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보여?
사랑이 시처럼 온데.
우린?
시처럼 왔다가 비처럼 가버린 것 같아 아냐?
시처럼 왔다가 소설처럼 머무는구먼
그런가?
오늘은 에세이, 어제는 사건사고, 그제는 예능, 그끄제는 코미디로...
그렇게 인생은 각 장르별 예술이지
그러네
여보
당신은 보여?
뭐가?
여보가 어디에 있는지?
저기 네 손을 봐
저 끝에 우리 둘이 있지.
그렇게
60대 부부는
여보
보여~
놀이를 합니다
보여? 여보
뭐가?
당신 눈 안에 내가 보여?
응?
잘 봐
뭘?
내 눈 안에 당신을...
보여?
잠깐만 돋보기 낄게
보자
음...
여보! 보여
진짜?
보여? 여보
응
근데 눈 안에 눈이 여러 개야
헛개보이는 게 아니니 다행이다.
안경에 비친
눈동자에 서린
당신의 여보가
늙고 낡은 골동품인데
이야! 됐다.
뭐가?
명품으로 진화중이쟎아
여보
당신이 곰삭아
참 맛 내는 명품 씨간장이 되는 중이야
아하
그래서 우리 여보 점점 까매지는구나
인생은 그렇게
여보의 보여가 익어가는구나
그렇게 서로를 보며
60대 부부는 눈동자 쳐다보며 논다
여보! 보여?
보여? 여보
그렇게 오늘도
재밌다
60대 부부는 이제는 긴말이 필요 없다.
그냥 그저 바라만 봐도 눈으로 몸짓으로 필요충분한 대화가 이뤄진다.
잘 익은 김치는 냄새만 맡아도 침이 넘어간다.
종갓집 씨간장은 색깔만 봐도 감칠맛에 입에 침이 고인다.
그렇게 또 하루의 금을 서로의 몸에 그어가며 골동품으로 낡아가는 것에 익숙해진다.
"여보~" 하고 부르니
"알았어요. 준비다 됐어"라고 대답한다
여보에는 수많은 함축언어가 숨어있다가
그 억양에 단어 하나 쑥 튀어나온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툭하고 팔꿈치를 툭치니
"알았어 오늘은 내가 운전할게"한다.
산다는 건 말을 잃어가도
불편한 게 없는 세월의 언어가 대신해 주는 에너지가 있다
그걸 그냥 '정'이라 부르련다
'사랑'보다 좀 더 묵직하고 싶은데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여보 #보여 #60대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