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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Sep 03. 2021

초경을 했다. 근데, 왜 하필...

1p. 12살의 박주영

1996년 09월 12일 

부산은 흐렸는데 에버랜드 있는 동네 와서는 밤이라서 날씨 모름. 



오늘, 아까 휴게소에서 생리를 했다. 버스에 앉아 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가랑이 사이가 축축한 기분이 들었고 뭐고? 싶었는데 휴게소에 도착해서 강효림이랑 같이 화장실 가서 팬티를 벗어보니까 피가 묻어 있었다. 약간 우리나라 지도 모양으로 돼 있었다. 내가. 초경을 했다. 


학교에서 수업도 했고, 엄마도 말씀해 주셔서 알고는 있었는데, 이게 오늘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수학여행 가는 길에 휴게실 화장실에서 초경이라니. 대단하다 진짜. 

화장실 안에서 강효림한테 내 생리하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생리대 사 와서 화장실 위로 던져 줬다. 어떻게 붙이는 건지 아냐고 물어봐 줬는데 조금 놀랬다. 인마 이거 그냥 얼라인줄 알았는데 지는 벌써 두 번이나 생리해봤다고 했다. 내가 키도 더 크고 달리기도 빠른데 생리는 강효림이 더 먼저 시작했더라. 아무튼 설명해 줘서 잘하고 나왔다. 나왔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통감자 못 샀다. 김은근 꺼 좀 뺏아 먹었다. 선생님한테 말해야 되나 고민했는데 강효림이 담임선생님은 남자니까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남자면 생리 잘 모를 거라고. 그래서 그냥 말 안 했다. 


옷은 교복 입고 있어서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모르겠더라. 치마 안에 쫄바지 입고 있어서 티도 안 나긴 했다. 그냥 바지로 갈아입을라고 하다가. 가방이 버스에 있어서 남자애들도 있어서 그냥 좀 그랬다. 그냥 입고 있다가 숙소 방에 오자마자 씻고 갈아입었다. 내일부터는 사복 입어도 되니까 상관없다.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엄마가 그게 초경이라고 했다. 처음 하는 생리를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생리대 확인하라고 했고 잘 때는 생리대를 두 개 길게 붙이고 바른 자세로 누워서 자라고 했다. 근데 나는 엎드려서 자고 싶은데. 

이제 나도 여자가 되는 것 같다. 기분이 조금 좋았다. 아까 저녁 먹고 와서 여자애들 한테 이야기했는데 생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애들이 많았다. 애들 같다. 선생님이 이야기해줬는데. 혹시나 생리 시작하면 내한테 먼저 말하라고 했다. 내가 가르쳐 주기로 했다. 강효림처럼. 그리고 책도 있으니까 사서 보라고 했다. 생리 안 한 애들한테 내가 먼저 생리했으니까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장난친 건데 김지원이 약간 기분 나빠하더라. 웃기네 장난친 건데. 다른 애들은 다 언제 초경할 건지 궁금했다. 내가 좀 일찍 한 것 같은데 빨라서 기분 좋다. 

맞다! 책에서 봤는데 이제 위생 주머니라고 조그만 가방 만들어서 들고 다녀야 한다. 여자들은 생리를 시작하면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서 휴지랑, 손수건, 생리대 같은 것들을 넣어 다녀야 한다고 했다. 부산 가면 엄마한테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엄마 퀼트 하시는 천 중에 예쁜 걸로 골라서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근데 그건 좀 안 좋았다. 아까 숙소 도착해서 남자 건물 여자 건물 나눠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다 같이 노는데 말뚝 박기 하는데 나는 못했다. 처음에는 그냥 뛰었고 그다음에 수비해야 돼서 엉덩이 대고 머리 박았는데 뒤에서 보면 생리대 티 날까 봐 못하겠더라. 내가 안 해서 우리 팀 진 것 같다. 내가 해야 이기는데. 그래서 여자애들이랑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 그런지 벌레 같은 거에 물렸다. 박성렬이 내한테 왜 말뚝 박기 안 하냐고 물어봤는데 그냥이라고 꺼지라고 했다. 여자같이 앉아 있지 말고 오라고 했는데 내 여자 맞다고 했더니 막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쫓아가서 등짝 때렸는데 조폭마누라라고 하면서 또 도망갔다. 남자 맞네! 이라면서. 뭐라하노. 내 여잔데. 진짜 유치하다 남자애들. 근데 생리대 차고 뛰면 좀 기분이 안 좋다.


내일은 에버랜드 가는 날인데 청룡열차 같은 거 타면 몸이 뒤집어지는데 타도 되는지 모르겠다. 강효림하고 이야기해 봐야겠다. 아무튼 이렇게 어른이 되는 갑다. 엄마가 집 오면 파티해주신다고 했는데 오빠야는 몰랐으면 좋겠다. 이제 누웠다. 엄마가 수건 하나 엉덩이 밑에 깔고 자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기분이 좋으면서 찝찝하기도 하고. 남자애들 방에서 다 같이 귀신 이야기한다는데 나는 안 갈 거다. 아까 버스에서 김성권이가 술 갖고 왔다고 했는데 진짠지 모르겠다. 미친놈 같다. 강효림은 그 방에 간다 그랬는데 나는 됐다. 잠도 오고 유치하다. 나는 잘 거다. 일기 끝.



본 프로젝트는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추진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1년 아동·청소년 대상 예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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