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 온 몸으로 건네는 사랑

다정함의 본질은 조언이 아니라 '말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

by 율리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건 온몸으로 건네는 다정함이었다

누군가와 한참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꽉 찬 게 아니라 오히려 텅 빈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나요? 내 말은 넘쳤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은 닿지 않았을 때 대화는 허기가 집니다. 진짜 다정함은 유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내 말의 자리를 기꺼이 비워주는 '침묵의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다정함은 말이 나오기 전에 한 호흡을 고를 줄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보면 서로 말하고 싶어지기 마련이죠. 수많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아봐주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런 순간을 우리는 늘 마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날 알아달라는 말이 넘칠수록, 역설적으로 상대가 서 있을 자리는 좁아집니다. 그렇게 듣는 귀를 잃어버려가게 되죠. 듣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존재는 옅어지고 말아버려요.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멈출 줄 아는 것, 저는 그것이 다정함의 시작이라 믿습니다. 사실 그를 아끼기 때문에 자꾸만 조언을 덧붙이고 싶어 하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내 마음의 온도가 높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진정한 다정함은 내 말의 자리를 너에게 내어주는 일입니다.


널 위해 하고 싶은 말보다, 네가 뱉어내고 싶은 말을 위해 빈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죠. 함께 있는 시간을 내 목소리가 아닌 너의 숨소리로 채워나갈 때, 그는 비로소 오롯이 ‘그’다워질 수 있는 숨통을 틔우게 됩니다. 타인이 내 앞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그것이 다정함의 본질입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것과 너무나 비슷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둘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상담학자 '데이비드 오스버그'의 이 문장은 듣는 행위가 사랑의 가장 고귀한 형태임을 단번에 일러줍니다. 다정함은 결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찰나에 깃드는 사소한 배려들이 모여 온전해지죠.


나도 모르게 다정함을 건네기 위한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 한 번 더 지우는 손가락, 내 말을 터뜨리고 싶을 때 너의 문장을 기다려주는 인내, 화가 난 너에게 같은 화로 답하지 않는 심장, 그리고 너의 눈가에서 비쳐 나오는 아픔을 먼저 읽어내는 눈빛까지. 내 존재의 안테나가 오롯이 너를 향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할 때, 다정함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가끔은 내 진심이 상대에게 닿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상대가 당장 느끼지 못할지라도 다정함을 멈추지 않을 힘이 내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상대방이 몰라도 내가 알고 있다면, 그 다정함은 이미 내 영혼을 먼저 적시고 지나갔으니까요. 내가 알면 된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는지 평생을 연구했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이 ‘들어줌’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누군가 내 말을 정말로 들어줄 때, 나는 나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지각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누군가 귀를 기울여줄 때, 끔찍하게 엉킨 매듭은 속수무책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풀려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엉킨 마음을 당장 풀어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그의 말을 가만히 따라가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스스로 매듭을 풀어나갈 힘을 나의 다정함에서 얻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바꾸려 드는 말이 아니라, 그저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였어요. 묘한 역설이죠. 바꾸려 들 때는 완강하던 이가, 그저 온전한 그 자신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바뀌게 된다는 그 역설이야말로 다정함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러니 다정함은 온몸으로 건네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존재를 귀로 내어주는 것이죠. 내어주다 보면 끝내 하지 못한 말도 생기게 될 겁니다. 우리의 다정함은 끝내 비워둔 말들의 자리에 상대가 오롯이 머물게 하는 여유를 갖는 것, 바로 그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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