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들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이게 되죠.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나의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혹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질까 봐 두려워질 때, 가장 먼저 내 목소리를 내려놓습니다. 나를 잃어가는 대가로 관계의 평온을 얻으려 했습니다.
실망에 대한 두려움은 관계를 오히려 의존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내 가치가 달려있게 되니깐요. 내 가치는 오롯이 나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믿기 어려워 상대의 반응으로 나의 가치를 가늠하게 되나 봅니다.
타인의 반응에 내 가치를 맡기지 말라고 조언했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실망에 대한 두려움에 갇힌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이렇게 일깨워줍니다.
인정받기를 바란 나머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게 되지. 즉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거라네. 기억하게. 자네가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타인 역시 '자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세.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 돼. 그것이 당연하지.
상대의 반응은 날씨처럼 수시로 변하기 마련인데, 그 변화에 내 가치를 맡겨둔다면 결국 나는 갈 곳을 잃고 표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역설적이게도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수용할 때, 관계의 진짜 평화가 찾아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내 생각과 말, 그리고 행위가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타인의 반응에 매이지 않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심으로 건네고 싶은 말과 행동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타인의 기대를 저버릴 위험을 감수할 때야말로, 나의 진짜를 줄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의외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의 약점이나 부족함, 반복되는 아픈 행동들을 고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죠.
그의 서툰 반응이 사실은 그가 가진 아픔이 드러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판단하는 대신 도와주고 싶어집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는 노력은, 역으로 나 또한 있는 그대로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판단'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내 인생은 다시 부자유해집니다.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만큼, 상대방도 나를 그토록 엄격하게 바라볼 것이라 믿게 되기 때문이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투사된 시선 속에 갇혀 자기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만 같습니다.
실망은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도록 돕는 이정표입니다.
내 초점이 ‘상대의 만족’에서 ‘나의 진실’로 옮겨왔다는 증거니까요.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삶은 내 의지가 아니라 그의 기대를 따르는 삶일 뿐입니다. 관계가 소중하고 의미 있을수록 실망은 오히려 필요한 과정이에요.
실망은 내가 진실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기대하지 않는 것에 실망할 리 없고, 관심 없는 것에 마음을 다칠 리 없습니다.
실망이 일어나는 자리는 사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에요. 내 안의 진실을 발견하고, 실망을 통해 영혼의 무늬를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한결 더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존재의 진실과 내면의 용기를 써 내려간 캐나다의 작가이자 영적 교사인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는 그의 시 「초대」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사랑하고 견디며 살아내는가를 묻는 그의 진실한 질문에, 이제는 나의 삶으로 답하고 싶어집니다.
당신이 다른 사랑들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진실할 수 있는가
배신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견디더라도
자신의 영혼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