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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May 08. 2020

꼬르르륵!

에세이 - 데우스 엑스 마키나, 우당탕탕 자살소동에 대한

고등학교 시절 습관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나는 20살이 되면 죽어버릴 거야."


전력을 다 했던 입시에 성공하고 나면 행복한 날들만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만큼 20살이라는 숫자에 환상이 컸고. 나는 20살이 되면 우주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된 그 나이가 되면 멋있게 세상을 떠야지. 그것이 꿈이었다. 


20살이 되었고.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바라던 것들을 모두 이루어 왔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나는 처음 느끼는 엄청난 절망감에 어찌할 줄 몰랐다. 가만히 이겨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재수를 결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혼자 사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에 취해 20살의 재수를 견뎌냈지만 원하던 대학 진학에는 또 실패했다. 


삼수.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단어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도 되는 걸까? 결론은 '아니다'였다. 나는 지난 2년간 나의 실패를 증명했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더 이상 나의 부족함을 뽐내고 싶지 않았고, 실패자의 모습을 애써 감추며 예전처럼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을 이루지도 못했고. 20살보다 한 해 더 지나버렸지만. 더 이상의 비참함을 경험하기 전에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나의 죽음 준비는 이러했다. 먼저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내가 죽고 나서 이 방을 정리하는 사람이 덜 괴로울 수 있도록 옷과 소지품들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일기를 썼다. 길고 긴 일기. 나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꼼꼼히 그 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썼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다. 유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기억할 사람들을 위한 인사.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며 내 마음을 설득했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꺼억 꺼억 소리를 내며 울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는 계획을 나는 찬찬히 이어갔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복층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위에 목을 맬 생각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계단 아래에 앉아 2층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나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비참한 20대가 되는구나. 나는 왜 내 사람들의 자랑이 되지 못하는 걸까?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인간이 이렇게 감정에 취해 있어도 되는 걸까? 우습다. 만일 내가 살고 싶다면 왜 일까? 살고 싶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방법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그래도 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를 저 버리는 게 왜 이렇게 괴로울까?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이긴 한 걸까? 이 지구에 내가 없어진다고 해서 변하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왜 드는 걸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걸까? 왜 결국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이렇게 한심한 인간 일까 나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머리 가득했다. 도저히 이 끔찍한 계획을 멈출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도록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했다. 멈추기 위한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해는 지고. 새벽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바닥에 앉아 울다 생각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너덜너덜한 몸을 일으켜 계획을 실행하려 했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으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려는 순간. 소리가 들렸다. 


"꼬르르륵"


그리고 한 번 더. 더 길게 


"꼬로로루루르르르르륵"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울기만 한 내 몸이 말하고 있었다. 배 가 고 프 다 고. 

인간 네가 도대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먹어 가면서 하라고. 


나는 웃었다. 한 참을 웃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존재에 대해 뜨거운 머리로 고민하던 중에 내 몸은 배가 고팠구나. 뭐라도 먹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온 힘을 모아 외치는구나. 꼬르르륵 이라고.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난리를 쳤나. 고작 배고프면 꼬르륵 거리고 졸리면 하품 나는 인간이 무슨, 얼마나 대단한 시련을 맞이했다고 그렇게나 대단한 밤을 보냈나. 


그 후 일정은 이랬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것들로 밥상을 차려 배부르게 먹고, 깨끗하게 샤워를 한 후에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우당탕탕 자살소동은 아무도 모르게 정리되었다. 덕분에 나의 삼수는 더 절실했고. 다음 입시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 배웠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사용하던 기계장치, 극작 술. 신의 등장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한 번에 정리하는 기술. 혹은 기계장치.라고 했다. 전공책에 그려져 있던 삽화를 기억한다. 무대 뒤 벽 쪽에 기중기에 '신의 형상'을 매달아 둔 그림이었다. 마치 목을 맨 사람처럼 보였다. 

그 삽화 옆에 작은 글씨로 '꼬르륵~' 이라고 썼다. 


꼬르륵~


지금도 가끔, 나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고민을 하게 될 때에 중얼거리곤 한다. "꼬르륵" 이라고. 그래도 무겁게 느껴지면 더 길게 발음해 본다. "꼬르르르르르륵" 하고. 


더 많은 실패, 더 심한 자기혐오를 겪게 되더라도 나에게는 이겨낼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꼬르륵" 


소리 내고 나면 내가 조금 하찮아지고 귀여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밥을 챙겨 먹고, 잘 자고 내일을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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