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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만추 May 25. 2020

<청소시간>

10분 희곡

등장인물

제윤 (15)

나은 (15)    

 

비 내리는 어느 4월.     


인적이 드문 학교 복도. 

오른쪽으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나은이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다. 잠시 멈춰 서서 한숨을 쉬더니, 다시 거칠게 바닥을 쓴다. 빗자루와 벽이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멀리서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은 (빗자루질을 멈추며) 뭐야, 왜 이렇게 늦게     


나은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제윤을 보고 당황해서 말을 잃는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바닥을 쓴다.      


제윤 현수인 줄 알았어?

나은 

제윤 강현수 매점에 있더라. 맨날 붙어 다니는 오빠랑 소시지 빵 먹고 있던데. 

나은 …     


제윤, 바닥에 있는 빗자루 하나를 들어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나은은 빗자루질을 멈춘다.     


제윤 도와주려구.

나은 괜찮아. (바닥을 쓴다)

제윤 … (바닥을 쓴다)

나은 (멈추며) 혼자 할 수 있어. 

제윤 응.

      

나은은 계속 바닥을 쓴다. 제윤은 그런 나은을 본다.      


제윤 비 되게 많이 온다. 아리분식에서 뜨끈한 오뎅 먹으면 딱인데.

나은 

제윤 나 3월 달에 영화관에서 담임이랑 마주쳤는데, 놀라가지고 도망갔었다?

나은 … (빗자루질을 멈춘다)

제윤 그러니까 괜찮아. 

나은 무슨 말이야?

제윤 당황하면 다 그런다고.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제윤 아까 강현수 앞에서…

나은 아까, 뭐?

제윤 …이젠 아까 있던 일까지 모른 척하는 거야?

나은 나 청소해야 되거든. 비켜줄래?     


제윤,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하고는 나은에게 보여준다.      


제윤 이 계정, 이렇게 있는데도 모른 척할 거야?

나은 이게 뭔데?

제윤 너잖아.

나은 이 사람이 나라고? 아닌데.

제윤 김나은.

나은 이거 나 아니야.      


나은, 다시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제윤 너 진짜 웃긴다.

나은 

제윤 미안해서 이러는 거면 차라리 사과를 해.

나은 나 아니라니까!      


나은, 씩씩거리며 제윤을 노려본다. 제윤도 지지 않고 나은을 본다. 

나은은 바닥에 있는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계단을 올라간다.      


제윤 모른 척한다고 없어질 것 같아?

야, 김나은!

나 네가 쓴 DM 다 가지고 있어. 다 가지고 있다고! 야!     


나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온다.     


나은 (목소리를 낮추고) 다 들려.

제윤 들으라고 한 거야.

나은 왜 그래.

제윤 너야말로 왜 그러는데. 1시간 전까지 나랑 DM 주고받아놓고 아니라고? 서로 쓴 글에 좋아요 눌러줘 놓고 아니라고?

나은 그래 그거 나야, 내가 했어! 이렇게 말하면 뭐가 좀 달라져? 

제윤 …친구라며. 네 맘 알아주는 건 나밖에 없다며. 

나은 

제윤 왜 그랬어? 내가 임제윤이라서? 강현수가 싫어하고 반 애들이 말 안 거는 임제윤이 라서?

나은 그게

제윤 1년 넘게 SNS에서 주고받은 말은 다 뭐였어?

나은 

제윤 네가 나인 걸 알았을 때, 나는 그래도 네가 날 아는 척해줄지 알았어. 강현수가 옆에  있든 없든, 그냥 날 아는 척해줄지 알았다고. 

나은 …미안해. 


사이. 빗소리만이 둘 사이를 채운다. 


징-. 빗소리를 뚫고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울린다. 

나은이 핸드폰을 꺼내 보고는 제윤의 눈치를 본다.      


제윤 강현수야?

나은 …응.

제윤 받아. 너 걔 말이라면 다 듣잖아.     


나은,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는다.

나은은 현수와 통화를 하며 제윤을 흘끔흘끔 본다.      


나은 여보세요?

응, 청소하고 있지. 왜.

소시지 빵? 됐어. 나 안 먹을래. 

아니, 화 안 났어. 그냥 배불러서 그래. 

됐어, 다 끝났어. (은근슬쩍 걸음을 옮기며) 내가 갈게. 지금 매점이라고?

제윤 어디 가!


나은이 걸음을 멈춘다.     


나은 어? 응? 무, 무슨 소리?

…있기는 누가 있어, 혼자 있지. 잘못 들은 거야. 

알았어. 빨리 갈게.     


나은, 전화를 끊는다. 

제윤이의 긴 한숨 소리. 그리고 나은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소리.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나은 …비밀로 하면 안 될까?

제윤 뭐?

나은 1년 동안 뒤에서 봤으니까 너는 알잖아, 내가 얼마나…. 비밀로 하고, 다시 예전처럼  지내면. (울먹이며) 아니야, 미안해….

제윤 

나은 미안해.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미안해. 미안해 제윤아. 내가. 정말 미안해.      


나은이가 훌쩍이는 소리와 빗소리가 복도를 메운다.      


제윤 미안해하지 마. 나 너랑 친구였던 적 없어. 


제윤, 훌쩍이는 소리를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간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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