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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Oct 01. 2021

<나 그런 여자 아니야>

다락방의 미친 여자 

등장인물

다정 : 40대 중반 여자. 혼자 살고 있다. 

석준 : 40대 중 후반 남자. 다정과 함께 일 하게 된 프리랜서. 

혜원 : 30대 초반 여자. 다정이 꾸린 프로젝트의 막내. 

동식 : 30대 초반 남자. 혜원의 동료. 


밤 10시 전 후


다정의 회사 근처 술집과 거리. 다정의 집. 



1. 바


다정 : (눈물을 닦으며) 그래서 사실 나는 아직 사람들 만나는 게 늘 무서워. 나이만 먹었지 아직 애야 나는. 

혜원 : 아, 그러시구나. 


잠시, 모두 말이 없다. 


동식 : 선배는 그러면 지금 혼자 사시는 거예요?

다정 : 그렇지. 혼자 살지. 아니다, 딸이랑 살아. 

혜원 : 딸이요? 

다정 : 응, 사진 보여줄까?

혜원 : 네? 


다정이 빠르게 휴대폰 대기 화면을 들이댄다.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다정 : 이 지지배가 내 딸이야. 어찌나 까탈스러운지 맞춰드리기 힘들어 우리 딸. 이쁘지?

동식 : (어색하게 웃으며) 그러시구나.


잠시, 모두 말이 없다. 


다정 : 동식, 동식은 여자 친구 있어?

혜원 : 아, 동식이는 뭐 그냥

동식 : 저는 남자 친구 있어요. 

다정 : (잠시, 얼굴이 붉어진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맞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좋겠다. 남자 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잠시) 잘해줘?

동식 : 네, 뭐 그렇죠. 귀여워요. 

다정 : 그렇구나, 귀여운 사람 좋지. 나도 좋아해 귀여운 사람. 


술이 많이 취한 석준이 휘청이며 들어온다. 


석준 : 뭐가? 뭐가 귀여운데?

다정 :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애인이랑 통화한 거야?

석준 : 그런 거 아니고 (웃는다)

다정 : 뭐가 귀엽다는 게 아니고, 귀여운 사람이 좋다고. 

석준 : 귀여운 거 좋지. 귀여운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정 : 오빠도 귀엽다?


동식과 다정 서로 눈이 마주친다. 석준은 조금 놀란다. 

모두 말이 없다. 


혜원 : (석준에게) 선배님 한 잔 더 하시겠어요?

석준 : 아니야, 나 많이 마셨어 그만 먹어야지. 

다정 : 혜원, 혜원은 왜 항상 선배라고 해? 오빠라고 해 봐. 

혜원 : 아니오. 괜찮아요. 저는 선배가 편해서요. 

다정 : (석준에게) 오빠, 오빠도 선배보다 오빠가 더 낫지 않아요?

석준 : 뭐, 괜찮아 다 좋지 뭐. 동식이 술잔이 비었네 마저 마셔. 

동식 : 그럴까요? (소주병을 들며) 얼마 안 남았네요. 이것 까지만 먹고 일어나면 될 것 같습니다. 

석준 : 그래 그러자. 막잔 해. 

다정 : 혜원, 혜원은 왜 연애 안 해?

혜원 : 네? 

다정 : 나는 동식이랑 혜원이 그런 사이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그럼 혜원은 왜 연애 안 하는 거야. 이렇게 예쁘고, 참한데. 남자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나 봐.(웃는다)

혜원 : (잠시) 선배님은 연애 안 하세요?

다정 :  나 얼마 전에 헤어졌잖아. 아무리 사랑해도 해결 안 되는 부분들이 있더라고. 

혜원 : 그러셨구나. 

다정 : 사실 전 남친이 이혼남이었거든. 알고 만난 거지만 참. 

동식 : 아...

석준 : (웃으며) 됐어. 애들한테 뭐 그런 이야기를 해.

다정 : 아니. 괜찮아. 오빠 나 걱정 안 해도 괜찮아. 나 산전수전 다 겪어본 년이잖아.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실제로도 아무렇지 않아. 근데, 화가 나잖아.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안 그래? 내가 그 인간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내가 그럴 대우받을 사람이야? 나 공부도 열심히 했고 울 엄마 아버지 나한테 거는 기대도 큰 사람이야. 내가 우리 집 장녀야. 나 돈도 잘 벌어. 그런 내가 저따위한테 최선을 다 했는데, 배 나온 이혼남 주제에 나를, 어떻게 나를 그렇게 대해 안 그래?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오빠 안 그래요? 알잖아 오빠!

석준 : (잠시) 나는 모르지.


모두 조용하다. 다정은 울고 있고 흥분했다. 혜원, 동식은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다. 


석준 : 다정씨... 우리 어제 처음 봤잖아. 


다정은 당황한 기색이다. 하지만 티 내지 않으려 숨을 고른다. 


다정 : (얕게 웃으며) 내가, 사람이랑 쉽게 친해지는 스타일이라. mbti 그거 해 봤는데 내가 외향형이 나오더라니까.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래.

혜원 : (동식의 잔을 가져다 마시며) 일어나시죠? 곧 10신데 저희 막차 시간도 있고요. 

다정 : 왜 벌써 그래. 한 잔 더 하자. 혜원.

동식 : 저희가 집이 경기도라 좀 멀어서요. 

석준 : 그래, 일어나자. 술도 없네.


석준, 혜원, 동식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한다. 다정은 가장 늦게 일어나 짐을 챙긴다. 



2. 거리


혜원 : 선배님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동식 : 수고하셨습니다. 

석준 : 같이 가자. 역 쪽으로 가지?

혜원 : 선배님, 계산 누가 하셨어요?

다정 : 혜원! 계산 내가 했어. 걱정 마. 

석준 : 그걸 네가 왜 했어. 

동식 : 선배님, 얼마 나오셨어요?

다정 : 아니야. 내가 살게, 사고 싶어서 그래. 우리 아기들이랑 선배한테 내가 산 걸로 해. 


카카오톡 알림음이 들린다. 다정이 본인의 휴대폰을 확인한다. 


혜원 : 선배님, 제가 보냈어요. 저랑 동식이 합쳐서요.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모자라면 말씀해 주세요. 

다정 : 혜원. 나 안 받아 이거. 

혜원 : 받아주세요. 그럼 저희 가 보겠습니다. 


혜원이 동식의 옷을 당긴다. 


동식 :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혜원과 동식 나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석준이 지갑을 꺼낸다. 그 속의 지폐 몇 장을 꺼낸다. 


석준 : 다정 씨. 얼마 주면 될까? 이 정도면 될 것 같지?

다정 : (석준의 손을 잡으며) 오빠, 나 서운하게 이럴 거야? 그냥 내가 낼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나. 

석준 : (손을 빼며) 정말 괜찮아서 그래. 미안하기도 하고. 

다정 : 아니야 오빠. 나 괜찮아. 미안하면 우리끼리 한 잔 더 할래?

석준 : 어? (잠시, 곧 웃으며) 이 시간에 갈 데가 어디 있어. 들어가야지 무슨 소리야.

다정 : 10시 넘으면 다 문 닫지, 맞지. 그럼 오빠, 우리 집으로 가면 되잖아. 우리 집에서 손님이 늘 많이 들어서 술도 안주거리도 충분해. 아! 오빠, 마스카포네 치즈랑 무화과랑 같이 먹으면 진짜 맛있어. 그거 위스키 안주로 딱 좋은데 가자. 내가 한 상 차려줄게. 


다정은 석준의 팔을 잡는다. 석준은 놀라며 거칠게 팔을 뺀다.


석준 : 그만해, 다정 씨. (잠시) 우리 일로 만나는 사이잖아. 선을... 넘는 것 같네. (지폐 몇 장을 다정의 가방에 밀어 넣으며) 앞으로는 우리 재밌게 일만 합시다. 조심히 들어가고. 


석준이 빠르게 나간다. 

다정은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는다. 



3. 문이 닫히지 않는 집


번호키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린다. 현관 앞에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리드줄을 하고 있다. 조그만 날개가 달려 있는 디자인이다. 


다정 : 딸, 엄마 기다렸어?


고양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서 꼬리를 한 두 번 살랑 거린다. 


다정의 집은 발 디딜 틈 없다. 작고 협소한 공간에는 벽이 보이 않을 만큼 물건들로 가득하다. 거실 겸 부엌을 중심으로 양 옆에 방 문이 하나씩 나 있고. 정면 벽에 화장실 문이 나 있다. 


다정은 식탁 의자에 앉는다. 하루 종일 구두를 신고 있었던 탓에 두 발이 빨갛게 부어 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다정은 싱크대로 가서 컵을 꺼낸다. 물을 한 잔 담아 마신다. 천천히 길게 마신다. 마신 컵은 바로 씻어 건조대에 올린다. 다시 식탁 의자에 앉는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 둘, 셋. 열 번째 물방울 소리가 나기 직전 다정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상대가 받는다. 


다정 : 성현. 늦은 시간에 미안. 다름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일정표를 확인하고 있는데 진행과정에서 다음 주 목요일 회의를 조금 당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게 다른 디자이너들이랑도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문제니까 좀 급해서 전화했어. 늦은 시간에 미안. 성현 생각은 어때? 그래? 성현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근데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 18일까지 일정 맞추려면 회의가 더 당겨져야 하는 건 맞지 않을까? 내가 이 일을 10년을 했어. 그런 내가 느끼기에 그래야 할 것 같다면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성현이 나보다는 경험이 없으니까. 나를 좀 믿어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렇지만, (잠시 숨을 고른다) 그래. 알겠고. 그럼 지금 좀 볼까? 이 부분은 내가 확실히 이야기를 좀 해 둬야 할 것 같아. 성현 거기서 택시 타면 우리 집 까지 10분이면 와. 내가 택시비 줄게. 노트북만 들고 와. 한 잔 하면서 이 부분 정리하고 넘어가자. 일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인데 그냥 부려먹진 않을게. 멜론이랑 하몽 같이 먹어 봤어? 내가 멜론을 하나 사 뒀는데 나는 혼자 사는데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거든. 이것도 좀 도와줘. (잠시) 그래? 알았어. 그럼. 아 오해는 말고. 나는 일 생각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 하게 된 거야. 알지? 알았어. 그럼 내일 정리해 보자. 그래. 응 들어,


다정의 말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통화가 끊어진다. 

조용하다. 다정은 고양이를 본다. 


다정 : 딸.


고양이는 반응이 없다. 자신의 몸을 그루밍한다. 

다정은 집을 크게 둘러본다. 긴 숨을 쉰다. 


다정 : 딸, 나가고 싶어?


고양이는 다정을 본다. 


다정 : 나가고 싶어? 나갈래?


다정이 일어나 현관으로 온다. 현관문을 크게 연다. 고양이는 리드줄을 하고 현관문 앞에 서 있다. 


다정 : 나가. 나가서 하늘도 보고 동네 구경도 좀 하고 그래. 도망가진 말고. 밖에 무서운 거 많다?


다정은 고양이를 내버려 두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곧 샤워기 물소리가 난다. 다정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유행하는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다. 고양이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고양이가 현관 밖으로 나간다. 



 막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지원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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