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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라디오 Jul 23. 2021

그것은 단지 운이 아니야

콘텐츠 경쟁시대에 정답은 없다

요즘은 콘텐츠 경쟁시대입니다. 글이든 영상이든 사진이든요. 이용자는 초반에 흥미가 없으면 더 이상 보지 않고 스윽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거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다른 콘텐츠에 시선을 돌립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해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그러니까요.






저도 초반에 글이 재미없으면 끝까지 읽지 않고 영상도 1분 이내에 재미가 없으면 다른 영상을 클릭합니다. 무수한 콘텐츠 중에 내 콘텐츠를 끝까지 오래 보게 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초반의 재미를 잡아야 하는 것이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방법은 어디까지나 방법일 뿐, 이대로만 하면 된다는 공식은 없습니다. 감을 잡은 것은 오로지 창작자의 능력에 따라 달렸습니다. 꼭 초반에 재미를 잡아야 콘텐츠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고, 개성이 있으니까요. 모든 콘텐츠가 재밌고 웃기거나 감동적일 필요는 없죠. 그것에 휩쓸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유튜브에 라디오 채널을 운영하기로 해놓고, 조회 수가 낮아 어떻게 하면 조회 수를 올릴 수 있을지 여러 방법을 고안해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뒤죽박죽이었죠. 나만의 개성은 없고 대체 DJ줄리는 뭐하는 사람인지 제가 봐도 잘 모르겠을 정도였습니다. 아, 이런!


어떻게 해서 제 콘텐츠를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느냐, 이것에 대한 문제는 또렷한 정답이 없습니다. 트렌드는 수시로 바뀌고, 꼭 대세를 따라가야만 정답은 아니니까요. 어떤 분은 ‘하나의 콘셉트를 그대로 쭉 밀고가면 몇 년 뒤에는 확 뜰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분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내게 잘 맞는 콘텐츠를 찾아 그것을 위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전자의 방법으로 쭉 가려고 했는데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마음을 열어 후자의 방법으로 가는 중입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인기 콘텐츠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반응에만 치우쳐 콘텐츠를 만들게 되면 어느새 자신의 컬러를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요즘 이용자들은 유튜브도 1.25배 또는 1.5배로 들을 정도로 마음이 급합니다. 재미없는 건 10초 스킵을 누르고, 누르고 누르다 핵심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10초 전으로 돌리죠. 아니면 댓글을 보며 어떤 내용인지 빠르게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흥미 없으면 가차 없이 ‘뒤로 가기’버튼을 누릅니다. 이용자들을 오래도록 잡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을 아는 것이 관건이었죠.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실시간 라디오를 하면 처음 듣는 청취자분들은 'DJ님, 진짜 라디오 같아요', '목소리 좋아요'라고 칭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듣는 분들 중 90%는 제게 좋은 칭찬의 메시지를 남기죠. 그렇지만 그 말을 하고 5분이 되지 않아 오래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진짜 라디오 같고 목소리가 좋은데 나갈까, 의문이었습니다.


한번은 나가려는 분을 붙잡아서 "왜 칭찬을 하시고 나가려고 하시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분이 말하시길, "진짜 라디오 같고 목소리도 좋은데요. 조금 심심해서 '뒤로 가기'를 클릭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즉, 라디오 같지만 라디오를 좋아하지 않거나 제 라디오가 심심하다는 뜻이겠죠? 



기존 라디오 매체와 개인방송 플랫폼의 성격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라디오 매체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하고 음악으로 위안을 얻는 청취자가 많았고, 개인방송 플랫폼은 실시간으로 비제이와 바로 소통하며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무언가를 ‘보고 듣고’하는 걸 원하는 이용자가 많았어요.


어쩌면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제가 추구하는 라디오 성격은 조금 안 맞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무수히 쉽게 지나가는 청취자를 보면서 나도 이 플랫폼에 콘텐츠를 바꿔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뭔가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나만의 개성은 없어지기는 할 것 같았죠. 마음 한 켠에 '그럼에도 내 라디오를 좋아해주시는 분이 없을까'하는 기대가 있긴 했습니다.


실시간 라디오를 할 만한 곳에 정착하고 싶었는데, 기존 라디오 플랫폼의 크리에이터 DJ로 당선되어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라디오 DJ를 하고 싶던 내게 딱 맞는 자리라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예전에 읽은 책 <창작자들>에서 영화 '신과 함께'를 만든 김용화 감독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오래 버텨야 운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무수한 콘텐츠가 쌓여있는 플랫폼에서 내 콘텐츠가 보이지 않아 늘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었는데, 고민하고 고민하던 차에 한 계단씩 오르게 된 게 마치 운 같았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룰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힘, 시크릿 방법이 통한 것처럼 느껴졌죠.


신나서 좋은 소식을 동생에게 말했어요.

"새로운 라디오를 하게 됐는데, 나 이제야 운이 트이려나봐."

가만히 제 이야기를 듣던 동생이 제게 단호하게 말했어요.


언니, 그건 운이 아니야


동생에게 책에서 읽은 김용화 감독의 말을 전하려고 하던 차에, 동생이 먼저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만약에 언니가 1년, 2년 계속 라디오를 하면서 나중에 라디오가 잘 되었을 때 사람들이 잘된 언니를 보고 '우와, 줄리는 운이 좋네'라고 말하면 언니는 어떨 것 같아?


그간 잘 안 되고 불안하던 시기를 딛고 계속 노력해서 얻은 뭔가를, 단지 ‘운’이라고 표현하니

어딘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동생의 말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운이 아니구나.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서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단지 운이 좋아서, 라는 말은 내게 보이지 않는 마법의 힘이 있어서 좋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의 노력이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게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못하는 걸까요. 우리에게 좋은 운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 얻어냈다고 생각하자고요. 운이 닿기까지 노력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걸 잡지 않았다면 그 운은 내 것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라고 제작한 콘텐츠 A는 예상 외로 반응이 없고, 무심코 올린 콘텐츠 B가 더 인기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B가 반응이 좋았던 이유는 분명 있겠지만 B를 처음부터 만들 수는 없었을 겁니다. A를 만들다보니 B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수 있고, 하나 하나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감이 생긴 걸 수도 있고요. B가 반응이 좋다고 B-1을 만든다고 연속해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라디오 기회를 잡게 된 것도 유튜브와 개인방송 플랫폼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안 되도 밀고 나가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은 하나도 버릴 게 없었습니다. 모두 다 좋은 발판이 되었죠. 


만약 누군가 잘 지내는 당신을 보고 "너는 참 운이 좋아"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얘기해주세요.

"나는 운으로 잘 된 게 아니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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