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담다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롱박 May 22. 2020

코로나 시대의 공연

에세이 - 데우스 엑스 마키나, 공연 제작에 대한

공연 연습 중이다. 

작년에 올렸던 공연이 좋은 성과를 거두어서 올해 다시 공연하게 되었다. 

규모가 큰 공연이다. 국악단,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용단이 참여하고 배우만 30명 가까이 되어서 무대에 올라가는 인원수가 300명이 넘는 공연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른다. 


내가 연극을, 공연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벅차게 감사한 순간이 종종 있는데 이 공연을 올렸을 때가 그랬다. 글이 말이 되고 악보가 음악이 되어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마음에 무언가를 심어주는 공연이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생각할 무언가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작년에 무대에 올라갔던 이 공연은 그랬다. 만든 사람들의 기억에, 보러 온 사람들의 마음에 새롭게 살게 할 씨앗을 심었던 공연이었다. 모두가 그랬을 수는 없지만 대다수는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올해 앙코르 공연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코로나19로 공연 연습이 좀 미뤄졌었다. 공연 장소도 몇 번 바뀌었다. 매일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을 확인하며 공연 여부를 확인하는 기간이 있었다. 다행히 확진자 추세가 줄었고 공연을 하기로 확정이 났다. 오랫동안 기다린 창작자, 배우, 스태프 그리고 관계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앵콜 공연을 준비하기로 했다. 연습기간이 길지 않기에 작년의 기억을 살리고 새로운 감각으로 작품 연습에 임했다. 연습 진행은 순조로웠다. 배우들은 대본을 익히고 노래를 부르며 공연 때의 감각을 되살리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오랫동안 쉬던 중 들어간 공연이라 매일매일 연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습시간 1시간 전에 근처에서 오늘을 준비하곤 했다. 나의 일 중에는 연습 일지를 쓰는 것이 있었다. 그날의 연습을 기록하고 변경내용을 기재하여 각 파트의 창작자들에게 공유하는 일이다. 어제는 연습 일지에 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연습을 진행하며 장면의 순서가 많이 바뀌었다. 짧은 시간에 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대사를 삭제하고 노래 순서를 바꾸었다. 작년 공연 때와 확실하게 달라진 작품이 훨씬 더 몰입감이 생길 듯했다. 기대가 되었고 신이 났다. 이 내용을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꼼꼼히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 **반드시 확인해주세요**' 라는 부제를 달아서 메일을 발송했다. 가뿐한 마음으로 연습을 끝냈다. "내일은 연습이 좀 길 수도 있습니다." 라는 연출님의 마지막 인사로 연습실을 나왔다. 


장면이 바뀌 것이 좀 걱정스럽긴 했다. 2막의 절반이 뒤바뀐 거라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배우들도 그렇지만 우리 공연은 오케스트라와 국악 관현악단이 함께 하는 공연이라 음악의 흐름을 새로 익혀야 하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악보를 새로 제본해야 하려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대감독님은 연습이 시작되고 매일 회의를 다니셨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이 무대감독님은 커다란 대극장을 책임지는 감독님으로 이 거대한 공연을 이번에도 맡아 주셨다. 무대 세트와 조명 그리고 수많은 인원들 뿐만 아니라 관객 없이 생중계될 이 공연을 위해서 촬영 부분도 신경을 쓰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욱 현장의 생생함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고 없이 안전하게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방법을 찾고 계셨다. 연출부, 배우, 연주자, 출연진, 음악, 음향, 무대, 조명, 의상, 소품, 기획 모두가 힘을 모아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 같지만, 늘 그렇듯 해 낼 수 있으리라.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렇게 들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공연 참여자들의 안전을 위함' 이었다. 공연 주최 측에서는 어떻게든 공연을 진행하려 했으나 결국 취소 통보를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공연 예술계는 그야말로 전멸이다. 30년 넘게 연극을 해 오신 선생님도 "내 평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라고 할 정도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공연일이 정해져 있는 일이기 때문에 공연 제작에는 계획이 중요하고 그 계획에 따라 우리는 살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상반기는 그 어떤 계획을 세워도 당장 내일을, 아니 한 시간 후를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이 실연하고, 사람이 보러 오는 공연은 현장성의 예술이다. 내 눈 앞에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상상으로 만든 세상을 보는 것. 그것이 공연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가까이 있을 수 없는 요즘은 공연이라는 것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만나서는 안 돼." "함께 있어서는 안 돼." "온라인으로 만나." "생중계 할 수 있잖아." 그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그래서 더 속상한 지금이다. 


아주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그런 사람. 잠들기 전에 한 번씩 떠올려 보는 그 사람.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보는 것도 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이 내 눈 앞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게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좋아하는 무언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지금의 시대에 많은 공연 예술들이 온라인 스트리밍 되고 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전 세계의 예술을 내 침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감각이긴 하다. 하지만, 공연 예술은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경험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관극은 단순히 보는 행위가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경험하는 예술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고통스럽다. 


하지만, 속상하게도 예술가들은 바보 같다. 

예술가들은 제 자리에서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 갈 것이다. 조금 겁을 먹어서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계속될 것이다. 지나가 버린 가슴 아픈 순간들,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 스쳐간 강렬한 감정들, 자연의 신비함, 인간의 여러 모습 등을 무대라는 공간에 박제할 수 있다고 믿다니.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은 참 바보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다채로운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상반기가 이렇게 녹았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 그래도 나는 바보 같다. 다음 그 다음을 준비해 볼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이 보면 천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