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학교 선배가 추천해 준 라멘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 당시 나의 출근 시간은 10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선배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해서, 전쟁통과 같은 점심시간을 함께 헤쳐나갔고, 선배보다 한 시간 늦게 퇴근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던가.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헐레벌떡 강의실로 뛰어 들어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출석 체크를 했던 나는 일본에서도 여전했다. 10분만 일찍 일어나면 될 텐데 그게 안 됐다. 매일 아침마다 마음속으로 ‘미쳤어, 미쳤어’를 외치며 히가시쥬죠(東十条) 역까지 쉬지 않고 내달리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10분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고, 집 근처 빵 가게의 노란 조명이 창밖으로 퍼져나갔으며, 가구를 파는 가게의 한쪽 철문은 닫혀있었다. 양쪽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늘 듣던 BUMP OF CHICKEN의 fire sign이 흘러나왔다. 호시와 마와루 세카이와 스스무(星は廻る世界は進む). 노래를 들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열심히 달린 덕분에 매번 늦지 않게 가게에 도착했고, 조금 숨을 돌리고 나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었다. 드르륵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는 주기가 짧아지고, 나의 손과 발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조금 정신이 없어도 나는 이 시간이 좋았다. 주문하는 손님도 설거지할 그릇도 없어 점장님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것보단 바쁜 게 나았다.
설거지할 그릇이 점점 줄어들고 점장님이 선배에게 무슨 라멘을 먹을 거냐고 물으면, 곧 선배가 퇴근할 시간이었다. 그날 선배가 하카타 라멘을 먹었던가 미소 라멘을 먹었던가. 그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선배는 라멘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점장님과 나의 어색한 시간이 시작됐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간간히 손님이 있었다. 그날은 두 명의 손님이 때 지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라멘을 먹던 손님들이 점장님과 무언가 말을 주고받았다. 설거지를 하느라 무슨 말을 나누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밥을 먹던 손님들이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점장님은 나에게도 어서 밖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가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오자 우리뿐만 아니라 옆 가게 사람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게 앞을 지나가던 모녀가 멈춰 섰다. 점장님과 손님들은 그 모녀에게 지금 가지 말고 잠깐 여기에 있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물컵에 절반 정도 찬 물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거리에 설치된 철제 울타리를 붙잡았다. 땅이 이렇게 흔들리는 걸 처음 경험하는 나는, 너무 놀라 내 두 손을 붙잡고 얼어 있었다. 누군가에겐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좀 전까지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애가 말했다. 죽고 싶지 않아.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공포를 잊기 위해 입 밖으로 말을 뱉어내는 여자아이가 공감되면서도 멀게 느껴졌다. 그 여자아이 옆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나는 여기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하지만 그런 말이 그 아이에게 위로가 될 리 없었다. 조용히 말을 삼키고 눈 앞에 있는 건물을 바라봤다.
저 건물이 쏟아져 내리면 나는 죽겠구나. 죽음 앞에선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던데, 그렇지도 않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은 두건을 쓴 점장님과, 점장님 뒤로 도로에 있던 차들이 좌우로 흔들리는 게 보였다. 점장님이 손을 뻗어 나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평범한 날이었다. 배부른 오후 느닷없이 찾아오는 낮잠처럼 재앙이 찾아왔다. 영화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쪽은 파란색이나 까만색의 옷을 입은 슈퍼히어로였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흔들리는 차와, 쏟아질 것 같은 건물과 점장님과 맞잡은 두 손을 바라 볼뿐이었다. 그저 흔들림이 멈추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