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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May 13. 2020

냄새들*

5월의 창작 주제 <데우스 엑스 마키나>

'*' 표시가 붙은 글은 매달 저희 작가들이 작은 창작 훈련을 함께 시도하는 글들입니다. 5월엔 오감에 관해 꼼꼼히 묘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냄새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다. 남들이 다 무슨 냄새 안 나냐고 할 때 나만 멀뚱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냄새의 근원을 찾는 수색 작업에 덩달아 참여하는 척 하다가, 그 작업이 일단락되면 조용히 내 소매를 코에 대본다. 이 모임에 미친 자가 없어 보이면 바로 본인이 그런 거라는 소리도 있으니까. 난 냄새에 둔감하니까 당연히 아무 냄새도 안 난다. 요새는 반팔을 입어서 몰래 내 냄새를 확인해 보기가 더 까다롭다.       


 반면 사무실에 친한 동료는 냄새에 유독 민감하다. 사무실에서 걸레 잘못 빤 냄새 나지 않아? 에어컨에서 시궁창 악취 역류하는 냄새 나지 않아? 화장실 누가 썼어, 이거 분명히 기름진 중국음식 먹었던 사람인데? 이 친구의 냄새 표현을 듣고 있다 보면 무엇보다도 나와는 감각하는 범위 자체가 다르다는 것에 놀란다.      


 이대로는 내 코는 안 따라주는 와중에 마음만 불안한 상태가 계속 지속될 것 같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나만의 감각 훈련을 해보려 한다. 좋았든 싫었든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세 종류의 냄새를 떠올려 최대한 세세하게 적어볼 것이다. 내 인생도 지금 내 판단처럼 그렇게 무취의 인생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1) 불 냄새

 우리 엄마는 이 냄새를 불 냄새라고 부른다. 띄어쓰기를 안 하니 빨간 줄이 쳐지는 걸 보니 ‘불냄새’라고 따로 뭘 지칭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고, 정말 엄마에겐 이 냄새가 불에서 나는 냄새를 연상시키나 보다.      


 나로선 불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냄새는 무언가 타는 냄새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애초에 뭔가 타는 냄새도 다 다르다. 특히,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냄새는 무언가 화학적이다. 뭘 탄 듯 까만 연기가 시각적으로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연기에서도 꼭 까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불 냄새는 이렇게까지 불쾌한 냄새는 절대 아니다.     


 무언가 훈연하는 냄새? 오히려 이쪽이 더 불 냄새에 가깝다. 그런데 또 조금은 다르다. 무언가 훈연하는 냄새가 더 매캐하다. VJ 특공대에서 목초액을 고발하는 회차를 본 이후로, 인공적인 훈연 향과, 자연적인 숯 향을 구분하는 어줍지 않은 코까지 생겨버렸다. 목초액 쪽이 냄새가 더 끈적끈적하고 느끼하다. 어쩌면 목초액이든 훈연이든 다 기름진 음식과 어울리는 냄새이기 때문에 이 단어를 보면 저절로 이런 감각들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 불 냄새는 더 뽀송한 냄새다. 오직 추운 겨울 칼바람에 맞은 사람 뺨에서만 나는 냄새니까. 일차원적인 발상이지만 그래서 냄새가 차갑다. 매연이나 훈제 향보다 훨씬 더 은은하다. 옛날에 자주 사먹던 ‘스모키 베이컨칩’에서 딱 이런 냄새가 났었다. 아니 이 과자도 지금의 닭발 집들만큼 목초액을 팍팍 사용했었는데, 단순히 추억보정이 되어서 더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추운 날씨가 되면 사람 뺨에서 뭔가 가열할 때 나는 향기가 풍기는 게 좀 신통하다. 엄마는 이 냄새를 싫어해서 불 냄새라 부르셨지만, 난 꽤 좋아하니까 앞으로 불 향기라 불러야겠다.        



 2) 엄마 화장대 냄새

 왜 냄새 이야기 하니까 엄마 이야기가 덩달아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호불호를 밝히고 시작하자면 나는 이 냄새도 진짜 좋아한다.


 나한테 이 냄새는 세련 그 자체다. 어렸을 적 엄마가 없을 때 엄마 장롱을 열고 자주 놀았다. 어떤 교수님은 이게 트랜스젠더들이 전형적으로 말하는 아주 보편적 서사라고 분석적으로 나오시던데, 뭐 좀 엇나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랬다.     


 장롱 문을 열면 안쪽 손잡이에 걸려 늘어져 있는 하늘하늘한 스카프 하며, 요즘 세대가 쓰는 것보다 훨씬 기름지고 잘 묻어나는 립스틱들, 물 먹는 하마가 물을 덜 먹어 생긴 거울 가장자리 곰팡이까지. 무엇보다 그 향기. 매번 냄새 냉장고를 열 듯 장롱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이 총제적인 광경과 향기들이 어린 내겐 너무 세련되게 느껴졌다. 내 키보다 조금 높게 달린 거울을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보며 엄마 립스틱을 바르고 놀았다. 꽃향기도 아닌 것이, 섬유유연제 향기도 아닌 것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그 도회적인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이후 화장품 덕질을 시작하며 그 향기가 다름 아닌 화장품 브랜드 헤라 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렇게 향기가 강한 화장품들은 세련보다는 엄마st. 화장품으로 통하는 식으로 시절도 변했다. 그래도 여전히 내 윗세대의 향기는 꼬맹이인 나는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모던한 정취를 떠올리게 해준다.    

  


 3) chestnut flower

 밤나무의 꽃냄새라고 바로 제목부터 적어버리면 웃는 사람이 많을 까봐 영어로 적었다. 밤꽃 냄새가 남성의 정액 냄새와 흡사하다는 밈이 엄청 강력한 것 같다. 나 역시 뭐 비슷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다르다. 난 밤꽃냄새는 좋단 말이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갔을 때 사방이 온통 밤나무였다. 밤나무 꽃은 보통 한여름에 피고, 유격도 보통 여름에 하니까. 한 마디로 온 산이 밤꽃냄새로 가득 찼었다. 밤꽃냄새는 다른 꽃향기에 비해 향이 무겁다. 뙤약볕 아래, 익숙해 질 수 없게 강렬한 향기가 항상 고여 있고, 하루하루의 일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다. 어딘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공간과 향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의 남자들은 다 싫어하는 유격이랑 밤꽃냄새가 하나로 합쳐지니까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다들 몸이 힘드니까 서로 갈구고 눈치보고 이런 것도 없었다. 나는 군대에서 ‘왜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할까. 나는 왜 하루 종일 누구 밉다는 생각밖에 안 하며 지낼까.’의 고민에 가장 지쳐 있었다. 그런 와중에 유격훈련이 뜻밖에 평화로웠고, 내 옆에 선 사람들도 모두 순박해보였다. 다 같이 빡세 게 굴려서 단합심을 키우는 술수에 나는 제대로 넘어갔던 셈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평소의 군대 생활과는 동떨어진 경험 내내 배어 있던 그 밤꽃 냄새가 좋았다. 좀 긍정적이 되었던 걸 보면 그 향기에 좀 취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막상 생각해보니 앉은 자리에서도 전혀 다른 세 종류의 향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섞이면 이상할 텐데 다행히 섞이지도 않는다. 나는 부랴부랴 이번 주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맞춰 이 중 하나를 인생 향기로 꼽아야 한다. 엑스 마키나가 절대 단순한 최종심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이걸로 퉁 칠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급마무리용 장치를 불쑥 도입하는 구조를 일부러 택했다 생각해주시길.....     


 그래서 내 인생 최고의 향기는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페. 로. 몬. 향수. 한 번 바르면, “뭐야, 뭐야. 저 남자 뭐야.”, “나 등 만져볼 뻔 했다니까?”, “미친 X야, 다 들려.” 주의. 페로몬 향수를 뿌리고 탄 엘리베이터 안의 실제 CCTV 장면입니다.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덧) 죄송합니다. 요새 유튜브 광고를 보면 현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취향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장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건 바로 저 제품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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