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질 용기보다 약해질 결심이 더 필요하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느라 지쳐버린 당신을 위한 관계의 역설

by 율리

약해질 때 비로소 연결됩니다.


빈틈을 가리려고 애쓰며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할 때, 오히려 나다움에서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해요. 가짜 ‘나’를 유지하느라 점차 지쳐가면서도 진짜 ‘나’를 알면 실망할까봐 더욱 그 가짜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다 지쳐 관계를 놔버리고 싶은 피로감에 점점 감당하기 버거워질 때, 그 피로는 하나의 신호가 되어줬어요. 나다워야 내가 살 것이라고. 이제는 진짜 나를 사랑할 기회를 상대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말이죠.


마음의 미세한 균열과 슬픔의 무늬를 가장 정직한 언어로 기록하는 시인 김소연은 슬픔으로 가득한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서 「사랑과 희망의 거리」라는 시를 통해 우리의 이런 뒷모습을 들려줍니다.


우리는
서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나는 얼굴을 바꾼다 너무 많은 얼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가면이 열리는 나무였다면
가지 끝이 축 처졌을 것이다
아니, 부러졌을 것이다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워 엉뚱하고 솔직한 나를 숨기고, 수많은 가면으로 저 스스로를 방어해 온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 가면들은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실은 내가 맺은 열매들이에요. 그래서 다행입니다. 내가 맺은 것이니 내가 거두어갈 수도 있고, 오직 나만이 그럴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내 진짜 모습을 숨기려 했던 마음 때문에, 상대는 정작 나의 본모습을 사랑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가장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힘들고 지칠 때 드러나는 연약한 모습 또한 분명한 나인데 말이죠. 그 연약함까지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의 사이에는 더 깊은 유대의 문이 열립니다. 이 깊은 연결은 결국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취약함’에서 피어나죠.


오랜 시간 수치심과 취약함의 상관관계를 탐구해 온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결함이라고 믿으며 감추려 했던 그 연약함 속에 사실은 삶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숨겨져 있다고 역설합니다.


취약함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가장 정확한 용기의 척도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은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무릅쓸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주저합니다. 내 본모습을 알면 멀어질까 봐 나를 꾹꾹 눌러 담으며 스스로 압력을 가하고 있어요. 하지만 한계 없이 눌러 담을 수 있는 마음은 없습니다. 비워내지 못한 압력은 결국 언젠가 터져 나오고야 말테니까요.


터져 나와 무너지기 전에 스스로 압력을 빼줄 수 있다면 나는 살게 됩니다. ‘나다움’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믿을 수 있을 때, 그때야 비로소 힘주어 지키던 가짜를 무너뜨리고 진짜 나를 수용할 수 있어요. 관계를 억지로 잡으려 할수록 나다움은 사라지기 쉽지만, 오히려 관계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어줄 때 그 관계는, 숨을 쉬고 깊어집니다. 잡으려던 것을 놓아야 비로소 깊어지는 관계의 역설이죠.


이러한 관계의 역설을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비추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통찰했습니다.


사랑이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하고, 경계를 짓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상대의 가장 취약한 자리를 있는 그대로 지켜줄 때, 관계는 비로소 단단한 뿌리를 내린다.

서로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나의 안전한 벽을 허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가 나의 가장 연약하고 내밀한 곳에 안전하게 발을 들이도록 허락하는 일입니다.


연약한 내 모습도 사랑하고 싶고, 어떤 모습의 나로서도 사랑을 하고 싶어요. 진짜 나를 보여주고 더 깊게 연결되고 싶습니다.


약해질 용기는 결국 무너지지 않으려 버티는 힘보다 훨씬 강하며, 그 연약한 틈을 통해 서로의 진심은 숨을 쉽니다. 그 틈이 모여 우리는 ‘온전한 서로’라는 가장 안온한 쉼터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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