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창작주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등장인물
민경(23)
예찬(21)
교수(45)
때 문화비평쓰기 화상수업 시간.
곳 각자의 방, 혹은 Zoom으로 연결된 화상화면 안.
조명이 켜진다. 무대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오른쪽에서 민경이 작은 탁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있다. 가운데에서 교수가 사무용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있다. 왼쪽에서 예찬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민경은 A4에 꼼꼼히 밑줄을 그으며 내용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곧 교수가 노트북을 두드린다.
교수: 다 들어왔나? 세십니다. 들어오세요.
예찬: 안녕하세용.
민경: 안녕하세요.
교수: 그러면 바로 저번시간 이어서 토론 진행해요. 지금 이태원 클럽 코로나 사태 관련한 조들 맞나?
민경, 예찬 동시에 대답하느라 민경의 대답이 먹힌다.
예찬: 맞아요, 쌤.
교수: 민경 씨부터 전날 논의 요약하고, 바로 이어서 추가 발제 있으면 하세요.
민경: (필기한 종이를 살피며) 네. 저 소위 ‘이태원 게이 클럽 발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논의 중이었고요, 저는 찬반 중에... 그러니까 어쨌든 이렇게 특정 소수집단을 질병의 원인으로 파악하는 현상 안에는 분명 혐오의 시선이 깔려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민경이 말하는 도중 버튼을 눌러 마이크를 가져오는 교수. 민경의 후반 몇 마디는 입만 뻥끗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교수: 단어를 얼마나 정치하게 써야 하는가 논의는 저번 시간에 끝난 것 같고요. 이어서 논거 위주로 말씀하심 돼요.
민경: 어, 그러니까 몇 가지 있는데요. 첫째로 P모 클럽만 해도 퀴어들을 대상으로 한 클럽이 아니었음에도 확진자가 나온 상태고요. 그러니까 꼭 이걸 게이 클럽 발 질병으로 명명하는 것 자체가 우선 문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경이 말하는 중간부터 손을 들고 있던 예찬.
교수: 예찬 씨도 말씀 하세요.
예찬: 아, 우선 선배님 말씀하신 것 진짜 잘 들었고요. 저도 맞는 말씀 같은데, 그래도 몇 가지 팩트 체크를 해 보면요, 팩트라고 말해도 되는, 거죠?
교수: 기다리지 말고 계속 하세요.
예찬: 예, 어, 그러니까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게이분들이 물 좋은 곳을 찾아서 이 클럽 저 클럽 다니는 걸 ‘호핑’이라고 하더라고요.
민경: 잠시만요. 그게 꼭 게이들만 그러는 거예요?
예찬: 네?
민경: 그러니까 일반 클럽도 그런 사람들은 많잖아요.
예찬: 제가 알기로는 그런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 중에는 소수라고 알고 있어서요.
민경: 그게 무슨. 전 그게 자의적 판단 같아요.
예찬이 뭐라 말하려는데 교수가 손가락을 하나 펴 올리며 끼어든다.
교수: 지금 어쨌든 예찬 학생은 그 호핑 문화 때문에 게이 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 감염이 일반 클럽까지 전파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말하는 거 맞죠?
예찬: 아, 예, 맞습니다.
교수: 그리고 카더라 말고 그냥 주변 얘기를 해봐요 다들. 민경 씨는 클럽을 보통 여러 군데를 다녀요? 꼭 본인이 아니라면 주변 친구들을 보면 어때요?
민경: 입장료 무료인 홍대 클럽은 두세 곳 왔다 갔다 하는 친구들 많아요.
교수: 예찬 씨는요?
예찬: 저는 클럽 가면 여자친구한테 죽는데요?
민경: 왜 자꾸 교수한테 애교를 떨어?
사이.
민경: 죄송합니다. 음소거 버튼을 누른 줄 알고요.
교수: 마이크 겹치는 문제도 있으니까 음소거 꼭 누르고 대기해요. 그리고 우리는 기자가 아니고, 여기는 문화 비평 수업을 하는 공간이니까 이런 식으로 토론을 진행하면 안 되고. 말하는 내용보다는 말하는 방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춰 분석하는 게 우리 공부에 취집니다. 예찬 씨도 준비해 온 것 하세요.
예찬: 네, 시작하겠습니다. 그 이 문제에 대해서 좀 워낙 치명적인 질병이다 보니까 사실 이게 어디서 퍼졌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근데 이게 막 꼼꼼히 따지려고 하면 자칫 동성애자분들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낙인이론은 시카고학파에서 처음 제창한 분석적 관점인데요.
교수: 아니, 아니. 어떤 이론을 거칠게 인용하지 말고, 그냥 자기 얘기를 하시면 돼요.
예찬: 아, 네. 아무튼 저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동성애 혐오자로 몰아가는 것은 좀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교수: 민경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민경: 어, 그러니까.... 저 죄송한데요, 그런데 낙인 이론을 이 경우에도 쓸 수 있는 말인가요?
교수: 무슨 말이죠?
민경: 그니까 보통 낙인이론은 소수집단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이 경우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측의 권력이 훨씬 강하고요.
교수: 음 지금 보면, 한 쪽에선 낙인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 했고, 다른 한 쪽은 그 이론이 적용되기 어렵다며 권력차라는 근거를 들어서 반박했잖아요? 좋습니다.
민경: 그리고 낙인 하니까 저 그 성소수자들이 특히 문란한 성관계를 한다는 루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예찬: 저도 그 부분에 관해서 할 말 있어요.
교수: 민경 씨 먼저 이야기 하고, 다음에 예찬 학생.
민경: 제가 듣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말하는 방식이 꼭 코로나 이야기에서 시작했다가, 게이들은 클럽에 춤추는 목적으로 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뭐 이런 이야기로 흘러가더라고요. 그런데 애초에 코로나 전파에서 성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뿐더러,
예찬: (말 끊고) 말씀 중 죄송한데 성관계도 서로 타액이 섞이고, 또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벌어지는 일이니까,
민경: (말 끊고) 제 얘기 아직 안 끝났고요. 게다가 과연 게이들만 클럽에 원나잇 상대를 찾으려고 가는지도 의문입니다.
예찬: 그게 무슨 말이시죠?
민경: 보통 클럽도 그냥 춤만 추고 싶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성비만 봐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데. 남자가 여자보다 춤추는 걸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예찬 음소거 버튼을 누른다.
예찬: 이거 완전 메갈이네.
예찬 다시 음소거를 푼다.
예찬: 선배님 말씀 정말 잘 들었고요. 만약에 남자가 더 여자보다 성관계를 밝힌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면 그건 남혐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민경: 그건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그건 아마 원나잇을 할 때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랑도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수: 지금 얘기가 샜는데. 우선 민경 씨는 게이 클럽에서 만난 동성 간의 성관계에 관한 화두를 던졌고요. 이건 꼭 게이만 그런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예찬 학생은 반론 있나요?
예찬: 네, 교수님. 그 저는 카더라가 아니라 실제 성소수자 분들의 사례를 가지고 왔는데요.
교수: 계속하세요.
예찬: 이 분들의 말하기 방식에 따르면, 이 분들도 그런 성관계 관련된 업소에 가거나 하면 전염병에 쉽게 걸린다고 인정하고 있거든요. 이걸 가지고 성소수자 전체가 문란하다고 말하는 말하기 방식은 물론 문제가 있겠지만,
민경: (겹쳐서)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예찬: (겹쳐서) 죄송하지만 제 말 아직 안 끝났는데요.
교수: (겹쳐서) 조용. 민경 씨 음소거 하고 대기하세요.
민경 음소거 버튼을 누른다.
예찬: 네,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당사자분들도 인정한 부분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해 지적한다고 해서 동성애 혐오자로 매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경: 허.
예찬: 저 역시 굳이 따지자면 그분들을 존중하는 입장이고요.
민경: 지랄하고 있네.
예찬: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다만 서로에게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건강이나 동물 인권의 이유로 수간을 하지 않듯이,
민경: 수간까지 나왔다.
예찬: 아무튼 이 기회에 일부 몰지각한 성소수자 분들이 제대로 이번 사태에 책임을 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교수: 알겠습니다. 민경씨 여기에 대해 더 반론 할 것 있나요?
민경 음소거 버튼을 해지한다. 사이.
교수: 그러면 토론은 여기서 마치도록 합시다. 어떤 도덕률의 문제에서 반대의 입장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예찬 학생도 솔직하게 말해 준 점 고맙습니다. 물론, 당사자의 말을 재인용하는 것에도 서발턴과 관련된 논쟁적인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민경: 저 교수님 죄송한데요, 한 마디만 더 할게요.
교수: 하세요.
민경: 제가 바로 그 당사자인데요. 저는 저 문제를 절대 퀴어들이 뭐 반성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교수: 지금 민경 씨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것인가요?
민경: 딱 레즈비언은 아닌데요, 암튼 그렇습니다.
교수: 헌데 왜 지금요?
민경: 네?
교수: 지금 우리 수업 중에 가장 흥미로운 쟁점에 이른 것 같은데요. ‘나는 당사자니까 내 말이 맞다.’, 혹은,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슈는 성소수자만이 이야기하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화두들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한데?
사이.
교수: 의견 없나요?
민경: 저 죄송한데요. 저는 꼭 당사자 아닌 사람은 조용히 해라라고 말을 꺼낸 거 아닌데요.
교수: 그럼요?
민경: 애초에 이 수업 공간에 당사자가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면 이런 토론 자체가 시작인 안 됐을 것 같아서요.
교수: 지금 민경 씨 말은 수업이 폭력적이었단 이야기인가요?
민경: 그렇게까지는...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교수: 음, 애초에 이 토론 논지에 대해 잘 이해를 못 한 것 같은데요. 이 토론은 어떤 도덕률 하나를 무조건적으로 믿는다고 자기 입장을 천명하기 위한 토론이 아니에요. 아니, 음소거 하고 계세요. 토론식 수업도 결국 수업입니다. 토론의 과정 중에 교수자가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 판단하면 토론에 개입하거나 중단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논의로 돌아가서, 제가 보기엔 민경 씨는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민경 씨는 일종의 당사자주의를 주장하는 게 맞고요. 또 예찬이 같은 경우엔 물론 토론 준비가 미비한 점은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냈다는 점이 좋은 부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에 내재하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수업을 단순히 혐오 표현을 나열하는 폭력적 수업이었다고 평가해 버릴 수 있을까요? 민경 씨 혹시 정체성 정치 개념에 대해 공부해보셨나요?
사이.
민경: 아니오.
교수: 역시나. 다음 시간까지 정체성 정치의 한계에 대해 한 번 조사해와 보세요. 이미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한 학자들이 많거든요. 저는 뭐 어찌 되었건 이번 수업은 충분히 유익한 수업이었다 생각합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상 이렇게 온라인으로 만나게 됐지만, 한 주 성실하게 보내고 다음 주에 다들 다시 봬요.
예찬: (밖에다 대고 크게 소리치며)씨발, 정민경 레즈래.
사이.
예찬: 죄송합니다. 음소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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