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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Mar 06. 2020

<너의 발자국>

아주 짧은 희곡 - 눈에 대한

1. 등장인물

나 : 36세 여자. 6개월된 고양이 한마리와 혼자 살고 있다.

유키 : 6개월된 고양이

제이 : 19살 늙은 고양이


2. 장소 

나의 집, 혼자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방 하나, 거실 하나의 집. 화이트 톤에 목재 가구들로 채워진다.

한 쪽에 커튼이 쳐진 창문이 있다.  


3. 때

눈이 오던 겨울


4. 이야기


해가 지는 저녁 급하게 '나'가 집으로 들어온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잘 있었어?


유키가 침대 이불 속에서 움찔한다.


    일어나. 미안해. 이렇게 늦을 줄 몰랐어. 밥은 먹었어?


유키의 밥그릇을 살펴보지만 밥이 여전히 남아 있다.


    왜 다 안 먹었어. 배 안 고파?


침대를 바라보지만 유키는 답이 없다.

나는 조금 불안한 표정이된다.


    유키?


나가 급하게 침대로 달려가며


    유키! 일어나! 왜 그래? 괜찮은거지?


나가 급하게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걷어낸다.


유키    (자다가 깜짝 놀라서 깬다) 어? 어! 언니! 언니 왔네! 언니왔어. 왜 이제 왔어. 나 너무 심심했단 말이야. 하루종일 너무 졸려서 나 계속 잠만잤는데 안 자려고 했는데도 언니가 너무 안 와서 심심해서 잠이 와서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언니가 안 오는거야. 밥을 조금 먹었는데도 언니가 안 오고 쥐돌이랑 놀았는데도 언니가 너무 안 와서 내가 쥐돌이를 숨겨 놓으면 언니가 올 줄 알고 여기저기 막 숨겼는데도 언니가 안와서 너무 무서웠는데 근데 졸린거야 그래서 내가 따뜻한 곳으로 가려다가 소파가 좋아보여서 거기서 또 잠깐 잠들었는데 언니가 그래도 안 와서 눈 뜨니까 언니가 없어서 언니 냄새 맡으려고 언니 자는 곳 에 가서 누웠는데 언니 냄새가 나서 그 냄새에 내가 잠이 또 막 오는거야 그래서...


유키는 나에게 온 몸을 기대고 계속해서 품 속으로 파고들며 말한다. 나가 유키를 꼬옥 껴 안는다.


    그랬구나. 유키 언니 기다렸구나. (유키를 쓰다듬는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오늘 차가 막혔어. 밥은 왜 안 먹었어. 걱정 했잖아. 미안해 언니가 다 미안해.

유키    오늘 잘 지냈어? 맛있는거 잡아 왔어? 나 없이 뭐 했어? 나는 심심했어.

   알았어. 그래. 그래. (유키 얼굴을 두 손으로 잡는다) 그래서? 오늘도 잠만 잤네?

유키    (얼굴이 잡힌채로) 언니 불편해 놔 주라

    그래도 언니가 오면 바로 달려 나와서 인사 해줘야지.

유키    (여전히 얼굴이 잡힌채로) 내가 오늘은 빨강색 캔이 먹고 싶은데 그거 주라.

    다른 집 고양이들 보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그러던데 임마, 너는 자고 있었다 이거야? 언니 놀라게?

유키    (팔을 휘적거리며) 놔 주라, 놔 주라아

    알았어, 미안해. 놔 줄게 (유키를 잡았던 손을 놔 준다)


나는 부엌 쪽으로 가서 빨강색 캔을 꺼내 딴다. 유키의 밥그릇을 비우고 캔을 담아 준다.


유키    빨강색~ 빨강색~ 맛있는 빨강~

    천천히 먹어. 또 허버허버 먹다가 토할라고. 천천히 먹어.

유키    (먹으며) 빨강색~ 빨강색~

    물도 좀 마시고

유키    (먹으며) 빨강색~ 빨강색~


나가 유키를 지켜보는 동안 반대편에 제이가 등장한다. 밥 그릇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제이를 바라보고 잠시 기다리다, 말을 건다.


제이    안 먹어

    왜 안 먹어. 밥 좀 먹어.

제이    바보. 안 먹어. 먹기 싫어. 이제 안 먹어.

    그러지 말고 조금만 먹어봐. 왜 너무 물을 많이 넣었어? 그래서 싫어?

제이    바보. 이제 부터 안 먹어. 안 먹을 거야. 그래야 해.

    왜 그래. 누나가 화장실도 치우고 니 방도 치우고 캣잎도 여기 조금 뿌렸어 얼른 먹어.

제이     바보

    조금만 먹어봐.

제이    바보. 바보 인간.


제이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왜 안 먹어. 제이야. 먹어야지. 먹어야 된단 말이야.

유키    다 먹었다! 야! 언니! 나 다 먹었다. 잘했지? 잘했지? 사실 조금 더 먹을 수 있는데 참을게 더 달라고 해도 안 줄거지? 다 알거든? 알았어 그럼 나 물 먹는다 물 먹을거야. 나 봐. 언니. 나 보라니까. (나를 당기며) 봐봐. 나 물먹는다? (물을 마신다) 잘 먹지? 나 물! 물먹어~ 나 물먹어~

    (유키를 바라보며) 잘 마시네 우리 유키 잘 마시네.

유키    언니, 나 다 먹었다. 다 먹었어. 이제 방에 가자. 푹신한 곳으로 가자! 가서 내가 숨겨둔 쥐돌이 찾아줘 얼른, 찾아봐 내가 잘 숨겨 뒀단 말이야. 빨리 찾아봐. (나를 당긴다)

    그래, 알았어 들어가자. 뭐 하고 놀까? 쥐돌이 다 어디갔어? 어디 숨겼어 우리 유키?

유키    (웃으며 겅중겅중 뛴다) 헤헤헤헤! 내가 꽁꽁 숨겼지! 언니가 찾아야 해. 언니가 다 찾아야 해!


유키가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언니, 금방 갈게! 너무 뛰지마! 책상위에 올라가면 안 된다!


나는 밥그릇을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본다.


    눈 오네?


창밖, 까만 밤 하늘에 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잠시

유키가 얼굴에 두루말이 휴지를 감은채 뛰어 나온다.


유키    언니 언니! 이것봐 내가 하얀거 풀었지. 이거 근데 왜 안 풀려... 어?


유키가 창밖을 본다.


유키    저게 뭐야? 뭐가 떨어지네?

    처음 보지? 저게 눈이라는 거야.

유키    오늘 졸렸는데. 그래서 물이 가득한 날인가? 했는데 그래서 졸렸는데. 아니네. 이게 뭐야?

    신기하지? 눈이 오는거야. 비 아니고 눈이 오는거야.


나가 창문을 열어 준다. 유키가 조금 놀란다.


유키    으, 추워.

    춥지? 구경만 해. 눈이라는 거야. 이게.

유키    추운날. 하얀게 떨어져.

    예쁘지?

유키    와아


잠시 눈을 바라본다. 창문 아래로 제이가 와서 앉는다.


제이    문 닫아. 추워

    왜 눈 예쁘잖아. 왜 그래 구경하자.

제이    춥잖아. 춥다구.

    왜에? 잠시만.

제이    바보. 바보인간.

    오늘 따라 말이 많네. 왜 안 자고 자꾸 잔소리야.

제이    바보. 추운데. 어쩌려고 저래. 문 닫아.

    제이야.

제이    왜.

    눈 구경 하러 나갈래?

제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한다.

    너 어렸을때 눈 오면 나랑 구경 갔었는데. 내가 너 점퍼 안에 껴 안고 나갔었던거 기억해?

제이    감기 걸린다고, 너 침대에서 안 나오고 자꾸 자려고 그래? 문 닫으라고.

    조용히 좀 해 늦은 밤에 그러면 옆집에서 뭐라 그런다고.

제이    이 바보 인간.

    이리로 와 봐 잠깐만 봐.

제이    그게 그렇게 좋아?

    (창밖을 보며) 이렇게 가만히 눈 쌓이는 걸 보고 있으면. 맘이 편안해 진다고.


잠시


제이    그렇게 꼭. 눈이 오면 그렇게 보는구나 인간. 그렇게 한참을 보는구나.

    눈이 자꾸 쌓여. 조용하게. 너무 좋다.

유키    너무 신기해.


제이가 아주 불편한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좋아?

유키    너무 신기해. 언니, 저 위에서 계속 떨어져. 신기해. 아무 냄새도 안 나. 신기해.

    그래도 여기서만 봐야해. 밖으로 나가면 큰일난다?

유키    그런데...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몸에 감긴 두루말이 휴지를 인지한다) 엇! 아! 이거! 이거! (창 문 앞에서 빠르게 뛰며 손을 휘적거린다) 이게 자꾸 날 따라와! 내가 조금만 물었는데 막 따라와! (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오지마! 저리가! 하얀색! 저리가!

    잠시도 쉬지를 않는구나.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계속해서 눈이 온다. 유키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며 뛰어 다닌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창 밖을 본다. 어느새 창문 밖은 온통 하얗게 변한다.


   제이야. 눈 와. 눈이 와. 네가 무지개 다리 건너간 후에 오는 첫 눈이야. 이상하게 너는 눈이 오는 날이면    한참을 울고 그러더라. 유키는 안 그래. 그냥 정신 없어.


유키가 또 한번 공간을 뛰어 지나간다.


   보고싶네. 우리 제이.


유키가 한 쪽 다리에 휴지 상자를 끼운채 엉거추춤 뛰어 들어온다.


유키    언니! 살려줘! 이게 나 물었어! 야, 물지마! 물지 말라고! 언니. 나 살려줘!

   (유키를 보고) 알았어. 아유 다 부셔라 부셔. 이리와 언니가 풀어줄게.

유키    (방으로 뛰어들어가며) 언니, 쥐돌이 찾아서 얘 줘 나 대신 쥐돌이 먹여! 나 아픈것 같아. 물렸어!

    유키야! 그러면 안 돼. 이리와.


유키와 나는 방으로 들어간다.

열린 창문 밖으로 눈이 내린다.

한 참을 내리는 눈 위로 고양이 발자국이 하나씩 찍힌다. 조용하고 느리게 발자국이 찍힌다.

어느새 한 줄로 이어진 발자국이 남는다.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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