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창작 주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얼마 전 우리 형이 드라마 작가를 교육하는 어떤 학원의 면접을 봤다. 형의 현재 직업은 의사인데, 객관적으로 봐도 의외의 선택이긴 했다. 나야 형이 얼마나 드라마를 애청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형은 한국 TV 드라마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로맨스 물을 딱히 거부감 없이 좋아했다.
면접관은 의사인 형이 작가 학원의 면접을 보러 왔다는 것에 큰 의아함을 느낀 듯 했다. 왜 작가가 되고 싶으냐, 작가 되면 의사 포기할 거냐, 이거 정말 힘든 길이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 그럼 (남자인 네가) 로맨스물을 좋아한다는 뜻이냐? 형한텐 이 모든 질문이 다 의미 없는 태클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 약간 속이 상해서 면접 때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세세하게 알려줬다.
편으로 치자면 나는 당연히 형의 편이었지만, 한 편으론 그 사람이 한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극을 짠다는 것은 그냥 취미로만 시도하기엔 벅찬 부분이 분명 존재하니까. 형이 글 쓰는 직업에 관해, 나아가서는 글을 쓰는 나에 관해 과연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을까하는 의문도 덩달아 들었다.
우리 집에서 난 좀 나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애로 통한다. 머리도 길게 기르고 다니고, 제대로 된 정규직 직장을 가져본 적도 없고, (현실성이 좀 떨어져 보이게도) 작가로 성공하기를 꿈꾸고 있으니까. 형 입장에서는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응급실에서 일한다는 것의 노동 강도를 나로선 짐작조차하기 어렵고, 또 무엇보다 ‘작가’는 형의 꿈이기도 했다. 형이 내게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제안했을 때, 형이 조용히 품었던 마음을 제안 받을 당시엔 잘 알지 못했었지만.
내 딴엔 형만큼은 아니라도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다 생각한다. 알바나 계약직으로 일하며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했고, 남은 시간을 쪼개서 작법 학원들을 다녔다. 그 시간에 글도 쓰고,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고, 합평도 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것들도 많았다. ‘막연히 글을 쓰면 나는 중간 이상은 갈 거라고 기대했는데, 이렇게 추잡한 초고나 만들어 내다니.’하는 현실자각도 했다. 아니, 처음엔 초고조차 완성하지 못했다. 어떤 글을 완성하는 것에도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야 실감했다. 물론 답은 안 나오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작가로서의 생존전략을 고민해 보는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지점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다행히도 난 글을 쓰면서 글이 좀 더 좋아졌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면서 느끼던 이런 고충과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가 쉽지 않았다. 취미와 현실적인 일거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사람취급을 받거나, 자기 주변에 영감이 충만한 누구 이야기를 꺼내며 은근히 넌 그만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돌려 말하는 사람도 만났다. 나도 이런 일을 몇 번 겪다보니 가족에게조차 내 상황을 설명하기가 좀 피곤하게 느껴졌다. 가족들도 막연히 나를 속 편하게 사는 애쯤으로 생각하고, 대신 간섭을 하진 않으셨던 것 같다.
의외의 상황은 최근에 발생했다. 내가 어디 문학 웹진에 글을 기고할 기회가 생기는 등 올해 소정의 성취(?)가 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그 얘기를 가족에게도 전했다. 그 소식에 가족 중 형이 가장 열렬히 반응해줬다. 대단하다고 칭찬하기도 하고 또 그런 ‘재능’이 있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축하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나는 그때 좀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 지원 사업을 따내는 일은 재능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동시대적인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공부하는 노력과, 우리의 자격과 각오를 증명하기 위해 꼼꼼히 지원서를 작성하는 품이 들어갔다면 모를까.
물론 형과 내가 서로에게 느끼는 부러움이나 서운함을 비단 작가에 대한 몰이해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우린 지긋지긋한 가족이었으니까. 형의 입장에선 장남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원하는 것보다도 더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해야 했던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형이 면접 본 학원에 나도 면접을 봤는데, 나는 딱히 면접을 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형에게 전화로 전했었다. “너는 글 쓰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위의 이유에서인지 형의 대답에는 어떤 억울함이 살짝 묻어있었다.
반면, 나는 형이 내가 따로 증명하지 않아도 나를 같이 고생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같이 힘든 현실을 헤쳐 나가는 호감형의 동료로 봐주길 원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형이 작가의 작업에 대해 새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면접관의 말처럼 작가는 힘든 길이다. 어떤 고차원적 이유로 힘든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성실성을 요한다는 측면에서 의사와도 비슷한 방식으로 힘이 든다.
극적이게도 어제 형과 나 모두 그 학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같은 요일에 수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커리큘럼을 함께 경험하게 된 셈이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형의 첫 걸음이 그 다음 걸음에 대한 욕심이 생길 정도로 흥미로운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동생이 걸어가는 길에 대해서도 보다 온당하게 이해하게 되기를 또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