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어둠의 기술

당신이 당신의 아픔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by 율리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이마에 재를 바르며 시작되는 사순시기는, 삶의 끝자락을 상기할 때 비로소 오늘이라는 생경한 감각이 되살아나곤 하죠. 언젠가 이 유한한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응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의 나날이 조금 더 다정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늘 내 일상이 명도 높은 밝은 색이 길 원하죠. 고통은 비껴가고 행운만 머물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참 쉽죠?’라는 다정한 말투로 캔버스를 채우던 화가 밥 로스는 아내와 사별한 후, 고요한 산과 호수를 그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림에는 대비가 꼭 필요해요. 어둠과 빛, 빛과 어둠이 계속 오가야 하죠. 밝은 것만 겹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것만 쌓여도 마찬가지예요. 인생도 비슷하죠. 가끔은 슬픔이 있어야 좋은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왜 굳이 내 삶에 어둠의 시간이 끼어들어야만 할까요. 행복하기 위해 그토록 애썼는데 왜 삶은 이토록 호락호락하지 않은 걸까요. 밥 아저씨의 말처럼 삶은 빛과 어둠의 끝없는 대비를 통과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삶의 질감을 결정하는 것은 사건의 색깔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주의를 내어주느냐에 달려 있죠.


어둠에만 시선을 고정하면 내 인생은 늘 어두워 보일 거예요. 나를 찾아온 작은 빛줄기조차 우연으로 치부하며 지나치기 쉽죠. ‘나는 늘 힘든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잠식되면, 내 삶에도 분명 존재했던 빛의 기억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흩어지고 말 겁니다.


반대로 빛에 주의를 기울이면 삶은 입체적으로 살아나요. 내가 이뤄낸 사소한 성취들, 찰나의 웃음, 고통 속에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버텼던 숭고한 시간들. 그 모든 것이 내 삶의 고유한 색채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똑같은 풍경이라도 어느 각도에서 빛을 비추느냐에 따라 그림의 온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밝은 어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는 chiaro밝음와 scuro어둠의 합성어입니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대상에 생명력과 서사를 부여하는 기법이죠. 여기서 핵심은 ‘어둠’의 역할입니다. 어둠은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라, 빛을 가장 눈부시게 드러내기 위한 적극적인 무대 장치예요. 화면의 대부분이 어둠에 잠겨 있을 때, 단 한 줄기의 빛은 비로소 드라마가 됩니다. 이 역설적인 예술 기법은 마음이 무너졌던 순간,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다정한 지지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인간관계로 피폐해진 마음을 안고 상담실을 찾으려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예약을 하면서 ‘상담사 선생님이 어떻게 말하는지 기법이나 설명을 잘 듣고 배워서 나도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내밀한 아픔을 직면하는 대신, 상담을 분석하며 또다시 이론 뒤로 숨으려 했죠. 고통이라는 어둠에 빠지기 싫어 논리라는 차가운 안경을 쓰고 상황을 마치 내 일이 아닌 것 마냥 관조하려 했던 겁니다. 그때 오랜 친구가 제 속내를 꿰뚫듯 한마디를 건넸어요.

너는 상담받으면서도 분석하려고 들 거야. 분석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얘기에만 집중해.


그 말은 제게 큰 위로이자 빛이었습니다. 저는 상처받은 ‘존재’로 머물기가 두려워 ‘분석’을 방패 삼아 도망치고 있었거든요. 친구는 저를 붙잡아 어둠의 한복판에 앉혔습니다.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고 공부하려 했던 건, 어쩌면 나 자신에게 저지른 가장 우아한 폭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짙은 어둠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통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멈춰 있던 제 삶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은 빛으로 이겨내야 할 적이 아니라, 빛을 이해하기 위한 통로입니다. 그림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죠. 외롭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 하룻밤을 꼬박 새웠던 시인 김소연은 《마음사전》에서 ‘어둠’을 이렇게 정의하더군요.


마음이 칠흑일 때, 차라리 마음의 눈을 감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길 차분히 기다린다면, 그리곤 점자책을 읽듯 손끝으로 따라간다면, 이내 사물을 읽을 수 있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밝음 속에서 읽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온 마음으로 잘 읽힌다.

시인의 말처럼 어둠 속에서 삶의 거친 질감을 더듬어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고뇌는 사실 빛을 알아보기 위해 켜켜이 쌓아온 사랑의 지층이었다는 것을요. 그 어둠이 없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 존재인지 영영 몰랐을 겁니다. 고마움의 반대말은 당연함이니까요.


매일 누리는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을 대수롭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을 소중히 여길 수 없고, 반대로 누군가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해 본 사람만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언젠가 먼지로 돌아갈 우리에게 오늘 하루가 소중하고, 곁에 있는 사람이 애틋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삶은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그 고단함을 견뎌낸 나를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내일 또다시 어둠이 찾아온대도 상관없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내가 발견할 빛은 더 선명해질 테니까요. 어둠 속에서도 기어이 빛을 찾아내는 나, 그런 나를 기꺼이 사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