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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라디오 Oct 05. 2021

라디오 고민 상담은 쉽지 않아

모든 고민을 다 들어줬던 에피소드

라디오, 하면 먼저 떠오르는 코너가 있죠? 라디오를 한다고 하니, 친구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줄리야, 청취자의 고민 사연 받아서 상담해주는 코너 해 봐!” 마치 패키지 같습니다. 빵 먹을 때는 우유가 가장 잘 어울리고, 라면 먹을 때는 달걀이나 김치를 먹으면 맛있고, 라디오 하면 고민 사연 코너가 빠질 수 없는 패키지의 느낌이 듭니다.




라디오에서 고민 상담 코너를 진행하기에는 좋습니다. 다양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 많고, 매번 색다른 주제로 인생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저도 아무런 고민이 없어도 남이 하는 고민을 듣고 해결하는 글을 계속 읽을 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고민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구경하는 재미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진짜 고민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은 누군가의 위로와 조언으로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추가글(?)을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가를 바라고 하지 않는, 좋은 마음으로 하는 봉사(?)죠. 저는 예전부터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을 ‘착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완전 착한 건 아니지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맞잖아요? 맞죠?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편지를 통해 과거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영향을 주고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소설을 읽고 진심 어린 편지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음에, 따뜻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도움을 주고 싶었죠. 혼자 잠시 고민을 해보다가 블로그를 하나 뚝딱 만들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줄리 잡화점의 기적’이라고 지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고민 댓글을 남겨주시면 제가 성심성의껏 답변을 달아드리겠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날 확인해보니, 2명이 조회했더라고요. 누가 본지 모르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서 무슨 쇼를 한 건지 싶은데요. 하여튼 예전에 혼자서 누군가의 고민 상담을 해주겠다고 블로그까지 만들었던 저는, 라디오를 하면서도 청취자의 고민 상담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실시간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청취자의 고민을 들어주겠다고 라디오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 : 고민 있으신 분, 따뜻하게 상담 해드려요 :)


그러면 가벼운 고민부터 무거운 고민까지 다양한 고민을 저에게 털어놓습니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모바일 실시간 개인방송 플랫폼에서는 청취자와 통화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 기능을 통해 말로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있던 청취자들이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줬어요.


내용은 여태 오래 해오던 일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지 못해 마음이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이 고민은 해결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들어주는 데에 있었죠. 저 또한 제가 얘기해드릴 것은 없어서 이야기를 잘 듣고, 기운을 낼 수 있는 명언을 찾으며 얘기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도 있으니 분명 잘하실 거예요.


같이 듣던 청취자분들도 "얘기해주셔서 고마워요"하고 그분을 격려했어요. 그렇게 한 20분 가량을 그분의 이야기를 다 들어줬는데, 그분이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는지 통화 기능을 끊고 텍스트로 ‘감사합니다’하면서 바로 나가시는 거예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행동이 못된 행동은 아니죠.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저와 같이 듣던 청취자분들이 그 시간동안 마음을 다해 같이 이야기를 들어줬는데 말이에요. 마치 친구를 불러서 “나 할 얘기 있어”하고 본인 이야기만 다 하고, “난 이제 가볼게”하고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다해 들어준 건데 본인의 볼 일이 끝났다고 나간다니, 제 입장에서는 존중받지 못한 마음과 동시에 약간의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고민이 들어만 주는 것만 필요하다고 해도, “아, 진짜요? 아, 진짜요?” 하면서 영혼 없이 듣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그때 그 사람의 상황에 느꼈을 기분도 짐작해보면서 어떤 말을 해주면 더 기운이 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들었거든요. 오자마자 고민을 털어놓고 본인의 용건이 끝났다고 휙 돌아가는 행동에 적잖은 허탈함이 느껴졌습니다. 거, 너무한 거 아니오!



어떤 분은 오자마자 무거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 걱정하면서 들었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약간 빈틈이 보이는 거예요.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며내신 건지, 대화를 하면서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나가시더라고요. 아마도 자극적인 소재를 갖고 와서 거짓 내용으로 고민 상담을 한 것 같았죠. 온라인에 익명이니 누군가는 장난을 칠 수도 있다고 생각은 들어요. 그래도 심각한 상황이 거짓말이어서 다행이었죠. 휴.


또 다른 분은 고민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소한 고민을 계속 말하시는 거예요.

"제 고민 좀 들어주세요. 엄마가 방 치우라고 해서 짜증이 났어요. 어떻게 할까요?"

"줄리님 저 진짜 고민이 있는데요. 다이어트하는데 자꾸 배고파요. 어떻게 할까요?"


이런 식으로 '고민'이라고 얘기하시는 게 굉장히 많은 거예요. 사실 고민의 뜻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인데, 사람마다 고민의 크기는 다르겠죠. 그걸 짐작해서 판단해도 안 되는데,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려고 하다 보니 하면서 저도 조금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혼자 고민을 끙끙 앓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는 들어 드리고 싶어요. 언제든. 일방적인 하소연이나 과장된 거짓말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고민상담을 잘해서 하겠다는 것보다는 저의 말과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위로를 주고 싶어서입니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말과 노래로 힐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또, 상담을 잘하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대해 '이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 없고,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고민을 들어주면서 그분이 느꼈을 감정을 공감하고 생각하는 의견을 드리며 위로를 해주는 것이에요.


많이 살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자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거 아니야'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개개인의 상황은 모두 다른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상담할 때 뭔가를 단정짓거나 판단을 내리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모든 고민에 대한 결정은 본인이 내리는 것이고, 누군가가 '이렇게 해, 이게 맞아'라고 말하는 건 영역 밖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고민 해결이 필요하면 방법을 제안해보거나 비슷한 상황을 예시로 들어주면서 고민하는 분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또한 모든 일에 대해 지혜롭게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뭔가가 맞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 모두 인생을 처음 살았기 때문에 누구나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사람끼리 서로 채워주며 따숩게 따숩게 사는 게 인생 아닐까요.



오늘도 좋아하는 라디오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같이 좋아하는 일하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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