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플로리스트 이야기

프롤로그

by 민예령


일단..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왜+어쩌다+어떻게 플로리스트를 하고 있고 하게 되었는지 있었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합니다.


올 초에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할 때 interior designer 란 키워드로 craiglist 를 검색하고 있던 중에..

하도 잡마켓이 협소한데다 포지션이 난 인테리어 회사가 너무 없어서

interior 를 뺀 designer 만 넣었을 때 우연히 "Seeking for floral designer" 란 게시물을 봤습니다.


문득 꽃일이 하고 싶었어요. 늘 하고 싶었던 거고, 늘 배우고 싶었던 것, 그리고 늘 가까이에 두고 싶었던- 꽃.


어차피 인테리어 디자인 커리어가 뜬 상태였었고, (2012년 12월에 퇴사 한 후로 1년 대학원, 그리고 1년 백조 (물론 4개월간 잠깐 밴쿠버 한국 회사에서 일하긴 했었지만.) 회사에 앉아 골치 아픈 설계를 하고 싶었던 상황도 아니었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한 번, 누군가에 의해, 인테리어란 직업을 영영 놓아야 했던 상황에 있었어서 이제는 미련도 욕심도 한 번 내려놓았던 상황이었어서 이래되도 저래되도 일단은 상관 없다... 뭐 이런 생각이;;


하지만 그저 저는 화초를 키우고, 꽃 이름을 많이 알고, 꽃을 사 본 경험이 많고, 꽃 그림을 그린다는 정도였지,

('꽃을 좀 배우고 싶다.' 그리고 '마흔살에는 플로리스트 자격증도 따야지' 이런 생각은 물론 계속 있었습니다.)

꽃은 배운적도 없고, 경력도 전무했죠. 그러니 저런 곳에 지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기발한(?) 아이디어가 들었습니다. 2008~2010 년까지 자주 가서 안면(?)이 있던 한국 꽃집 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Choice Flowers ㅋㅋ) 혹시 핼퍼가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그렇지 않다고...발렌타인데이나 이럴 때 자기 도와주는 건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언제 한 번 놀라오라고 했죠. 알겠다고- 언제 한 번 들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미련이 남았는지 (한국 사람들은 경험이 없어도 많이들 뽑으니까, 그리고 밴쿠버에는 (광영밴쿠버) 한국인이 운영하는 꽃집이 약 다섯개쯤 - 더 많을 수도 있음- 있습니다. ) 문득 밴쿠버 교민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꽃집에서 일할 사람 구합니다" 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전화했고, 면접을 봤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첫날 일을 가서.. 하루 종일 꽃과, 풀과, 물을 만지는데 하루 일하고 집에 왔는데

지난 5년간 내가 받았던, 그리고 그 보다 더했던 지난 한 달 받았던, "삶" 혹은 "생애" 에 대한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리고 아픔이 완전히 힐링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기분이긴 하지만요 ^^;; 어떻게 삶의 아픔이 그 하루로 다 풀릴 수 있을까요...)


꽃은- 역시 행복하구나, 잎과 줄기들 뿐이지만 식물들은- 역시 건강에 좋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많이 배웠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꽃집에 비해서는 약하다 해도, 그래도 어쨌든 메이져급 호텔들과 연계 꽃집이라 호텔 컨시어지 데스크며, 레스토랑이며, 에레인지가 매달 나가는 집이었고, 특히나 FTD 플라워샵이었었기 때문입니다. 플로랄폼이니, 워터픽이니, 등등 모든 기본 개념들을 여기서 배웠고, 기본적인 꽃 관리 방법들이나 플로랄 어렌이지먼트의 기본을 배웠죠.


그렇게.. 원래 인테리어 회사를 찾고 있었다는 것도 망각한체 심지어 '계속 이쪽일을 할까' 라는 생각도 하면서

잠시 행복하게 얼마를 보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 인테리어 회사를 알아 보고, 동시에 (이 한국 꽃집이 파트타임이었기 때문에) 다른 꽃집도 알아봤습니다. 인테리어 회사가 되면 이 꽃집을 그만 두고 그걸 풀타임으로 일하고, 다른 꽃집이 되면, 양쪽을 파트타임으로 다녀야지. 그런 계산이었어요.


꽃집이 먼저 됐습니다. 밴쿠버에서 가장 유명한 꽃집 중 하나.. 아니, 실력이나 레퓨테이션, 그리고 어워드 받은 것들을 종합한다면 밴쿠버 탑인 플라워샵입니다. 절대 나같은 애가 들어갈 수 없는 꽃집인데...ㅠ 심지어 나 일 시작하고도 계속 아름답고 어린애들이 면접 보겠다며 꽃집을 꾸준히, 늘, 레쥬메 들고 방문하는 그런 꽃집이예요.


그리고 나서 일 주일 후에 인테리어 회사에 채용이 됐고, 그렇게 저는 처음 일을 시작했던 그 한국 꽃집을 자연스레 그만두고, 지금은 월-금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고, 토요일에는 꽃집에 나가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이거보다 꽃집에 훨씬 더 많이 나감 ㅡㅡ;) 그리고.. 어느새, 웨딩과 이벤트 컨설테이션도 맡아 하고 있고.. 인보이싱도 하고 있으며.. 시니어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주는 것을 그대로 수십개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직접 센터피스를 디자인하고 있고.. 퓨마커 따위는 눈감고도(응?) 수십 수백개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며.. 갈랜드니 브라이덜 파티니.. 만들고 있는 너무나도 운이 좋은... 7개월차 플로리스트가 되어 있습니다.



제 작업 공간이예요.. 이쁘죠..? ^^;;


*이 글은 몇개월 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놨었던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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