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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걷는여자 Jan 26. 2021

나는 왜 나를 아프게 했나?

필로 이경희 지음, <자기미움>

‘분을 이기지 못해 따귀를 올려붙이는 사내, 그리고 코피를 씻는 여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는 나에게 각인된 가장 본원적이고 밑바닥에 자리하는 상흔이다. 코피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나는 붉은색에 묘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다.
상흔에 덧입혀지던 상처는 존재자체에 치명적인 일부가 되어, 오랫동안 스스로를 결함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겉보기에는 별다른 어긋남 없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생활을 꾸려나가면서도 말이다.


나는 왜 나 스스로를 ‘괜찮다’고 여기지 못했는가? 나는 왜 나를 미워했나?


불쑥 찾아드는 우울감은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고장 난 마음의 지붕을 수리하지 않고 우울감이 장마처럼 내릴 때면 어쩔 수 없다고 방치한 대가를 의식하게 된 것은 결혼 이후였다. 곰팡내를 풍기며 허물어져가는 존재는 곁의 사람을 제대로 품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아이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우선이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심리학의 영역까지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공부를 할수록 알게 된 사실은 그동안 스스로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 끄트머리에서 만난 책이 『자기미움』이다. 이 책은 누구나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겪는 ‘자기 미움’이라는 심리의 정체와 본질을 파헤친다. 나아가 자기미움이 어떻게 타인혐오로 뒤틀리는 지를 통찰한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자기 미움의 본래 심리는 ‘자기사랑’과 ‘자기우월’이라는 것이다.···사람은 누구나 존재의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 또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기준이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자, 이때 비교의 원천이 되는 기준과 수준은 누구의 모습인가? 이 또한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이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아주 교묘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한다. 열등하고 못난 자기를 진짜(?) 자기와 분리시키고, 이제 우월한 자기가 되어 못난 자기를 대상화 하고 멸시하는 것이다. 이로써 아주 이상한 자기 구원이 이루어진다.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자기가 구원받는 것이다.”(p.24-25)


자기 미움의 기제에는 이 밖에

외부의 비난과 판단이 내면의 목소리가 된 내사,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자책감과 죄책감,

‘부정적 나’에 대한 의존,

타인의 비난을 자학으로 방어하려는 심리,

현실정당화라는 심리적 마취제 등이 있다.


‘생각에 대한 생각’인 메타 사유적 방법론은 자기미움을 일으키는 여러 구조와 프로세스를 알게 해줌과 동시에 그 생각을 품고 넘어서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자기미움의 감옥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던 ‘자기 분리’와 ‘자기 대상화’ 그리고 ‘자기 미움’의 모든 과정을 선명하게 알아차리고 ‘자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가 된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면 관성에 젖어드려 할 때마다 알아차림 연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체성, 그것은 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느낌’이다. 어떤 느낌을 말하는가? 자신에 대해 저절로 가지게 되는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느낌, 당당한 느낌, 떳떳한 느낌’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의 당당하고 떳떳함! 심지어 당당하고 떳떳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정체성의 일부는 그가 가진 내용으로 채워지거나 표현될 수도 있지만, 본질은 이러한 ‘느낌, 실감’이다.”(p.112)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은 존재’라는 실감이 나에겐 부재했다. 뭘 잘했을 때만, 뭘 성취 했을 때만 ‘나는 괜찮은 존재’라고 잠깐 여기다가 그게 사라지면 불안감이 엄습해오곤 했다.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조건적 자존감’과 이것을 학습시키고 주입하고 유발하는 모든 요소야말로 인류 최대의 적이다. 그리고 조건과 상관없이 가지는 당당한 자존감이야말로 누구나 찾아야 할 건강한 ‘자기정체성’이다. 새롭게 만드는 무엇이 아니라 항상 그러한 본래의 것.”(p.113)


나는 왜 나를 아프게 했나?나쁜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상황과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나쁜 자기’라고 인식하게 되는 ‘수치정체감(shame identity)’을 형성하게 된다. 가정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 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나쁜 자기’를 수치스러워하고 때론 몰아세우며 미워했던 것이다. 그런 ‘자기미움’조차도 왜곡된 방식의 자기사랑이며, 왜곡의 심층엔 ‘생각과 자기 자신의 동일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희망적이었다. 왜곡을 멈추면 되는 것이니까.


조건부가 아닌 든든한 자존감과 관련하여 자가 인지치료서인 『필링 굿』(데이비드 번스, 2011) 또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자존감을 만들어 내거나 얻겠다며 굳이 그럴 법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비난하고 선동하는 내면의 목소리의 스위치를 끄는 것뿐이다.”


내가 생각의 주인이 되어 왜곡된 생각의 스위치를 끄려면 ‘생각이 곧 나’라는 전제를 파기해야 한다. 나는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생각이 나는 아니다. 생각의 늪에 함몰되려 할 땐 한 발짝 물러나, 그것의 정체가 고정되고 불변하는 객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그 생각이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각은 자기미움이라는 감옥의 문을 여는 내적인 동력이 되었다.


마치 먹구름만이 하늘의 전부라고 여기며 절망하다가, 구름(생각)은 여러 형태로 하늘(존재)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먹구름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스스로를 비하하던 마음도, 먹구름을 허용하지 못하던 분별심도, 한없이 깊고 넓은 하늘 안에서는 더 이상 질곡이 되지 못했다.


‘항상 그러한 본래의 것’, 존재는 생각과 이름이라는 협소한 틀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더 이상 외부환경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던 수동적인 어린아이가 아니라 능동적 반응을 ‘선택’ 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것, 내 마음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는 것의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처보다 더 커진 스스로와 조우할 수 있었다.


분노가 타인을 향한 공격이라면 우울감은 내면을 향한 공격이다. 『자기미움』은 ‘나도 나에게는 공평하게 잘 대해줘야 할 타인’이라는 걸 잊은 채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인문매거진 <바닥>_필명 김모월, 2020여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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