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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Sep 06. 2020

<서울역 언니>

릴레이 희곡 쓰기*

오른쪽 인물, 지하철에서 내린 후


1. 등장인물

우엔    여.

하담    여.



2. 장소

서울역 앞 광장



3. 때

해가 지고 있는 저녁.



4. 이야기


우엔이 서울역 앞 광장에 서 있다. 비스듬한 노을이 서울역 광장을 비추고 있다.

우엔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조금 어눌한 발음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능숙한 한국어로 전화 통화를 한다.


우엔    여보세요? 네, 저 지금 서울역에 도착했어요. 지금 입구에 있어요. 옷이요? 저, 드레스 입고 있어요.


상대방이 말한다.


우엔    드, 드레스요. 웨딩드레스. 바로 나왔어요. 옷도 없어요.


상대방이 말한다.


우엔    네, 다 들고 나왔어요. 여권 있어요. 돈 없어요. 네 알겠어요.


우엔이 전화를 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우엔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드레스의 밑단은 바닥에 끌려서 더러워진 상태다  

잠시 후, 하담이 다가와 우엔에게 말을 건다. 하담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있다.


하담    (우엔을 툭 치며) 우엔?

우엔    네? 어, 언니?

하담    진짜 드레스 입었네요?

우엔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전화 한 언니 맞아요?

하담    네, 맞아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준다. 마스크를 내리며) 맞죠?

우엔    (하담의 신분증과 얼굴을 번갈아 확인한다) 권 하담. 맞네요.

하담    걱정 말아요. 나 맞으니까. 일단 자리를 옮길까요? 여긴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우엔    (경계한다) 사람, 없는 곳은 조금 무서워요. 너무 없지 않은 곳 좋아요. 사람 없는 곳 무서워요.

하담    알았어요. 그럼 저쪽으로만 옮겨요. 가서 앉아서 이야기해요.

우엔    네, 좋아요.


우엔과 하담이 서울역 광장을 걸어 한적한 곳으로 간다. 벤치에 앉는다.


우엔    나 괜찮아요?

하담    괜찮아요. 아마도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우엔    무서워요. 걱정돼요.

하담    이제 나 만났으니까 진정하고 천천히 다시 이야기 해줄래요?

우엔    음... 지난주에 한국 왔어요. 일하기로 했어요. 가이드가 공장 간다고 했어요. 공장 못 갔어요. 어제 공장 아니고 결혼하는 거라고 했어요.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싫다고 했더니 결혼 안 한다고 했어요. 공장 간다고 했어요 다시. 그래서 공장 가는 줄 알았는데 오늘 옷 입으라 했어요. 이거 입혔어요. 이거 말고 다른 옷은 안 줬어요. 드레스 입었어요. 사진만 찍는다고 했어요. 나는 싫다고 했어요. 그리고 나와서 전화했어요.

하담    (우엔의 배를 보며) 아... 그럼. 몸은 괜찮은 거예요?

우엔    몸이요? 괜찮아요. 건강해요. 조금 피곤한게 다예요.

하담    그렇구나. 다, 다행이에요.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우엔    친한 언니가 줬어요. 먼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어요. 언니라고 했어요. 이름은,

하담    이름은 말 안 해줘도 돼요.

우엔    언니 고마워요.

하담    아 저요? 제가 언니예요?

우엔    우리 사람들 도와주는 언니라고 했어요.

하담    (웃는다) 그래요. 편한 대로 불러요. 언니 해요. 언니 할게요.

우엔    네, 언니.


하담이 우엔을 다시 살펴본다.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우엔에게 건네준다.


하담    옷부터 구해야겠다. 춥지 않아요?

우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하담    흠, (생각한다) 우선 걱정하지 말아요. 여권 있다고 했죠?

우엔    네, 있어요. (드레스 가슴속에서 여권을 꺼낸다) 여기 넣어뒀어요.

하담    다행이에요. (우엔의 여권을 펼쳐본다) 응우엔 띠 또 우엔? 이렇게 읽는 거 맞아요?

우엔    네, 우엔이라고 부르면 돼요.

하담    우엔씨. 다행이에요 정말. 여권 있으니까 일단 맘이 놓이네요.

우엔    가이드가 여권 달라고 했는데 안 줬어요. 나중에 준다고 하고 여기 넣어뒀어요.

하담    잘했어요. 여권 있으면 일단은 안심이에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 줄게요.

우엔    집이요? 베트남? 안 돼요. 갈 수 없어요. 돈 벌어야 해요. 돈 벌어서 집에 보내주기로 했어요.

하담    음, 그렇구나. 그런데 그건...

우엔    약속했어요. 엄마랑 동생한테 약속하고 왔어요. 결혼은 아니에요. 나 결혼 싫어요. 돈 벌어야 해요. 나 공장 가고 싶어요. 일 하고 싶어요. 가이드에게 돈 많이 줬어요.

하담    그랬구나. 그래요. 그러면...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저도 좀 난감하네요.

우엔    난감? 난 감해요? 감?

하담    아니,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생각 좀 해 볼게요.

우엔    네, 언니. 좋아요.


두 사람 잠시 멍해진다. 말이 없다. 주변의 소음이 들린다.

잠시 후.


하담    음,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외국인 노동자 아니 외국인 미혼모를 위한 시설에 있어요. 미혼모 알아요?

우엔    미혼모? 뭐예요?

하담    결혼 안 했는데 아이가 있는 여자들. 남편 없이 엄마가 된 여자들이요.

우엔    아. 알겠어요. (잠시) 많아요?

하담    뭐가요?

우엔    결혼 안 했는데 엄마가 된 외국인들이요.

하담    (생각한다) 조금 있어요. 조금.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에요. 우엔 씨한테 제 전화번호 준 언니도 그런 언니 아니에요?

우엔    (생각한다) 그런데 그 언니는 남편 있어요. 그런데 싫어한다고 말했어요. 그 언니가 알려줬어요. 서울역으로 가야 한다고. 서울역 가기 전엔 깜깜해진다고. 그리고 금방 밝아진다고 얘기해줬어요. 밝아진다고 했어요.

하담    그랬구나. 아무튼 저는 그런 분들을 돕는 곳에서 일해요 저는.

우엔    그럼 나는 못 도와줘요?

하담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아니에요 도울 수 있어요. 도와줄게요. 그런데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요.

우엔    나도 그래요. 잘 모르겠어요. 처음이에요.

하담    그러게요.


잠시


우엔    갑자기라서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언니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부탁합니다.

하담    네. 알겠어요 방법을... 방법을 생각... 아니 그런데

우엔    네?

하담    한국어 왜 이렇게 잘해요?

우엔    대학교에서 전공했어요. 한국어.

하담    그랬구나. 그래서 이렇게 잘하는구나.

우엔    네. 잘해요. 그러니까 가이드가 이상한 말 하는 거 눈치챘어야 하는데. 제가 늦었어요. 제가 멍청이예요.

하담    아니에요. 탓하지 말아요. 우엔은 잘못 없어요. 가이드가 나쁜 사람이에요. 자책하지 말아요. 사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어쩜 이렇게들 창의적으로 못뗀짓을 해 대는지. 나쁜 새끼들.

우엔    나쁜 새끼?

하담    욕이에요. 나쁜 말. 배우지 말아요.

우엔    (유창하게) 나쁜 새끼. 개새끼. 썅놈의 새끼. 뒤졌으면 좋겠다.

하담    (놀란다) 와. 잘한다.

우엔    전공이에요.


잠시 두 사람 말이 없다.

해가 넘어간 서울역 광장은 어둑어둑하다.


우엔    밝아진다고 했는데.

하담    네?

우엔    아니에요.


우엔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하담    (우엔을 보며) 뭐 좋아해요?

우엔    (놀라며) 다 좋아해요. 그런데 오늘은 피자가 먹고 싶었어요. 빵이나.

하담    피자나 빵이요? 의외네요.

우엔    피자 냄새, 빵 냄새 너무 많이 맡아서.

하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러면 일단 우리 집으로 갈래요?

우엔    언니 집이요? 괜찮아요?

하담    네. 룸메이트가 있긴 한데 이해해 줄 거예요. 좀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사실은 착한 친구랑 같이 살거든요. 고스족 알아요? 고스족? 온통 까만색 옷 입고 까맣게 화장하고 그런? 제 룸메이트가 그런 애예요. 재밌는 친구 있어요.

우엔    고스족? 언니?

하담    아, 걔는 언니 아니고 동생! 뭐 상관없죠. 일단 우리 집으로 가요. 가서 피자든 빵이든 먹으면서 생각해 봐요.

우엔    네.


우엔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밑단이 더러워진 웨딩드레스 위에 겉옷을 겹쳐 입은 묘한 모습이다.

그런 우엔을 하담이 잠시 바라본다.


하담    택시, 타는 게 좋겠다.

우엔    택시 좋아요. 지하철 너무 부끄러웠어요.

하담    그래요. 택시 타요. 따라와요.


하담이 손을 내민다. 내민 하담의 손을 우엔이 잡는다.

두 사람이 택시 승강장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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