고 하니 너무 기뻤었다.
"감사합니다! 네, 바로 다음 주에 입사하겠습니다!"
내가 입사했던 날 다른 팀원 3명이 같이 입사했었다. 그리고 내가 퇴사할 때쯤에는 입사 동기는 이미 모두 떠난 상태였다. 퇴사할 때쯤 내가 "대표님이 절 뽑아주셔서 감사했죠"라고 말했는데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우리의 '뽑기'가 대박이 난 거죠. 회사가 작고 아직 복지도 엄청 갖춰진 것이 별로 없었는데 회사 비전 하나 보고 들어온 사람들, 회사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보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당시 이 회사는 15명 규모의 작지만 강한 Early Stage(초기 투자 단계) 스타트업이었다. Seed 투자를 받고, 정부사업이 선정된 후 시리즈 A 준비를 하는 중에 내가 입사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입사했을 시점에는 스타트업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투자 단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지 못했다. 회사 매출이 아직 0원이어서 투자를 열심히 받고자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훗날 재무를 담당하고 투심 과정을 보면서 스타트업은 1년, 2년 생존하기 위해 투자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 첫 매출은 6개월 후에 생겼다. 그 전에는 베타 버전으로 서비스를 운영하였기에 가끔 유저들 중에서도 "Thank you so much! Um, but how do you make money?"라고 걱정하며 물어보는 유저도 있었다.
매출도 없고, 아직 시드 투자 단계이고. 그렇지만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어서 유저는 많다는 점. 기술력이 우수하여 정주사업에 선정된다는 점. 그리고 그 외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봤지만 당시 회사 노션 페이지나 링크드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But, why...?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로 선택한다면 아직 표면 위에 보이는 것이 많지 않은데도 빙산의 일각만 보고 회사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합류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마치 작은 돌을 가지고 이 속에 '다이아몬드가 있을까?'하고 의문을 품으면서도 일단 그 돌을 계속 문질러보고 깎아보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성공', '엑시트'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로는 조만간 가라앉을 것 같은 종이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이 회사를 선택했었나? 고민해보니 당시에는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교육을 전공했으니 에듀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는 것은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회사 비전이 좋았었다. '비전을 이루어 가는데 내가 동참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회사가 추구하는 것만 보고 입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하루 중 최소 8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커리어의 모든 단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 회사 어때요...?
내가 이 회사의 People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나의 첫 개인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 오고 싶게 만들기"였다.
각 팀장님들이 직접 채용을 담당하다가 내가 채용을 전담하고, 채용 공고를 올리고 채널들을 운영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포지션은 많이 열려있지만 지원자들이 별로 없었다. "좋은 지원자를 찾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지원자를 모집하는 것"부터 어려운 것이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다. 첫 주에는 채용 공고의 문구를 다시 쓰고, 조금 더 틀을 갖추어 써보기도 하고, 새로운 채용 플랫폼을 찾아보기도 했다. 사람인/잡코리아/로켓 펀치/링크드인. 이렇게 4개로는 부족해서 원티드/슈퍼루키를 추가했다. 개발자의 경우 직접 쏘싱도 많이 하고, 제안도 보내보기도 했다. 제안을 보내면 수락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제안을 수락하면 티타임 자리로 초대해서 회사의 '매력 어필 시간'을 갖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쏘싱 해서 면접에 응해도 최종 합격하는 경우는 없었다. 결국 다른 회사의 오퍼를 받아서,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기에, 회사 재무상태가 안정적이기에. 당장 시리즈 A가 코앞이라고 말해도 아직 확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좋은 지원자가 와도 놓치게 될 것 같았다.
Problem Analysis | 원인 분석
1) 왜 우리 회사는 지원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2) 우리 회사를 더 알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Tracking | 추적
1) 월별 채용 리포트 작성
2) 월별/분기별 채용 계획 수립
Solution | 해결 방안
1) 회사 브랜딩
2) 더 나은 복지 (시리즈 A 투자 이후)
해결책은 찾았지만 매출 0원이 스타트업에서 '채용'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채용을 위한 예산이 없다. 무료 채용 플랫폼만 이용하다가 링크드인을 가끔 사용하면 매일 얼마나 많은 돈이 나가는지. 링크드인에 투입되는 예산 대비 채용되는 인원을 봤을 때는 그래도 타당했으니 링크드인을 쓰긴 했다. 따라서, 회사 브랜딩과 복지 정책은 꿈만 꿀 수 있었다.
돈을 쓸 수 없다면 직접 손으로 만들고 발로 뛰어야 했다. 일단 노션 페이지를 열심히 꾸며보았다. 그렇지만 노션에는 한계가 있었다. '홈페이지'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물면 노션 페이지 웹사이트 링크도 너무 길었다. 그리고 가끔 외국인도 채용해야 하는데 노션 페이지에서 "채용 정보"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문"이었다.
한 면접에서 외국인 지원자는 우리의 노션 페이지의 내용을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영문으로 출력해서 가져온 분도 있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 말은 거창하지만 일단 글로벌이 되려면? 회사에 대한 정보가 영어로도 있어야 했다. 그리고 회사 홈페이지가 하나 제대로 있으면 조금 더 '갖춰진 회사'처럼 보이지 않을까? 회사를 외국인들에게도 알리려면 영문 기사도 있어야겠는데?
그렇게 1-2명의 팀원들과 함께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Execution : 회사 브랜딩
*수행한 것을 나열하기보다는 핵심적인 것 4개를 적어보았다. Result의 경우 실행 후 3개월 이내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결과들이다.
1) 웹사이트를 만들고, 국/영문으로 제공한다.
* Method: WIX로 사이트를 제작했고, 직원 1-2명과 함께 국/영문으로 사이트 구축
(팀원 사진 / 팀 전체 프로필 / 근무 사진 / 회사 연혁 등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 Result: 사이트 제작 후 디자인도 거쳤고, 추후 국내/해외 사업 확장에도 유익하게 쓰였다 (추후 다른 글에서 다룰 것)
2) 링크드인은 회사용 SNS이기 때문에 회사 소식을 주기적으로 올린다
* Method: Canva로 포스터 제작. 보도된 뉴스가 있으면 간단 소개와 함께 링크 넣어 게시물 업로드
* Result: 국내/해외에서 팔로워가 늘었다
3) 언론 보도를 위해 기사를 내보낸다.
* Method: 기사 초안 작성 및 언론사 10+ 이상 컨택
* Result: 투자 유치 소식, 수상 소식 등 기사를 게시하면서 회사에 대한 신뢰도 높일 수 있었다.
4) 간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지원 절차를 간소화하고, 채용 관리에 소요되는 시간적 비용을 줄인다
* Method: 이메일 지원 -> 채용 Solution 도입
* Result: 그리팅 도입 후 지원자 확연히 증가 및 채용 업무 간소화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는지 케이스 스터디를 정말 많이 했다. 우리 회사보다 조금 더 큰 회사라고 하면 바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기에, 투자 단계 불문하고 정말 많은 국내외 스타트업과 IT기업의 사례들을 찾아보고, 참고하고, 재구성해보았다.
그리고 우리 회사만의 색깔을 더해보았다.
스타트업 채용 담당자이신가요?
채용과 회사 브랜딩의 경우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나 채용 브랜딩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회사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작은 스타트업의 채용 담당자는 기존의 것을 조금 더 다듬고, 조금 더 좋아 보이게 만드는 것이고, 조금 더 여력이 된다면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지원자에게 '일해보고 싶은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1차 면접에 면접관으로 들어가면 제가 항상 물어보는 질문 2가지가 있습니다.
1) 스타트업인 우리 회사에 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2)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3가지는 무엇인가요?
이 회사에 면접을 보기로 오기까지, 그 발걸음을 옮기기 전까지 회사에 대해 어느 정도 리서치를 한 사람이라면 회사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기억에 남은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이트에서 팀 단체 사진을 봤는데 엄청 가까워 보였고 다들 웃고 있었어요. 그래서 와보고 싶네요."
회사의 규모가 크거나 복지가 잘 되어 있지 못한 상태여서 '어떻게 인재를 채용하지...' 고민을 하고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회사의 업적이나 프로덕트뿐만 아니라 채용 담당자와 회사 홈페이지도 충분히 지원자에게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사진을 보고, 이 팀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느낄 수도 있고, 채용 담당자와 주고받는 이메일을 통해서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될 수도 있죠. 홈페이지의 문구, 예를 들면 회사의 '비전'에 대한 문구 하나가 지원자에게 울림을 줄 수도 있어요.
채용 담당자는 회사의 얼굴이고, 회사 사이트는 지원자가 가장 먼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마주하는 문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채용 담당자들은 지원자들로 하여금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네요.
내가 스타트업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지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회사 브랜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