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결점이나 오류도 없어야 하는 가혹한 결벽이니까요.
흔히 완벽을 꿈꾸지만, 역설적이게도 완벽을 추구할수록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립니다. 아주 작은 흠집 하나에도 ‘완전한 나’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남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훼손된 자존감뿐입니다.
완전한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잠시 그 정점에 머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긍정과 성공만을 담아내려는 이 결벽증적인 태도는, 오히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완전하지 못한 시간의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게 만드는 잔인한 재료가 됩니다.
내면의 소음들이 완전하지 못한 나를 비난하는 시간으로 가득 찬다면, 언제 잘못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완벽이라는 감옥은, 내 치열한 방황을 성장이 아닌 실패라고 믿게 만듭니다. 내 흉터를 빛나는 훈장이 아니라 숨겨야 할 치부라고 자꾸 속삭여요. 그 거짓말에 속아, 정작 사랑받아야 할 가장 아픈 나를 스스로 비난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깨진 인생을 실패작으로 보는 것이 정말 맞을까요? 내 자신을 망가진 인생이 아닌 다시 빚어질 작품으로 대한다면 시선은 달라집니다. 부서졌다는 그 착각이 틀렸음을, 깨진 틈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문양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예술. 킨츠기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킨츠기’는 수리예술입니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깨진 자리를 금으로 이어 붙여 도자기의 상처와 결함을 오히려 강조하는 기법이죠. 상처 입은 과거와 깨진 현재를 하나로 이어 받아들이는 수용, 내 균열을 숨기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는 킨츠기는 우리에게 ‘온전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온전함은 완전함과 다릅니다. 완전함은 조금만 흠집이 나도 그 가치를 상실하지만, 온전함은 그 흠집조차 나의 일부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족함인 줄 알았던 것들이 실은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만든 핵심 조각이었다는 깨달음이에요.
결점을 감추기 위해 나를 억누르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금빛 균열들로 이뤄진 나라는 작품으로 온전해지고 싶어요. 내 삶의 흔적들은 누구와도 같지 않고, 결코 반복되지 않으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나를 나답게 만든 것은 수많은 정답이 아니라, 내가 통과해온 수많은 틀림과 서툼 덕분입니다.
완벽한 사람을 우러러볼 수는 있지만, 정작 마음을 기대고 사랑하게 되는 건 그 안의 여린 틈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연결되는 지점은 강함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고치려 들지 않고 그대로 껴안는 다정한 사이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저는 결핍을 제거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거에 초점을 두면, 늘 그런 내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감시하고 억눌러야하는 데 모든 기운을 쏟아야 하니깐요.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나면, 정말 내가 살고 싶었던 일상을 살아낼 힘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없으니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버리고, 밖에서는 온화한 배려로 살던 사람이 집에 돌아오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게 됩니다.
그건 내 마음이 하루 종일 ‘완전함’이라는 가면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 결국 지쳐버렸다는 비명일 것입니다. 나를 소외시키며 지켜온 완벽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 그만 버티고 싶다는 신호가 올라왔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온전함으로 나아가길 갈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완전하지 못한 나를 비난하고 고치려 드는 내면의 소음을 주의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 아낀 에너지로 나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온전함은 자기 자신과 싸우지 않아요.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의 장애물들과 싸우려고 하죠. 숱한 흔적을 나로 온전히 받아들였던 시인 류시화는 <나의 전기 작가에게>서 당부합니다.
실수 많은 세월이 아니라
선택의 세월이었다고
발 헛디뎌 자주 넘어진 게 아니라
나만의 춤을 춘 것이었다고 써 주기를
우리의 서툴렀던 모습과 방황하던 시간들을 삶의 기록에서 생략하고 싶지 않습니다. 상처 입고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걸어갔던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 작품이니까요.
인간이 완벽을 꿈꾸는 것은 본능일지 모르나, 완벽에만 갇혀 있는 것은 생동감을 잃는 일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흔들리고 아파하며 자신만의 곡선을 만들어가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 완벽하지 않음을 기꺼이 껴안은 인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균열을 금빛으로 채워갑니다. 깨진 틈이 있어야 비로소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올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흔적들이 내 삶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나로서 온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