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2단의 도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도록

by Julius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자리,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잘할 수는 없다.

집의 안팎을 살피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정리하며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 집안 가장 작은 물건까지도 주부의 안목과 실력 여하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며 집안일을 계속하다 보니 집안일 마스터인 어머니가 그리워질 때도 많다. 훌륭한 주부 9단을 꿈꾸지만 현실은 앞가림만 간신히 할 수 있는 정도.


조금 더 능숙한 주부가 되기 위해 종종 집안일의 날을 보내기도 한다. 사실 한동안 청소를 못해서 날을 잡고 이런저런 일들을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일의 효율을 올려주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튼다. 앞치마도 잊지 않고 해 준다. 쌓인 빨래를 넣고 청소기를 열심히 돌린다. 생각보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많았다. 집안일은 잘해도 티가 잘 안 나지만 못하면 금방 티가 나는 법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높은 곳의 먼지를 열심히 닦다 보면 어느새 걸레는 제 색을 잃어버리고 만다.


떨어진 식재료들도 보충해줘야 한다. 특히 파가 다 떨어져 버렸다. 훌륭한 주부라면 자고로 손질되지 않은 대파를 사야 하는 법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파 한 단과 부족한 소스 따위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대파의 흙을 씻고 뿌리를 잘라낸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뿌리를 칫솔로 빡빡 씻어 말려두고 대파를 송송 썬다. 요리 실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손질만 한 세월이다. 썰어둔 대파 절반을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얼리고 나머지는 따로 담아둔다. 차곡차곡 정리된 통을 보니 괜히 뿌듯해진다. 이 정도 일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아직 노련한 주부가 되기는 멀었다.


화장실과 싱크대 청소도 일이다. 락스를 뿌려두고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싱크대와 인덕션 주변을 닦는다. 인덕션 주변 기름때가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었다. 게으름의 대가, 번뇌를 비우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문질렀다. 화장실도 구석의 물때들을 천천히 지워간다. 본가를 나오기 전에는 화장실이 이렇게 금방 더러워지는지 몰랐다. 화장실 청소할 때가 되어서야 부모님의 노고를 느끼다니, 아무튼 이런 잡생각이 길어질 때 즈음 청소가 마무리됐다.


보이지 않아 과소평가된 주부의 뒷모습, 하루를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오래도록 훈련하고 반복해야 비로소 능숙한 요령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잘 봐줘야 주부 2단인 나에게는 갈 길이 멀다.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니니, 오늘도 집안일을 꼬박꼬박 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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