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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마스터 최현정 Dec 15. 2018

행복한 엄마의 선택

행복한 엄마가 제안하는 감정조절의 핵심

<출처 허밍포스트>

지하철에서 유모차를 탄 아이가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나자 할아버지 한 분이

"우는 아이를 지하철에 왜 데리고 탔어?" 라고 하시며 큰 소리로 불만을 가득 담아 말씀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지하철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일어났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서운함과 속상함을 넘어서 예전에 임신 초기에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창피를 당한 기억이 올라오자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이렇게 하니까 여성들이 아이 낳기를 꺼려하지….

그러나 울음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왜 아이를 달래지 않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많은 사람에게 불편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엄마가 궁금해진 나는 고개를 불쑥 내밀어서 엄마를 찾았다. 여전히 엄마는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자 아이의 엄마가 일어섰다. 아이의 엄마는 외국인이었다. 젊은 층의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거뒀다. 엄마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스스로 울음을 그친 것에 대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뒤 아이의 행동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했던 상황도 아이게게 전했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원망이나 비난은 없었고 당당하면서 차분했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주는 엄마의 육아 신념과 문화적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엄마가 감정을 조절 하면서 인내한 탁월함에 부러움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나라 TV에서는 육아프로그램이 넘쳐 나고 있다. 하나 같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육아를 하는 능력자이다. 잘 갖춰진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보면서 가끔 대리만족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들 없이 독박 육아로 허덕일 때면 위축감과 질투의 감정도 들었다. 육아 참여를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인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육아를 하다 보니 다양한 감정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할 때가 많았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왔다. 나를 존중해주는 남편을 만나 엄마를 배운 적이 없는 내가 덜컥 엄마가 되었다. 내 아이에게는 만큼은 나처럼 엄마 없이 자란 설움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육아를 했다. 

나의 행복보다는 여전히 책임감에 파묻혀 머리로만 하는 육아를 해서 인지 어느 새 체력과 마음이 고갈 돼 버렸다. 육아를 한 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여정인데 자꾸 육아책임감을 짊어지려고만 했다. 내 욕심을 아이에게 품을수록 어긋나는 것이 육아였다. 행복을 기다리기만 하면 찾아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육아도 나만의 원칙과 신념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육십 평생 학자의 길만을 걸어오신 상담학 교수님이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나이 육십(60)이 되어서 처음으로 엄마들과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어봤어요. 그 날 나는 새로운 해방감을 느꼈어요. 책, 여행만이 나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어요. 엄마들이 나의 지지자이고, 상담자가 되어주었던 거죠. 아주 편안하게 즐겼어요. 앞으로 종종 좋은 시간을 갖을까 합니다."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10여 년 동안 또한 하루 종일 육아하다 밤에는 밀린 살림에 공부까지 했다. 육아를 하면서 틈틈이 일도 하면서 하루에 2시간을 자면서 몇 주를 보낸 적도 있었다. 

" 나는 왜 이렇게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걸까?" 세 아이의 등, 하원 길에 지친 표정이 드러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렸다.

" 쩡~뭐해? 밥 먹었어? 범이랑 밥 먹으러 넘어와 떡볶이 시켜먹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육아맘의 전화였다. 

무언가에 찌들었다는 느낌에서 탈출하라는 마음의 신호가 왔다. 엄마들과 함께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수다삼창을 하고 났더니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새롭게 긍정적인 감정을 장착하고 살아낼 힘을 충전 받은 것 같았다. 엄마들은 엄마가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나를 인정해주고 만나면 힘나는 사람들과 지속된 만남을 이어 나가면서 지금을 소중히 누려야 한다. 내가 먼저 그들의 감정을 읽어주고 살펴주면 내 주위에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엄마로 여자로 한 인간으로 내가 받고 싶고 느끼고 싶었던 감정을 먼저 인사하듯이 나눠보자.   


내 아이의 진짜 행복을 원하는가? 내가 어떤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지 거울을 먼저 바라보자. 엄마의 역할뿐 만 아니라나도 나의 삶에 포함되어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내 아이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아들, 딸 말고 다른 역할로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부담을 내려 놓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되면 엄마도 여유가 생겨 잊고 있었던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내 아이와 똑같은 아이는 없다. 내 배에서 나온 아이들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세상에 우리 아이와 같은 아이가 한 명도 없는데 어떻게 똑같은 육아법으로 키우고자 마음 먹었을까? 내 아이가 가장 잘 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이 육아였음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잘 맞춰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좋아한다. 아이들 도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먼저 신뢰를 쌓고 잔소리는 조금 접어두자.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쓴 소리는 그저 판단이 담긴 소리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하는 누군가의 육아법이 아닌 나와 아이들에게 맞는 육아 환경을 천천히 조성하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울 때까지 시간이 걸리듯이 감정도 긍정의 씨앗을 뿌리고 인내해야 한다. 

나의 감정을 보고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의 영양분을 제공하고 기다려보자.

"엄마가 내 엄마라서 행복해요. 사랑해요" 앙증맞게 손 하트를 날리며 포근히 나를 안아주는 천사같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고백의 말 한마디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나는 엄마이다. 세상 어떤 보물보다 존귀하고 값을 메길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네가 엄마 딸이라서, 아들이라서 행복해. 사랑해~"라고 고백하자. 얼마든지 행복한 육아와 함께 나의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엄마니까, 엄마라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의 감정조절 육아는 아이를 행복하게 만든다. 엄마의 행복한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엄마가 행복하면 가정이 행복하고 곧 대한민국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처음 엄마를 경험한 우리는 서툴지만 행복하다. 행복한 감정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 내 아이를 위한 행복한 선택! 엄마의 감정조절 육아는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것에 확신을 갖고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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