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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Sep 13. 2020

<성불하소서 신디보살님>

*9월의 릴레이 희곡 쓰기 - 첫 번째 이야기. 

공통주제 Cyndi Lauper <Girls just want to have fun>

https://www.youtube.com/watch?v=PIb6AZdTr-A&list=RDPIb6AZdTr-A&start_radio=1&t=29





1. 등장인물

영운 스님    비구니 사찰 백지사의 주지스님. 

상욱 스님    선우 행자의 은사스님. 가슴에 '묵언'이라 쓰인 명찰을 달고 있다.

선우 행자    21살. 백지사의 행자. 



2. 장소

경상북도 팔공산 깊은 산속에 위치한 백지사.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으로 1년에 두 번만 민간에 공개되는 절이다.  



3. 때

5월 1일. 부처님 오신 날 다음 날. 

오전 아침 공양을 드리고 난 후



4. 이야기

- 백지사의 마당


영운 스님    그래서, 상욱 스님. 내가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상욱 스님    (말이 없다)

영운 스님    (선우 스님을 본다) 선우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고?

선우 행자    (말투에 애교가 많다) 스님, 제가 어제 너무 늦게 잠이 들어서요,

영운 스님    무슨 번뇌가 그리 많아가 밤에 잠을 못 잤노?

선우 행자    (웃으며) 몸이 조금 안 좋기도 하거든요. 제가 생리할 때가 되면 잠이 많아져서,

영운 스님    상욱 스님. 이게 말이 됩니까?

상욱 스님    (말이 없다) 

영운 스님    선우 니 어제 뭐 했노? 

선우 행자    어제... 손님 받느라 바빴지요.

영운 스님    공양간에 있었제?

선우 행자    네, 하루 종일 밥했어요.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영운 스님    어제 공양간 스님이 그카던데, 공양간에 신발 신고 돌아댕깃다 하던데?

선우 행자    아...네. 그래서 혼났어요. 저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잠깐 그런 거예요. 

영운 스님    상욱 스님! 공양간에 신발 신습니까 안 신습니까?

상욱 스님    (고개를 가로젓는다)

영운 스님    선우야. 조왕신 모시는 부뚜막에 누가 신발 신고 올라가노? 니 여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거 신발 신고 올라가는 사람 봤나? 어?

선우 행자    저는... (애교 있는 말투로 웃으며) 아무도 없으시길래 잠깐 진짜 빨리 올라갔다가,

영운 스님    아무도 없으면 그래도 되나! 니가 그래가 수행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나! 아무도 없는 데서도 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지. 아무도 없으면 니 마음대로 하고 살아가 될 일이가! 아무도 없긴 왜 없어! 도처에 부처님인데 니는 니 눈으로 보이는 게 다가! 내가 니 그래 가르칬나!

선우 행자    잘못했어요. 그런데 스님 그게,

영운 스님    시끄럽다 마! 니 어제 초파일에 사람들 많이 오고 하니까 가슴이 울렁거리드나? 사람들이 웃어주고 말 걸어주고 하니까 혼이 나갔제? 니 중되라꼬 누가 등 떠밀었나? 니가 왔제? 아이가?

선우 행자    맞아요. 

영운 스님    니가 울고 불고 하면서 왔제? 느그 아부지 대성통곡하면서 니 보내 달라 칼 때 내가 니 숨카주면서 여 있어도 된다 했제? 맞나 아이가?

선우 행자    맞습니다.

영운 스님    니 그때 내한테 뭐라 했노? 니를 찾고 싶다 안 했나? 수행하겠다 안 했나? 이게 지금 수행하는 거가? 이래 갖고 니를 찾을 수나 있겠나?

선우 행자    ... 스님, 그런데,


선우 행자가 말하려 하면 상욱 스님이 선우의 팔을 빠르게 잡는다. 고개를 얕게 젓는다.

이 모습을 영운 스님이 지켜본다. 


영운 스님    상욱 스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양간 조왕신 무서운지 모르고 신을 신고 올라다니지를 않나, 뭐가 그래 신나는지 초파일에 온 도량을 뛰 댕기면서 웃고 인사하고 떠들고 말하고. (선우 행자에게) 내 니 사람 좋아하는 거 뭐라 안 한다. 사람 좋아해야지. 정 주고 잘 살피주야지. 근데 니는 그 이유가 니 좋을라고 하는 것 같아서 내가 말하는 기다. 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니가 좋아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동네 똥개 마냥 꼬리 흔들면서 이래 저래 뛰 댕기는 게 그게 수행자가 할 짓 맞나? 어? 그라고 다음날 새벽에 일나지도 못해서 참선을 못해? 니가 여기 있을 이유가 뭐고? 템플스테이 왔나 니? 여기 힐링하러 왔냐 이 말이다. 

선우 행자    템플스테이 아니에요 스님...

영운 스님    선우야. 니가 여서 할 일은 공부하는 일 밖에 없다. 그거? 쉬운 일 아이다. 니는 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같다. 공부하는 거 그기 제일 어려운 일이다. 알겠나?

선우 행자    네...

영운 스님    상욱 스님. 오늘부터 선우 데리고 자세요. 


상욱 스님이 놀라 고개를 든다. 


영운 스님    선우 니는, 오늘부터 상욱 스님이랑 같이 자라. 니 방에 짐 싸서 스님 방으로 옮겨라. 상욱 스님, 선우 짐 같이 보면서 쓸데없는 거 다 싹 치우세요. 아니 내한테 갖고 오세요. 책이고 뭐고 다. 도대체 그 방에서 무슨 사념들이 만들어지는지 좀 봐야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선우 행자    (놀란다) 스님, 그건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의 팔을 눌러 내리며 영운 스님에게 합장하고 절한다. 

선우 행자도 이어서 따라 한다. 

영운 스님이 나간다. 영운 스님이 나갈 때까지 상욱과 선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선우 행자의 기거처 


이부자리와 앉은뱅이책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선우 행자가 방에 들어가 주저앉는다. 

상욱 스님이 따라 앉는다. 


선우 행자    스님. 큰스님 진짜 너무 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를 바라본다. 


선우 행자    똥개라니. 어제 제가 똥개 같았나요? 저 어제 그렇게 보였어요? 제가 아직 부족한 건 알겠는데 왜 큰스님은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늘 그렇게 아프게 말씀하신단 말이에요.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 그냥 깔끔하게 혼내시고 벌주시면 되지 왜 이렇게 마음 아픈 말만 골라서 하시는지. 진짜 그런 쪽으론 부처님이라니까요.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를 바라본다. 


선우 행자    아니지, 큰스님도 오늘 저한테 화내셔서 업을 쌓으신 거 아니에요? 공부 더 하셔야겠어 진짜. 제가 완벽하면 바로 부처됐지 지금 이러고 행자하고 있겠냐고요. 부족하니까 배우러 온 건데, 수행하러 온 건데. 왜 맨날 그렇게 뭐 하나 눈에 보이면 크게 혼내시고. 아니면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시고. 스님, 지난번에 제가 저녁 예불드리다가 혼난 적 있었잖아요. 그때 왜 천수경 못 외워서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우 행자    그때 진짜 저 오줌 쌀 뻔했거든요? 아니, 잘못했으면 너 잘못했다. 벌 받아라. 하시면 되지 왜 선우! 이렇게 이름만 계속 부르시냐고요. 선우! 선우! 선우! 대답해도 아무 말 없고 이름만 계속 부르시고. 그러고 다음날까지 제가 인사드려도 못 본채 하시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큰스님 진짜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왜 항상 저한테만,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의 손을 잡는다. 

선우 행자가 말하려다 상욱 스님의 손을 본다. 

선우 행자가 상욱 스님과 눈이 마주친다. 

상욱 스님이 얕게 웃는다. 


선우 행자    알았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래요. 공부 더할게요. 감사해요 스님.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의 앉은뱅이책상에 손을 올린다. 가볍게 툭툭 책상을 친다.  


선우 행자    아, 짐은 뭐 없어요. 행자복이랑 이거 겨울 조끼랑 


선우 행자가 몇 안 되는 옷가지를 챙기러 일어난다. 상욱 스님은 책상을 살핀다. 

그 사이 선우 행자가 책상 앞으로 와 살핀다. 


선우 행자    요거 책들이랑 달력 하나랑 노트랑...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의 책상 아래에서 조그만 박스를 찾아낸다. 


선우 행자    (놀라며) 아, 그거는요. 


선우 행자가 말하는 사이 상욱 스님이 박스를 연다. 


선우 행자    안돼요!(박스를 뺏으려 하다가 실패한다)


상자 속에는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다. 

상욱 스님이 사진 한 장을 들어 올린다. 선우 행자의 가족사진이다. 선우 행자를 본다. 


선우 행자    그건... 스님 그건요. 제가 버리려고 했는데요. 까먹고 있었어요. 버릴게요. 버려요!


상욱 스님이 박스에서 신용카드 크기의 종이를 한 장 꺼낸다. 

BTS의 포토카드다. 선우 행자를 본다. 


선우 행자    스님! 그건 제 것이 아니고요. 어제 초파일에 오신 보살님이 두고 가셨더라고요. 제가 다음에 돌려드리려고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잃어버리신 거니까 속상하실까 봐, 그래서 제가!


상욱 스님이 이번엔 시디플레이어를 꺼낸다. 이어폰이 길게 늘어진다. 

이어서 박스 안에서 건전지 뭉치가 나온다. 한 손에는 시디플레이어, 다른 손에는 건전지를 든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를 바라본다. 


선우 행자    스님... 


상욱 스님이 두 손에 힘을 줘서 선우 행자 쪽으로 내민다. 


선우 행자    사실은... 어제 오셨던 처사님이랑 잠깐 이야기했는데요. 음악 좋아한다고 신나는 음악 좋아한다고 했었거든요. 가시기 전에 주머니 하나 주시길래 시주하신 건 줄 알고 받았는데 열어보니까 이게 있고 안에 시디도 있고... 아, 어차피 건전지 떨어지면 못 듣는 거니까요. 있는 건전지만 다 닳으면 버리려고...


상욱 스님이 박스에 모든 것을 다시 담는다. 


선우 행자    스님, 스님! 큰 스님께 말씀하실 건 아니죠? 제가 버릴게요. 제가 버리겠습니다. 저 주세요.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를 바라본다. 


선우 행자    스님...


상욱 스님이 박스를 정리해서 뚜껑을 닫으려다 멈춘다. 

상자 속에서 사진을 꺼내어 선우 행자에게 준다. 


선우 행자    (어리둥절하다) 저 주시는 거예요?


상욱 스님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선우 행자    ... 제가 버리라고요.


상욱 스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선우 행자    네... (잠시) 태울게요. (잠시) 같이 가 주실래요?


상욱 스님이 끄덕인다. 



- 부엌


선우 행자가 보자기에 싼 짐을 들고 있다. 

상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궁이에 남은 불이 뜨겁다. 선우 행자는 불을 보고 있다. 상욱 스님은 그 뒤에 서 있다. 

선우 행자가 뒤 돌아 상욱 스님을 본다. 


선우 행자    사진은 금방 타버리네요. 오늘도 불이 좋네요. 


상욱 스님이 웃는다. 선우 행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선우 행자    노래, 한 번만 더 들어볼걸 그랬어요. 상욱 스님 들려드릴 걸. 


상욱 스님이 눈썹을 들어 올린다. 


선우 행자    그게, 요즘 노래가 아니었어요. 옛날 노래더라고요. 처사님이 차에 있던걸 주셨나 봐요. 옛날 외국 노래였어요. BTS였어도 좋았을 텐데.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인다. 


선우 행자    알아요. 이제 필요 없어요. 사실 들을 만큼 들었어요. 어젯밤에 많이 들었어요. 걸 져써 워나 햅 펀 오우워 져써 워너 햅 펀. 워너 햅뻔. 워너 햅뻔


상욱 스님이 놀란다. 


선우 행자    이 노래였어요. 워너햅뻔, 워너햅뻔 이런다니까요. 근데 노래가 너무 신나서 이불속에서 참느라 혼났어요. 워너 햅뻔.


상욱 스님이 선우 행자의 옆에 앉는다 함께 불을 본다. 



- 영운 스님의 기거처


방안에 영운 스님이 정좌하고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옆에 놓여 있던 선우 행자의 박스를 열고 시디플레이어를 꺼낸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시디플레이어 속 시디가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Cyndi Lauper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 이 흘러나온다. 

영운 스님이 가만히 음악을 듣는다. 

영운 스님이 미세하게 리듬을 탄다. 점점 흥이 나고. 몸이 움직인다. 

영운 스님의 움직임이 점점 춤으로 변해간다. 잘 추는 춤이다. 

춤이 점점 더 격렬해지려는 순간 영운 스님이 춤을 멈춘다. 

주위를 살피고 시디플레이어를 끈다. 

다시 박스에 넣어 정리하고 테이블 아래로 박스를 내린다. 

영운 스님이 정좌하고 가쁜 숨을 정리한다. 

영운 스님이 차를 한 모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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